20100829n: 바울과 바나바가 싸우다!(행 15:3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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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29일 주일오후예배
본문: 행 15:36-41
제목: 바울과 바나바가 싸우다!
[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우리도 그렇습니다만 대개 사람들은 자기 기질, 정서, 성격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습니다. 자기 성격과 기질에 대해 썩 만족하는 사람은 드문 듯합니다. 예수를 처음 믿기 시작한 사람 가운데는 예수를 잘 믿으면 자기 성격이 좀 바뀌고, 정서가 순화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성적인 사람이 외향적인 사람으로 바뀌기를 바라고, 소심한 사람이 대범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런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최초의 이방 선교사인 바울과 바나바가 어느 날 대판 싸웁니다. 바울 같은 위대한 선교사와 그의 은인이었던 바나바가 싸우다니요. 바울이 회심 후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위장 개종이라는 의심을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의 사도들도 바울을 경계했습니다. 그때 바나바가 바울을 사도들에게 데리고 가서 자기가 책임진다고 하며바울의 회심을 인증해 줍니다. 사도들이 바나바에 대한 신뢰가 지대했습니다. 바나바는 권위자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는 권사였습니다. 원조 권사였습니다. 권하고 위로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는 인격이 부드러웠습니다. 바울도 바나바 때문에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런 바나바와 바울이 대판 싸울 때 바울의 기질이 나온 것입니다. 마가 때문에 싸운 것입니다. 마가는 바나바의 조카입니다. 마가는 1차 전도여행 때 도중 하차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 아예 마가를 배제하자는 바울과 그러지 말자는 바나바가 싸운 겁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결별하게 된 겁니다. 바울은 성격이 불같고, 열정적이며 강직한 사람입니다. 유대교를 믿을 때도 그랬지만 예수를 믿을 때도 그랬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8절을 보면, 천사들이라도 내가 전한 복음 이외에 다른 것을 전하면 저주 받으라고 합니다. 바울은 안디옥을 방문한 베드로를 향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를 책망합니다. 바울이 회심하기 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고백합니다. 갈라디아서 1장 13절 이하입니다. “[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그는 스데반도 죽였습니다. 세상에서 바울처럼 희생적이고 열정적으로 예수를 믿은 사람은 없습니다. 이게 바로 그의 태생에서 정서에서 온 겁니다. 그러니 예수를 믿어도 절대 성격이나 정서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격이 변하지 않으면 자기 신앙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고유한 성격은 거의 변하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날카로운 성격이 무뎌지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를 믿으면 새 사람이 되고 새 피조물이 된다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사람의 소속, 운명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죄가 통제하는 게 아니라 성령이 통제하는 것으로 바뀐다는 겁니다. 성격은 그 사람만의 개성이자 정체성입니다. 그 성격이 지향하는 대상이 달라질 뿐입니다. 전에는 불같은 성격으로 주로 파괴적인 쪽으로 주로 작동했는데, 이제는 그 성격 그대로 하나님의 영광과 생명을 위한 길로 바뀐다는 겁니다. 바울이 회심 전에는 유대교를 위해 충성 봉사했는데, 예수를 믿은 이후로는 생명을 살리는 일에 더 관심이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내 성격을 보다 은혜롭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곳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기질이나 성격은 하나님의 선물이자 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성격을 비관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내 성격이 지금까지는 이롭지 못한 쪽으로 사용되었다면 이제는 그 반대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성격과 기질을 관리해야 합니다. 필요하면 자제도 하고, 필요하면 모난 부분도 갈아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 손실이 될 일은 없습니다. 원색적으로 내 성격을 발산하고 드러낼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는 견디기도 하고 제어도 하면서 하나님의 영광과 뜻을 드러내어야 합니다. 이게 바로 성화이고 성숙입니다. 믿음으로 자기의 성격과 기질과 정서를 관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고유한 성격과 정서와 기질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 기여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모든 사람의 정서가 다 동일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처음에는 그렇게 원색적으로 바나바와 싸우고 그랬는데, 말년에는 마가를 데려오라고 디모데에게 시킵니다. 펄펄 뛸 때는 언제고, 이제는 내게 유익하다고 합니다. 그만큼 성숙해졌다는 뜻입니다. 바울의 인격이 그만큼 깊어진 겁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성격과 정서를 잘 관리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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