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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밧세바와 동침한 후(시 5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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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span lang="EN-US"><span>2010. 8. 20.</span></span></p>
<!-- paragraph:p0002 -->
<p><span><span>밧세바와 동침한 후</span></span></p>
<!-- paragraph:p0003 -->
<p><span><span>시 51:1-14</span></span></p>
<!-- paragraph:p0004 -->
<p><span>  </span><span> </span><span>  </span></p>
<!-- paragraph:p0005 -->
<p><span><span>표제어를 보면 &lt;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gt; 지은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루터와 칼빈 같은 개혁가들은 흔히 이 시편을 근거로 인간의 죄성을 얘기했습니다.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했을 뿐 아니라 그녀의 남편 우리야까지 살인교사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나단 선지자가 이를 책망하자 그는 자기의 죄를 자복하며 통회했는데 이 시는 바로 그 시점에 부른 참회의 노래입니다. &lt;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gt;(1,2절).</span></span></p>
<!-- paragraph:p0006 -->
<p><span>  </span><span> </span><span>  </span></p>
<!-- paragraph:p0007 -->
<p><span><span>우슬초로 정결케 하소서!</span></span></p>
<!-- paragraph:p0008 -->
<p><span><span>죄지은 인간에게 가해지는 일차적인 고통은 바로 양심의 가책입니다. 양심은 이 땅에 존재하는 천국법정의 지방 출장소입니다. 그런데 죄지은 인생이 극심한 양심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버틸 수 있는 것은 부단한 자기 합리화와 망각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죄에 대해 어쩔 수 없었다며 변명하고 부득이 했다며 정당화 합니다. 또 아픈 기억은 망각의 늪에 묻어버립니다. </span></span></p>
<!-- paragraph:p0009 -->
<p><span><span>그러나 죄란 그렇게 한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죄도 열매를 맺습니다. 사망이 바로 그 죄의 열매입니다. 따라서 죄가 사망이라는 열매를 맺기 전에 우리가 필히 해야 할 일이 바로 다윗과 같은 회개입니다. &lt;내 죄악을 지워달라!&gt;(1절), &lt;내 죄를 말갛게 씻어 달라!&gt;(2절), &lt;깨끗이 제해 달라!&gt;(3절), &lt;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해 달라!&gt;(7절), &lt;나의 죄를 씻어 눈보다 더 희게 해 달라!&gt;(7절)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의 보혈은 우리의 더러워진 예복을 희게하는 데 탁월한 효험이 있습니다.</span></span></p>
<!-- paragraph:p0010 -->
<p><span>  </span><span> </span><span>  </span></p>
<!-- paragraph:p0011 -->
<p><span><span>죄악 중에 출생하였나이다!</span></span></p>
<!-- paragraph:p0012 -->
<p><span><span>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철저한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그는 자신의 죄악의 뿌리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lt;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gt;(5절). 그렇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죄를 지어 죄인이지만 이미 죄인으로 태어나므로 죄를 짓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의지로 죄를 짓는 자범죄인이지만 동시에 이미 죄성을 지고 태어나는 유전죄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누구도 이 죄의 숙명으로부터 자유할 수 없습니다. 다윗의 인간 죄성에 대한 통찰은 놀랍기만 합니다. </span></span></p>
<!-- paragraph:p0013 -->
<p><span><span>물론 그가 지금 원죄 혹은 유전죄를 들어 자신의 자범죄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인간의 거역할 수 없는 깊은 죄성의 뿌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결코 뽑아버릴 수 없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lt;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gt;(9,10절).</span></span></p>
<!-- paragraph:p0014 -->
<p><span>  </span><span> </span><span>  </span></p>
<!-- paragraph:p0015 -->
<p><span><span>성령을 거두지 마소서!</span></span></p>
<!-- paragraph:p0016 -->
<p><span><span>다윗이 범죄한 후 가장 두려워 한 것은 성령의 소멸이었습니다. 다윗은 누구보다도 주께서 성령을 거두심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성령이 떠나간 사울이 결국은 악령에 사로잡혀 비참한 최후를 맞은 사실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그였기 때문입니다. 죄를 범하고도 회개치 않으면 성령이 근심하시고, 성령이 회개를 촉구하시며 역사하심에도 계속 이를 외면하며 성령을 훼방하면 결국 성령은 그를 떠나십니다. 이를 우리는 성령소멸이라고 합니다. 회개를 비롯한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은 내 안에 성령이 계시므로 가능한데 그 성령이 떠나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span></span></p>
<!-- paragraph:p0017 -->
<p><span><span>따라서 우리는 내 안에 계신 성령과의 교제에 더욱 힘쓰므로 성령소멸이 아니라 늘 성령충만 해야 할 것입니다. &lt;나를 주 앞에서 쫒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gt;(11절).</span></span></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