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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5m: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36) 광복기념주일

2010년 8월 15일 광복기념주일 낮예배
본문: 요 8:32-36
제목: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33]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여러해 전 얘기입니다. 지금은 그 가정이 호주로 이민을 갔습니다. 야탑동에 있던 그 가정에 심방을 갔습니다. 그 가정은 평소에 커피를 좋아했습니다. 그날도 예외 없이 커피가 나왔습니다. 느닷없이 천국에도 커피가 있을까요? 하고 제게 물어왔습니다. 이렇게 비오는 날 음악을 들으며 커피 마시는 게 낙인데, 천국에 커피가 없을까봐 걱정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세상의 즐거움에 붙잡혀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신앙생활하면서도 여전히 도박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광복절은 유월절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다가 출애굽한 날이 유월절입니다. 비록 40년간 광야생활을 했지만 그들은 이제 주체적인 자유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주체적인 자유인, 노예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실제로 얼마나 자유인으로 살아갔는가는 살펴봐야 할 문제입니다. 그들은 자유는커녕 늘 애굽의 망령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애굽으로 돌아가자며 선동하고, 날마다 뒤돌아보며 살았습니다. 언제나 애굽의 추억 속에서 살았습니다. 애굽에서 먹던 고기, 마늘, 부추, 미나리 등을 그리워하며 살았습니다. 몸은 분명 애굽을 빠져나왔음에도 그들의 의식이나 근성, 생활습성은 아직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그들은 애굽의 옛 삶, 사람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하기야 그들이 애굽에서 430년간 살았는데 그게 하루 아침에 청산이 되겠습니까? 이스라엘은 그 후에도 70년간 바벨론에 잡혀갔습니다. 우리는 36년간 일제 식민 시절도 길었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실제 사용하셨던 언어는 무엇이었을까요? 히브리어인가요? 신약성경이 써진 헬라어입니까? 아닙니다. 주님은 아람어를 쓰셨습니다. 바벨론 말입니다. 지금 이라크, 이란, 시리아가 쓰고 있는 말입니다. 그 사람들은 아람어를 썼습니다. 이슬람의 코란은 아랍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계실 때 놀랍게도 바벨론 말을 쓰셨습니다. 이게 다 70년 바벨론 종살이의 후유증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는 바벨론으로부터 해방된 지 52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바벨론 말을 썼습니다. 주님이 십자가 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라고 하신 말씀도 아람어입니다. 지금도 일제시대를 겪은 분들은 일본말을 익숙하게 하십니다. 아직도 사리마다 라는 말을 쓰십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고려시대 때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낙관적이고 활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와서, 유교문화에 얽매이면서 많이 경직되었고, 36년간 일제 아래에서 비관적이고 소극적이고 냉소적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평소 짓는 죄를 생각해 보십시오. 알고 짓는 죄와 모르고 짓는 죄 중 어느 게 더 많습니까? 여러분은 모르고 죄를 짓습니까? 그럴 리 없습니다. 이게 나쁘고, 죄인 줄 다 압니다. 그러면서도 죄를 짓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짐짓죄라고 합니다. 고범죄입니다. 이게 다른 죄보다 더 악성입니다. 몰라서 짓는 죄는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짓는 죄들은 거의 다 고범죄입니다. 이제는 종이 아니라 아들이고 자유인인데 아직도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하지 못합니다. 여전히 비굴하게 죄 지으며 살고, 여전히 죄책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면서 삽니다. 바울도 그랬습니다. 로마서 7장 22절 이하입니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분명히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극적으로 회심하여 사도로 활동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원치 않는 죄를 자꾸만 범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금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누가 나를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는 겁니다. 여러분들에게 이런 분열증이 없으십니까? 죄를 지으면 안 되는 줄 아는데도, 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죄를 짓게 되느냐는 겁니다. 이런 모순 때문에 대사도인 바울도 비명을 질렀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시침을 떼고 있어도 다 이런 모순에 빠져있고, 개인적으로 아픔을 겪고 계십니다. 그래서 늘 찜찜하고 불편합니다. 정말 내가 신자인가?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고 계시는 것인가? 생각합니다. 늘 회의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모순이 다 어디서 옵니까? 아직도 옛 애굽 생활, 바벨론 종살이의 잔재가 우리 몸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소속은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우리의 신분이 바뀌었고, 유월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유인이 된 겁니다. 분명히 종이 아니고 노예가 아닌데 아직도 우리의 몸에는 노예근성이 남아 있습니다. 여전히 옛 세상살이의 관성이 남아 있는 겁니다. 아직 그 가속도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원치 않는 죄를 지으며 날마다 나는 아닌가봐 하고 생각합니다. 오죽하면 바울 같은 사람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구나.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고 비명을 질렀겠습니까?

그러면 이런 모순의 해법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가 봉독한 본문 32절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게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자유인이면서 여전히 자유하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진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참 이 말씀은 결정적인 말씀입니다. 중요한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는 말씀입니다. 바울도 그토록 고민하다가 진리를 알면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로마서 7장 마지막 절까지도 바울은 비명을 지릅니다. 로마서 8장에 들어가면서부터 달라집니다. 왜냐면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8장 1절부터는 비명 대신에 힘찬 개가를 부릅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했다’는 진리를 바울이 깨달은 겁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게 아닙니다. 죄를 짓지만 정죄함이 없다는 겁니다. 왜냐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죄에 대해 죽은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와 인연을 끊은 사람들입니다. 분명 죄를 지었는데 그 죄를 처벌할 법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를 죄의 법에서 자유하게 했다는 게 바로 이런 뜻입니다. 생명의 법이 우리를 죄의 법에서 자유케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비록 우리가 죄를 지을망정 우리를 정죄할 법이 없어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으로부터 완전히 죽은 자들입니다. 어떤 짓을 해도 우리를 죄인으로 규정할 법이 없어진 겁니다. 오직 우리는 생명의 법, 성령의 법 아래에만 살고 있습니다. 죄를 아무리 지어도 그 행위를 범법으로 정죄하고 단죄할 법이 없어 처벌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이나 애굽 사람이나 도덕적으로는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의 집에는 어린양의 피가 칠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의 사자가 피가 칠해져있는 이스라엘의 집은 뛰어 넘었고, 어린양의 피가 칠해져 있지 않은 애굽 사람의 집에 들어가 장자를 쳤습니다. 그래서 유월절(passover)입니다. 왜 어떤 사람은 벼락을 맞고 어떤 사람은 벼락을 맞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피뢰침 아래에 있고, 어떤 사람은 노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착하고 선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피뢰침 아래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은 벼락을 맞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보다 착하고 선하지 않습니다. 어떤 부분은 그들보다 더 합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이유, 피뢰침 아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벼락을 맞지 않는 겁니다. 바울이 이 사실을 깨달은 겁니다. 이제 십자가 아래에 있으면 저주나 정죄는 없고 생명과 영생만 있다는 겁니다. 내가 얼마나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살았느냐는 그 다음 문제입니다. 무조건 어린양의 피가 칠해져 있는 집에 있어야 합니다. 무조건 피뢰침 아래에 있어야 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이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누가 뭐래도 우리의 소속이, 신분이 달라졌습니다. 죄는 어차피 짓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원치 않아도 관성의 법칙에 의해서 그 탄력으로 인해 죄 안 짓고는 못 삽니다. 그러나 십자가 아래에 있으면 정죄함이 없습니다. 이게 믿는 자의 최대의 복이요 은혜입니다. 우리가 착하게 살아서 죄가 없는 게 아니라 더는 나를 정죄할 법이 없는 겁니다. 로마서 8장 33절 이하입니다.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예수 믿는 악당은 천국 가도, 예수 안 믿는 착한 사람은 천국 가지 못합니다. 우리 중에 나보다 좀 더 착한 사람일뿐이지 결코 천국 갈 착한 사람은 없습니다. 무조건 십자가 아래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 놀라운 진리가 여러분을 자유케 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자유하십시오. 죽음으로부터 죄로부터 죄책으로부터 자유하십시오. 주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 민족의 광복절을 맞아 다시 한 번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의 의미를 기억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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