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00808n: 포도주와 젖(사 55:6-11)

2010년 8월 8일 주일오후예배
본문: 사 55:6-11
제목: 포도주와 젖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10]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이사야 55장 1절입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여기에 나오는 물, 포도주, 젖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2절 하반절입니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여기에 나오는 좋은 것, 기름진 것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그 답은 3절 하반절에 나옵니다.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은혜입니다. 은혜이기에,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돈을 지불할 필요 없이, 포도주, 젖, 물, 좋은 것, 기름진 것을 사라는 겁니다. 이렇게 값 없이 사려면 귀를 기울여야 할 몇 가지 사항이 있습니다.

3절 상반절에 보면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고 합니다. 무엇을 들어야 하는지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우선 6-7절입니다.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은 사실이나, 만날 만한 때에 찾고 하나님이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는 겁니다. 구원의 날, 은혜 받을 만한 때가 따로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때에 잘 맞춰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며, 용서하십니다. 그럼에도 문제는 우리가 언제나 내 시간을 하나님께 강요한다는 데 있습니다. 늘 하나님을 만나고, 용서받고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닌데, 우리는 막무가내입니다. 주님을 보십시오.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모친 마리아에게 말합니다. ‘아버지여 내가 이 때를 위하여 왔나이다.’ ‘보라 때가 가까왔으니 인자가 팔리우리라.’ 이것은 주님이 일방적이지 않음을 뜻합니다. 주님은 하나님이 정하신 정밀한 시간에 맞추어 가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게 안 됩니다. 하나님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이 다르다는 사실을 우리는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급하고 경박합니다. 기도를 해도 하나님의 시간까지 계속하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무시하고 오로지 자기의 때로 협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를 정복할 때, 하나님이 7바퀴를 돌라고 했는데, 그들이 6바퀴만 돌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코 여리고 성은 무너지지 않았을 겁니다. 엘리야가 기도할 때 인내의 한계를 느끼고 6번까지만 기도했다면 비는 없었을 겁니다. 여호와의 시한까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실 은혜인 포도주와 젖은 하나님의 때에 맞추어야만 우리가 받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다릅니다. 8절 상반절입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9절 하반절입니다.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내 생각이 아니라 여호와의 생각에 맞추어야 합니다. 내 뜻을 주님의 뜻이라고 할 줄만 알았지, 하나님의 뜻 앞에서 내 생각을 양보하거나 복종할 줄은 모릅니다. 로마서 8장 6절이하입니다.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영의 생각대로 살면 거기에는 은혜와 평안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생각하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내 맘대로 생각하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좇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입니다. 하나님은 들의 백합화와 공중의 새를 생각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들꽃과 새들을 먹이고 입히시는 하나님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38절입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주님은 철저히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살다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사셨습니다. 부디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사십시오. 그래야 은혜를 입고, 올 여름에도 포도주와 젖을 풍성히 허락하십니다. 

여호와의 길은 내 길과 다르다고 합니다. 그 길은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다릅니다. 우리는 다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인생은 다 나그네입니다. 어떤 이들은 넓고 포장된 길을 걷고 있고, 어떤 이는 좁은 길을 어렵게 걷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합니까? 마태복음 7장 13-14절입니다.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그런데 길은 딱 두 가지입니다. 멸망 길과 천국길입니다. 주님이 가신 길은 십자가의 길, 좁고 험한 길입니다. 믿는 사람 조차도 어떻게든 저 좁은 문만 통과하면 탄탄대로가 펼쳐지겠지 라고 생각합니다. 좁은 문을 통고하면 좁은 길이 보입니다. 좁은 문 이후에 결코 큰 길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주님은 말 구유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험한 골고다 길을 걸으며 이 세상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 길을 좇아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이 지신 십자가를 우리도 지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잘 포장된 길에 유혹 받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이 걷는다고 유혹 받지도 마십시오. 기독교는 다수결이 아닙니다. 주님이 걸으신 좁은 길이 진짜입니다. 왜 기독교만 그토록 배타적이고 편협하냐고들 말합니다. 우리는 길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 길밖에 없다고 말할 뿐입니다. 모든 종교에 다 구원이 있고, 그 나름의 그리스도가 있다고 우리는 말 못합니다. 길은 하나입니다.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고, 높으며,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꼭 기억하시고, 아무리 좁고 험하고 외로울지라도 끝까지 한 길을 걸으십시오. 거기에 포도주와 젖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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