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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8. 5.</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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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깨소서, 일어나소서!</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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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시 44:1-13</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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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lt;민족 탄원시&gt;입니다. 여기에는 &lt;나&gt;와 &lt;우리&gt;가 빈번히 교차되는데 &lt;나&gt;도 개인적인 &lt;나&gt;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lt;나&gt;이고, &lt;우리&gt;도 개인적인 &lt;나&gt;만큼이나 철저한 하나의 운명 공동체입니다. 사실 시편은 다 한 개인의 노래가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의 노래입니다. 공동체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고, 나의 고통이 곧 공동체의 고통에 다름아니라는 것입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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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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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lt;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조상들의 날 곧 옛날에 행하신 일을 그들이 우리에게 일러 주매 우리가 우리 귀로 들었나이다&gt;(1절).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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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교육은 무엇보다도 가정에서부터 이뤄져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 조상들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들을 그들의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쳤고, 자녀들은 또 그들의 자녀들에게 전수하며 자자손손 신앙을 계승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문제는 자녀들의 교육을 오직 세상과 학원에 모두 맡겨 버렸다는 데 있습니다. 신앙교육 마저도 속수무책으로 방치 내지는 포기한 채 주일 오전 형식적인 예배 한 번으로 모든 것을 다 때우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 누구도 신앙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lt;주께서 주의 손으로 뭇 백성을 내쫓으시고 우리 조상들을 이 땅에 뿌리박게 하신&gt;(2절) 일이며, &lt;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르고 우리를 치러 일어나는 자를 주의 이름으로 밟은&gt;(5절) 일, &lt;우리가 종일 하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감사한&gt;(8절) 일 등을 열심히 가르치며 전승해야 합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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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식</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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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이제 시의 성격이 애가로 바뀝니다. 9절 이하는 지금 시인이 당하고 있는 아픈 현실에 대한 묘사입니다. 매 절마다 탄식입니다. &lt;주께서 우리를 대적들에게 돌아서게 하시니&gt;(10절), &lt;주께서 우리를 잡아먹힐 양처럼 그들에게 넘겨 주시고&gt;(11절), &lt;주께서 주의 백성을 헐값으로 파심이여&gt;(12절), &lt;주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웃에게 욕을 당하게 하시니&gt;(13절), &lt;주께서 우리를 뭇 백성 중에 이야기 거리가 되게 하시며&gt;(14절), &lt;나의 능욕이 종일 내 앞에 있으며 수치가 내 얼굴을 덮었으니&gt;(15절), &lt;나를 비방하고 욕하는 소리 때문이요&gt;(16절).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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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그냥 보고만 계실까요? 시인 역시도 그 점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다만 그런 치욕에도 불구하고 절대 하나님을 잊거나 배신하지는 않았음을 항변합니다. &lt;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gt;(17절). 시인의 당당함이 마치 재난에 맞섰던 욥과도 같습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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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원</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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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그럼에도 현실은 여전히 암담합니다. &lt;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gt;(22절).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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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양은 무력합니다. 더구나 &lt;도살할 양&gt; 같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무력함과 능욕과 고난이 다 &lt;주님이 얼굴을 가리신&gt;(24절) 데서 온 것이라면 이제 방법은 열심히 부르짖어 주님을 깨우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lt;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gt;(23절), &lt;어찌하여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gt;(24절), &lt;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를 구원하소서&gt;(26절). 이제 주님이 곧 일어나실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 강한 오른팔로 원수들을 물리치시고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안겨 주실 것입니다. 더욱 주님을 깨우십시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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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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