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00801m: 만나와 생수(고전 10:1-5)

2010년 8월 1일 주일낮예배
본문: 고전 10:1-5
제목: 만나와 생수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여러분, 우리들은 다 출애굽을 한 사람들입니다. 애굽을 탈출한 사람들입니다. 애굽이 어디입니까? 이방인, 이교도, 불신자들이 사는 저 세상입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세상에서 애굽에서 그들과 함께 어울리며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애굽을 탈출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출애굽해서 가나안을 향해 가고 있는 어엿한 순례자들입니다. 

그런데 과거 이스라엘은 출애굽을 해서 곧 홍해를 건넜는데,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홍해를 건넜습니까? 건너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홍해도 건넜습니다. 홍해는 세례입니다. 세례가 홍해의 상징입니다. 본문 1-2절입니다.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홍해를 건넌 사건을 두고 이스라엘이 모세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우리도 이미 홍해를 건넌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일찍이 바다가 갈라져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사건은 영적으로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살며 내 몸에 묻은 때를 홍해를 건너며 다 씻었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죄악 세상에서 살면 본의 아니게 내가 세상 죄에 애굽의 때에 오염됩니다. 그것을 홍해를 건너며, 세례를 받으며 다 씻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례의 일차적인 의미입니다. 뿐만 아니라 홍해를 건넜다는 것은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옛 사람을 홍해 바다에 수장했다는 뜻입니다. 바다에서 뭍으로 올라오는 순간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중생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요즘 세례를 받을 때는 머리에 물을 찍습니다. 이것은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내 모든 죄를 씻었다는 뜻이고, 내가 물에 잠김으로써 옛 사람은 수장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침례교는 아예 물 안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우리는 상징이자 약식으로 정수리에 물을 찍습니다. 어쨌든 완전히 내 옛 사람을 수장시켰다는 뜻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의미는 이제 더는 애굽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배수의 진입니다. 홍해가 가로막고 있으니 가고 싶어도 애굽으로 복귀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았다는 것도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내 멋대로 살다가 세례를 받고 나면 이젠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겁니다. 이제 옛 사람으로 복귀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미련을 버리라는 말입니다. 오직 우리의 목표인 가나안만 보고 앞으로 진군하라는 뜻입니다. 홍해는 돌아갈 수 없는 바다입니다. 세례는 그런 의미입니다. 우리는 애굽의 종으로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출애굽을 하고 홍해까지 건넜습니다.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오늘 본문은 고린도전서 10장 1-5절 이하입니다만, 구약 출애굽기 16장으로 갑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1). 그러니까 출애굽 한 지 한 달 보름 되었습니다. 이어지는 2절 이하입니다. “[2]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이것이 무슨 얘기입니까? 출애굽할 때 성인만 계수해서 60만 이었습니다. 아이들과 여성들까지 합치면 200백만 넘는 대군입니다. 그런데 한 달 반 만에 양식이 다 떨어지니 폭동이 일어난 겁니다. 백성들이 모세에게 대들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40년을 광야에서 살아야 합니다. 무슨 수로 그 사람들을 다 먹입니까? 이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양식 문제를 해결했습니까?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다같이 신령한 음식을 먹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신령한 음식은 ‘만나’입니다. 하나님이 비같이 새벽에 내려주신 만나가 그들의 광야생활의 주식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6장 4절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16장 31절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이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35절입니다. “사람이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사십 년 동안 만나를 먹었으니 곧 가나안 땅 접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 출애굽한 지 한 달 반부터 만나를 먹기 시작해서 가나안에 들어가 직접 양식을 생산하기까지 40년간 먹은 겁니다. 하나님이 만나를 새벽마다 비같이 내려주신 겁니다. 

그러면 우리도 출애굽하여 가나안을 향해 광야길을 걷고 있는데, 우리가 먹어야 할 주식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주식도 예외 없이 만나입니다. 우리도 만나를 먹어야 삽니다. 우리에게 만나는 무엇입니까? 신명기 8장 2절이하입니다.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곧 만나입니다. 말씀이 바로 우리가 날마다 먹어야 할 신령한 음식입니다. 여러분, 이 광야에서는 떡이 아닙니다. 밥도 아닙니다. 만나를 먹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이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주신 신령한 음식인 만나를 40년간 먹고 살았음에도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결국 다 실패했다고 합니다. 다 객사했습니다. 광야에 뼈를 묻은 것입니다. 다 죽었습니다. 천수를 다 하고 자연사한 게 아닙니다. 다 하나님의 저주와 징계를 받아 죽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마음에 안 들었다고 하십니다. 왜 그들은 기적의 음식인 만나를 40년간 먹고 살았음에도 왜 그들은 다 객사했습니까? 여호수아와 갈렙 빼고 다 객사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은 다 탈출 2-3세대입니다. 

처음에 그들은 만나를 꿀 섞은 과자라고 했습니다. 기름에 튀긴 과자라고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달라집니다. 민수기 11장 4절 이하입니다. “ [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6]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광야생활이 얼마나 건조합니까? 만나가 맛이 없어진 겁니다. 요즘 아이들이 교회에 안 나오려고 하는 것은 재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훨씬 더 재밌고 좋다고 합니다. PC방에 가서 게임을 할지언정 교회는 안 나옵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입니다. 교회는 재미가 없습니다. 세상이 광야보다 더 다양하고 화려하며 재미있습니다. 볼거리 먹을 거리 즐길 거리가 훨씬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출애굽하고 홍해까지 건넜지만 끝내 애굽으로 돌아가자며 선동하고 모세에게 대들고 불평하고 불만을 늘어놓았습니다. 민수기 21장 5절입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여기서 말하는 하찮은 음식은 만나입니다. 하나님이 내려주신 신령한 음식인 만나를 이제는 하찮은 음식이라고 치부합니다. 민수기 21장 6절 입니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요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 때마다 말씀입니다. 새벽에도 말씀이고, 아침에도, 저녁에도 낮에도 다 말씀입니다. 그러니 질리게 되어있습니다. 그럼에도 말씀이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며 우리의 주식입니다. 애굽에서 살 때는 여러 먹거리가 많았지만, 광야에서는 오직 말씀만이 우리의 주식임을 잊지 마십시오.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면 날마다 진수성찬입니다. 그러나 광야에서는 만나가 우리의 일용할 양식입니다. 왜 교회에서는 만나 뿐이냐고 원망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다음은 무엇입니까? 본문 10장 4절입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신령한 음료를 먹었다고 합니다. 제가 79년에 독일에 가니 이상한 게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노천 카페에 앉아 작은 물 한 병 시켜놓고 마시는 게 커피보다 주스보다 더 비쌌습니다. 대학 구내식당 자판기에도 생수 값이 맥주보다 더 비쌌습니다. 학생들이 점심 먹고 물을 마시는 게 아니라 낮술을 하고 있었습니다. 독일은 수질이 나쁩니다. 석회질이 많습니다. 그래서 마시는 생수는 프랑스 같은 데서 수입합니다. 요즘은 우리나라도 생수 시장이 커졌습니다만, 그때만 해도 물을 사 먹는다는 게 긍정이 안 되었습니다. PX에서 나오던 다이아몬드 생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물 사먹는 게 생경했었습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사람이 먹은 신령한 음료는 모세가 바위에서 터져 나오게 한 암반수였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날씨가 더운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겪은 폭염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다 목이 타들어 가는데, 암반에서 생수가 터져 나오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마셔야 할 음료는 과거 이스라엘이 마셨던 그 신령한 음료입니다. 

그런데 반석이 누구십니까? 그리스도이십니다. 반석이신 그리스도에게서 솟아나는 생수가 오늘 우리가 꼭 마셔야 할 신령한 음료입니다. 주님이 야곱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4장 13절 이하에서 주님은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지금 목마르십니까? 탄산음료로는 안 됩니다. 원두커피도 안 됩니다. 맥주나 막걸리로도 안 됩니다. 주님이 주시는 신령한 음료를 드십시오. 반석되신 주님에게서 솟아나는 신령한 음료로 올 여름도 나십시오. 

그렇다면 주님이 주신다는 신령한 음료는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신령한 음식은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신령한 음료는 이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 39절 이하입니다.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성령이 신령한 음료입니다. 부디 말씀과 성령으로 만족하십시오. 모두 가나안에 들어가십시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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