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의 대면(시 3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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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7. 23.
죽음과의 대면
시 39:1-13
시편 제38편이 투병상황이었다면 이 39편은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힘들고 어려울 때 자칫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말실수를 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아예 자기 입에 재갈을 물리고 침묵하길 원합니다(1절).
그러나 그것은 결코 문제해결의 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속에서는 분노가 끓고 있습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불이 붙으니 … >(3절). 그 분노는 자기 운명에 대한 분노일 수도 있고, 나아가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분노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고난 당할 때의 지나친 침묵은 차라리 정신병이 되고 우울증이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할 일입니다.
짧음과 덧없음
천국을 믿는 신앙인들도 죽음은 받아들이기 힘들어합니다. 천국은 가고 싶어 하지만 죽기는 싫어합니다. 따라서 믿는 자들에게도 죽음을 받아들이는 연습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무조건 <믿습니다!>하는 식의 맹목적인 답을 반복하기보다 오늘 시인의 태도처럼 죽음을 정면으로 대면하며 사색하는 겁니다. 인생이란 언젠가는 죽음으로 끝나며, 그 죽음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훈련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죽음의 위기를 맞으며 비로소 인생의 짧음과 덧없음을 깨닫습니다.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5절). 그야말로 한 뼘 인생입니다. < … 참으로 인생이란 모두 헛될 뿐이니이다>(11절). 추운 날 유리창에 입김을 불면 뿌옇게 김이 서리다 금방 사라지고 말듯이 인생은 그렇게 덧없이 사라지는 존재라는 깨달음입니다.
소망은 오직 주께만
어리석게도 인간은 이런 지혜를 건강을 다 잃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두 발로 든든히 걸어 다닐 때는 아직 인생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모릅니다. 더구나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 인생이 되면 무심코 흘려보낸 세월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절감하며 더없이 안타까워합니다. 그러므로 젊을 때, 건강할 때 인생의 짧음과 덧없음을 깨닫는 자야말로 정말 지혜로운 자입니다. 인생을 낭비하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데 우리는 너무도 쓸데없는 일에, 허무한 일에, 싸우고 미워하는 일에 너무 많이 허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짧은 인생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가끔 연약하게도 하시고 병중에 처하게도 하십니다. 시인도 인생의 연약함을 통해 비로소 영원한 것을 사모하는 지혜를 얻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7절).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13절). 이를 표준새번역은 이렇게 옮겼습니다. <숨 한 번 돌릴 수 있도록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내게서 눈길 한 번만 돌려주십시오.> 내게서 주의 눈길을 돌려 달라는 것은 나를 외면해 달라는 뜻이 아니라 잠시 주의 징계를 멈춰 달라는 뜻입니다. 짧은 나머지 생애라도 평안 가운데 거하게 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시인의 이런 진솔한 기도에서 우리는 오히려 부활의 소망을 봅니다. 이 시는 인생의 덧없음을 솔직히 드러냄으로써 역설적으로 부활의 소망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있습니다. 칼빈은 51세의 많지 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로마서 8장 18절 말씀을 반복하여 암송하며 자신의 최후를 맞았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지금 당신은 어떻습니까? 그게 죽음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