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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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왕으로 말하면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가장 빼어난 현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실은 가장 피비린내나는 골육상쟁을 치러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원래 설득이나 참을성 있는 대화보다는 단호하게 칼로 해결해 버리는 전제군주의 전형이었습니다. 그러나 처절한 권력투쟁의 암투와 모살 끝에 왕권을 쥐고 난 다음부터는 달라졌습니다. 왕위에 오르긴 했지만 더 이상 칼을 휘두르는 방식으로는 백성들을 다스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렇게 많은 백성들을 제가 어떻게 재판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하나님께 호소한 것은 막상 다스리는 일을 맡고 보니 권력을 쟁취하던 과정과는 또 다른 문제 앞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지혜>를 간구한 것입니다. 결국 그가 지혜를 얻어 영특해졌다는 것은 갑자기 머리가 좋아졌다는 뜻이라기보다 문제 해결의 방도가 획기적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칼의 논리와 칼에서 최후의 보장을 찾던 종래의 신념을 버리고 생명을 중시하고 생명 구하는 일을 자기 통치관의 기초로 삼았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그런 솔로몬 앞에 일찌기 경험해 보지 못했던 난해한 미션 하나가 주어집니다. 몸을 파는 두 여인이 그 씨를 알 수 없는 한 아기를 놓고 진실 게임을 벌였습니다. 서로 자기 아기라고 우기며 왕 앞에서까지 막무가내로 다투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DNA 검사로 간단히 해결할 문제였지만 당시로서는 여간 난감한 송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재판석에 앉은 솔로몬 왕은 흥분하지도 격노하지도 않은채 태연히 <칼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가장 당혹스러워한 것은 역시 명령을 받은 신하들이었습니다. 어쩌자는 것인가? 하기야 소유권을 확정하는 방식으로는 칼처럼 분명한 것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소유권 분쟁에서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선택해 온 것은 언제나 이것은 내 것이고 저것은 네 것이라는 식의 날카로운 칼질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과정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것은 곧 <생명과 소유의 대립>이었습니다. 칼은 소유를 확정해 주는 대신 생명을 앗아갑니다. 반면 소유를 포기하면 아기의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지혜의 핵심이 있습니다. 과연 무엇을 택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솔로몬의 위대한 지혜는 바로 그 첨예한 대립의 한가운데 서서 결국은 생명의 힘이 칼의 힘을 이길 것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었다는 데 있습니다.
지금은 모두가 칼을 휘둘러 소유의 경계를 확정짓는 사회를 당연시하고 그 과정에서 더러 상처가 나고 피를 보는 일이 생겨도 이를 불가피하다고 여기며 오히려 소유를 포기하고 생명을 지키려는 노력을 어리석은 짓으로 치부하는 시대입니다. 잠결에 자기 아기를 죽인 여인이야말로 소유를 위해서라면 생명 쯤은 희생돼도 좋다는 사람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세상 지혜란 바로 그런 일들을 교묘히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능력을 의미하지만 진정한 지혜란 그런 것들이 가진 허구를 꿰뚫어 볼뿐 아니라 다정하고 따뜻한 가슴으로 칼 마저도 녹여 새로운 삶의 꿈을 부화시키는 열정입니다.
하여 이 무더운 여름 우리가 밤을 새더라도 간구해야 할 바는 생명을 파괴하면서까지 탐욕을 채우고자 하는 이 세상 지혜가 아니라 교활한 꾀 앞에서 억울하게 희생될지도 모를 작은 생명 하나나마 끝까지 지켜야 옳다는 솔로몬의 지혜, 바로 그것일 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