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00718m: 빗속을 달리라!(왕상 18:41-46)

2010년 7월 18일 주일낮예배
본문: 왕상 18:41-46
제목: 빗 속을 달리라!

[41]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43]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요 며칠 새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지방에 따라서는 피해도 좀 난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부분도 장대비가 쏟아집니다. 45-46절입니다. “[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엄청난 비가 쏟아지는데 엘리야가 그 쏟아지는 장대비 속을 달리고 있습니다. 갈멜산에서 이스르엘까지는 22km입니다. 하프 마라톤 코스입니다. 그런 먼 길을 엘리야가 달렸다는 겁니다. 왜 그는 그토록 신들린 사람처럼 빗속을 달렸습니까? 기뻐서, 감격해서 그렇습니다. 무려 3년 반 동안 비 한 방울 오지 않던 땅에 지금 큰 비가 쏟아지니 신이 나서 그랬습니다. 마차보다 더 빨리 마차 앞에서 달렸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도 비가 몇 개월만 안 와도 아우성인데, 오로지 하늘만 쳐다보고 살았던 지금부터 2800년 전에 무려 3년 반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않았으니 사람이 어떻게 살았겠습니까. 그런데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 기도해서 장대비가 쏟아지니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그렇다면 엘리야는 어떻게 기도했기에 그런 응답을 받았으며, 또 오늘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장대비 속을 달리는 기쁨과 감격을 맛볼 수 있을까요?

우선 엘리야는 구체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엘리야는 언제나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는 막연하거나 애매하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확실하게 비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딱 부러지게 기도해야 합니다. 애매하거나 모호한 기도는 못 씁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는 어떤 사건이 있었냐면,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 도합 850명과 맞장을 떴습니다. 거기에서는 엘리야가 어떻게 기도했냐면, 불을 내려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본문 앞인 38절을 보십시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이렇게 엘리야는 기도할 때 비를 주십시오, 불을 주십시오 하고 기도했습니다. 자기의 필요를 콕콕 집어 간구한 겁니다. 우리처럼 중언부언하거나 횡설수설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분명하게 비와 불을 구한 겁니다. 하나님은 이런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우리의 기도가 모호하면 응답도 모호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막연하면 응답도 막연하고, 애매한 기도면 응답도 애매합니다. 기도하실 때 여러분의 필요를 진솔하고 적나라하게 하십시오. 돈이 얼마가 필요하다, 앓고 있는 병이 낳게 해달라, 몇 평짜리 집을 달라, 내 자식 어느 대학에 합격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괜히 나라를 달라거나 세계를 달라고 하지 마십시오. 기도원에 가면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이 세계를 달라고 기도합니다. 무슨 준비나 대책이 있다고 세계를 줍니까? 그것은 허영이요 허세입니다. 그런 기도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범우주적인 기도는 하지 마시고, 진솔하고 소박하게 바라고 원하는 바를 콕콕 집어 기도하십시오.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다 아십니다. 하나님이 몰라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보다 더 잘 꿰고 계시지만,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는 안 주십니다. 반드시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신 후에 응답하십니다. 주님이 알아서 주시지 않고, 불을 내려 달라고 하면 불을 주시고, 비를 내려 달라고 하면 비를 주십니다. 왜 하나님이 그렇게 하십니까? 나보다 더 나의 필요를 잘 알고 계신다면, 알아서 해 주시지 않고 왜 기도하게 한 후 응답하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공기나 햇빛을 자명하게 생각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복으로 생각하지 않듯이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알아서 다 해 주시면 아무도 그게 하나님의 은혜와 복으로 생각하여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신 후에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응답해 주시는 이유는 그래야 그 응답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는데도 하나님이 주시면 우리는 그게 하나님이 주셨다고 생각하지 않고, 재수나 운이나, 조상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릴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한 후에 응답하셔서 하나님으로부터 온 은혜요 복임을 부인할 수 없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엘리야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본문 42절입니다.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이 얼마나 간절합니까? 엘리야의 기도하는 자세는 항상 이렇게 처절합니다. 야고보서 5장 17절 이하입니다.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엘리야는 위대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무릎을 꿇고 양 무릎 사이에 머리를 처박고 기도했습니다. 위대한 기도의 사람 엘리야가 이렇게 기도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우리는 아예 땅을 파고 머리를 묻어야 할 것입니다. 기도는 입이나 혀로 하는 게 아닙니다. 온몸으로 하는 겁니다. 온몸에서 그 간절함과 처절함이 배어 나와야 합니다. 기도는 형식이나 요식이 아닙니다. 나의 간절함을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그런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고, 주님의 심금을 울리고, 응답됩니다. 주님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누가복음 22장 44절입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하나님은 엘리야의 그런 처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3년 6개월 동안 비오지 않던 땅에 비를 내리셨습니다.

엘리야는 확신을 갖고 기도했습니다. 41절입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아직 비가 오기 전인데, 이미 엘리야는 빗소리를 듣습니다. 믿음의 귀와 눈으로 먼저 듣고 먼저 본 겁니다. 비에 길이 막히기 전에 아합 왕이여 빨리 길을 떠나라고 합니다. 이게 기도의 진수입니다. 내가 기도하면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비를 내려 줄 줄로 믿었던 겁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종달새 알에서 종달새의 소리를 이미 듣는 게 믿음입니다. 비를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면 이미 큰 빗소리를 들으며 감사하고 기뻐하는 겁니다. 이게 확신에 찬 기도이고, 응답 받을 수 있는 기도입니다. 기도하면서 기도응답의 비전을 보는 겁니다. 그러면서 미리 기뻐하고 감사하는 겁니다. 이런 기도 앞에서 하나님은 꼼짝하지 못하십니다. 선제적인 기도, 선수를 치는 기도, 먼저 그림을 보고 환상을 보고, 먼저 기뻐하고 감사하는 기도, 이게 엘리야의 기도였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믿음으로 기도하면 먼저 빗소리를 들어야 실제 비가 온다는 겁니다. 기도하면서 내가 바라는 것의 실상을 먼저 봐야 그 꿈이 현실이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확신은커녕 항상 불신으로 기도합니다. 설마 내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실까 하고 기도합니다. 형식으로 요식으로 종교적 의식으로만 기도합니다. 눈만 감고 횡설수설할 뿐입니다. 출발부터가 우리는 불신으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이 없는 겁니다. 비를 내려주십시오 하며 이미 큰 비의 환상을 보고, 큰 빗소리를 귀로 들어보십시오. 반드시 응답됩니다. 엘리야는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엘리야는 응답받기까지 기도했습니다. 43절입니다.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는 말은 응답의 조짐이 보일 때까지 가라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7이라는 수는 만수요 완전수입니다. 응답이 올 때까지 가서 확인하라는 뜻입니다.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하겠다는 고백이요 다짐입니다. 기도는 인내와의 한 판입니다. 기도는 내 인내심의 한계에 도전하는 행위입니다. 기도의 시한은 응답받을 때까지 입니다. 내가 시한을 정해 놓고 그때까지 응답해 주십시오 하면서 떼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왜냐면 내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의 시간에 승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가장 이상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시간이 정확합니다. 그 시간이 내게 가장 유익합니다. 그러므로 그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일곱 번이든 일흔 번이든 그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엘리야는 그렇게 기도해서 결국은 승리했습니다. 여러분, 위대한 기도의 선진 엘리야에게서 많은 도전과 깨달음을 얻으십시다. 우리도 이 여름에 다 큰 기쁨과 감격으로 빗속을 달리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시다. 


원문 자료와 첨부

  • 미디어: 원래 주소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