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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lang="EN-US">2010. 7. 15.</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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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너무도 인간적인 기도</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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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시 35:1-14</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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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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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세상에 이처럼 진솔한 기도가 또 있을까요? 시인은 28절 내내 자기를 괴롭히는 대적들을 향해 경멸과 저주를 퍼붓고 있습니다. &lt;내 생명을 찾는 자들이 부끄러워 수치를 당하게 하시며 나를 상해하려 하는 자들이 물러가 낭패를 당하게 하소서. 그들을 바람 앞에 겨와 같게 하시고 여호와의 천사가 그들을 몰아내게 하소서. 그들의 길을 어둡고 미끄럽게 하시며 여호와의 천사가 그들을 뒤쫓게 하소서&gt;(4-6절). 특히 6절의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그들의 길을 어둡게 하고 미끄럽게 하여 뇌진탕이라도 당하게 해 달라지 않습니까? 거의 저주에 가까운 기도입니다. 사랑과 용서라는 단어에 익숙한 우리를 몹시 당혹스럽게 하는 별난 기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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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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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솔직함</span></p>
<!-- paragraph:p0008 -->
<p><span>우리의 기도의 문제점은 언제나 가식적이고 위선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전혀 마음은 아닌데도 입으로만 경건한 체, 관대한 체 미사여구를 늘어놓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이지만 본심은 언제나 자기 영광이고, 입으로는 하나님의 뜻이지만 내심은 오로지 자신의 탐욕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힘이 없습니다. 차라리 적나라하게 기도하시고, 원색적으로 간구하십시오. &lt;나 성공하고 싶습니다.&gt; &lt;물질의 복을 주십시오.&gt; 혹은 &lt;나를 괴롭히는 저 원수들을 벌해 주십시오.&gt; 오히려 이런 기도가 훨씬 더 인간적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의 생명은 진솔함에 있다는 것입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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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 paragraph:p0010 -->
<p><span>미워함</span></p>
<!-- paragraph:p0011 -->
<p><span>우리는 자주 제대로 감당하지도 못하면서 너무 빨리, 너무 쉽게 용서와 화해로 가 버립니다. 실은 그것도 우리의 정신 건강과 영혼에 꼭 이롭지만은 않습니다. 스트레스 해소 역시 기도의 소중한 기능 가운데 하나임을 기억하십시오. 이를테면 하나님은 우리의 친정 어머니와도 같은 분이십니다. 옛 며느리들은 무정한 시댁과 무능한 남편에게서 받은 온갖 스트레스를 이따금씩 친정 어머니 앞에 다 쏟아 내고 그것으로 다시 몇 년을 버티곤 했습니다. 시편이 언제나 우리에게 무한한 공감과 감동을 주는 것은 시인이 이렇듯 가식 없이 자기의 속내를 다 드러내며 한탄하고, 탄원하고, 때로는 원망하고, 남을 성토하기 때문입니다. &lt;그들이 까닭 없이 나를 잡으려고 그들의 그물을 웅덩이에 숨기며 까닭 없이 내 생명을 해하려고 함정을 팠사오니 멸망이 순식간에 그에게 닥치게 하시며 그가 숨긴 그물에 자기가 잡히게 하시며 멸망 중에 떨어지게 하소서&gt;(7, 8절).</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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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 paragraph:p0013 -->
<p><span>돌아 옴</span></p>
<!-- paragraph:p0014 -->
<p><span>여기서 특히 시인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그 모든 대적자들이 다 자신의 옛 친구들이었다는 것입니다. &lt;나는 그들이 병 들었을 때에 굵은 베 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gt;(13절), &lt;내가 나의 친구와 형제에게 행함 같이 그들에게 행하였으며 내가 몸을 굽히고 슬퍼하기를 어머니를 곡함 같이 하였도다&gt;(14절). 친구의 병 낫기를 위해 금식기도하고, 그들의 즐거움에 친형제처럼 기뻐하고, 그들의 모친상을 내 어머니상처럼 슬퍼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결국은 돈 때문이었는지, 권력 때문이었는지, 누군가의 모함 때문이었는지 다 자기를 배신하고 돌아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진술합니다. &lt;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gt;(13절). 대적자들을 위한 시인의 중보기도가 다시 자신의 품으로 돌아왔다는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중보기도가 복된 이유는 그 사람이 그 기도를 받지 않으면 그게 다시 중보 기도자의 품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주님도 &lt;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가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라&gt;(마 10:12,13)고 하셨습니다. 중보기도를 많이 하십시오. 당신에게도 유익하며 복된 기도입니다.</span></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