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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3m: 부활의 비밀(고전 15:3-8)

2008년 3월 23일 부활주일 낮예배

본문: 고전 15:3-8
제목: 부활의 비밀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부활절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밝은 빛과 기운이 넘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여러분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부활에 관한 말씀만 나옵니다. 여기에는 부활에 관한 크고 작은 주제가 많이 나오는데, 오늘 설교본문은 주님의 부활에 대한 증인들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부활 후에 당신을 드러내셨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들이 나옵니다. 게바에게 보이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입니다. 12제자에게 보이셨고,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게 보이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거의 오합지졸이었습니다. 그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어부노릇을 하며 살았습니다. 사회계급으로 말하면 가장 바닥에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교육도 제대로 받아 보지 못했고, 정통 유대인이라 보기도 어려웠고, 갈릴리이기에 가장 변방 출신입니다. 심지어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나겠냐는 말까지 있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자 다 달아났습니다. 그들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 보인 것입니다. 주님이 돌아가시자 그들은 다락방에 다 숨어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주님을 만나고 모두 다락방을 박차고 나와 불덩어리가 되었습니다.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주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즉각 베드로가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하루에 삼천 명, 오천 명씩 가슴을 치며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없었다면 그런 변화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루에 삼천, 오천씩 회개한 사람들은 불과 사십일 전에는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며 악을 쓰던 사람들입니다. 7절에 보면 야고보 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는 아닙니다. 예수님 제자는 세배대의 아들과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두 명이 있습니다. 여기의 야고보는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였습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그들 형제는 예수님을 좋은 눈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부활 후에 예수님이 동생 야고보를 만난 것입니다. 그는 초대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신약성경의 야고보서는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가 쓴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지도자 가운데 야고보가 가장 뛰어났습니다. 그 위상이 가장 높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또 누구에게 보이셨습니까? 맨 나중에 바울에게도 보이셨습니다. 만삭 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다고 했습니다. 바울의 변화는 참으로 불가사의 합니다. 바울은 도대체 누구였습니까? 예수 믿기 전만 해도 그는 만대에 빛나는 지성인으로서 당대 최고의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습니다. 그 이력만으로도 대단한 것입니다. 그는 유대교의 열렬한 전사였습니다. 기독교 라는 이단을 박멸하려고 나섰습니다. 스데반을 죽이는 데 앞장섰습니다. 다마스커스 라는 곳에 기독교인들이 숨어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들을 색출하여 처형하기 위해 그곳으로 가다가 그 가는 길에 부활하신 주님을 뵈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바울을 만나주지 않았던들 그는 절대 변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이 자기에게 나타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사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직접 부활의 증인이 되어달라는 위임을 받고 사도가 되었다는 겁니다. 사실상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했습니다. 당신이 언제 예수님의 제자였냐고 의문을 제기했으나, 바울은 끝까지 자기의 사도직을 강변합니다.

이러한 바울이 부활장인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에 대해 어떻게 증거하고 있습니까? 이천 년 전에 있었던 주님의 부활사건과 오늘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 문제를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0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주님의 부활이 우리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이유는 주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은 우리의 부활을 담보했다, 보증했다는 뜻입니다. 사과나무를 심어서 3-4년 키우면 사과가 열립니다. 사과의 첫 열매가 달립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내년부터는 사과가 줄줄이 열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첫 열매가 되셨기에 앞으로 우리도 부활할 것임을 보증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보면서 이제 부활의 시대가 개막되었구나 하며 믿는 것입니다. 이천년 전에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신 주님의 부활사건과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는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몇 번째 열매가 될지 모르지만 우리는 주님 다음의 열매입니다. 그 다음 순위로 우리도 주님처럼 부활할 것입니다. 주님이 죽음 가운데서 십자가 상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처분하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에 우리도 부활해서 영생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주님의 부활사건에서 확신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부활이 무엇입니까? 죽음에서 살아난 사건이 부활입니까? 죽음에서 살아난 사건은 부활이 아니라 소생입니다. 예수님의 친구 나사로 같은 사람의 경우는 소생입니다. 죽은 사람이 단순히 다시 살아난 사건일 뿐입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 나인성 과부의 아들 모두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부활이 아닙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부생(復生)입니다. 부활은 죽었다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부활의 핵심은 변화입니다. 예를 들면 주님이 재림하실 때 죽지 않고 산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산 채로 변화가 됩니다. 신비한 몸으로 바뀝니다. 그러니까 부활이라는 것은 반드시 죽었다가 살아나는 사건은 아닙니다. 새로워지는 것, 이것이 부활의 핵심입니다. 35-52절입니다: “[35]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36]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37]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뿐이로되 [38]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39]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40]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41]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42]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주님의 재림의 나팔이 울릴 때 잠자는 자들이 다 변화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까지 살아있는 사람들도 변화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변화하냐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않을 자로 변하고, 욕된 것이 영광스러운 것으로 변하고,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화한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의 몸으로는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의 몸은 소모품입니다. 예를 들어 죽었다가 다시 산 사람은 결국 죽습니다. 이것은 부활체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의 몸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도, 자연도 환경도 다 변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그 때는 어린아이가 독사 굴에 손을 넣어도 괜찮습니다. 사자가 짚을 먹는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도 다 새로워집니다. 물론 부활한 이후에도 우리의 기억은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살던 가족관계는 그대로 유지되지는 않습니다. 그 때는 모두가 한 분 아버지를 모시고 한 형제요 자매요 연인입니다. 이처럼 부활세계는 완전히 변화된 세계입니다. 아마 그 때는 성형수술 같은 것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부활은 단순히 죽었다가 살아나는 사건이 아니라 본질적인 변화의 사건입니다. 오늘 이것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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