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00711n: 바울의 고백(행 20:22-27)

2010년 7월 11일 주일오후예배/교회학교 교사헌신예배
본문: 행 20:22-27
제목: 바울의 고백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5]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26]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7]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우리가 함께 본 사도행전 20장 22절 이하 27절은 바울의 진술이요 고백입니다. 어디서 한 고백이냐면, 에베소 교회 장로들 앞에서 한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소아시아의 대표적인 교회였습니다. 지금은 터키 서부 해안 도시입니다. 바울이 여기에서 3년간 가르쳤습니다. 주후 65-68년까지 가르쳤습니다. 에베소에는 유명한 두란노 서원이 있었고, 거기에서 3년간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했습니다. 참으로 열심히 사역했습니다. 바울이 이제 예루살렘으로 가면 체포되고, 로마로 호송되어 거기서 수감생활을 하다가 순교합니다.

여기에 보면 자기에게 배운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이 무엇이라 고백하느냐면, 26-27절입니다. “[26]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7]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겁니다. 하나님의 뜻을 다 전했다는 것은 열심히 가르쳤다,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명을 받은 사람이 자기 사명에 충실하지 못하면 많은 사람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무엇이라고 하느냐면,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다’고 합니다. 그만큼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다했다는 겁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교사의 사명을 다했기에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다는 겁니다. 사도행전 20장 19절입니다.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3년간 이렇게 헌신했기에 이제 여러분의 피에 대해 깨끗하다는 겁니다. 바울이 거짓을 말했거나 과장을 했다면 에베소 교회 장로들이 바울의 이 말씀에 감동을 받았겠습니까? 그들이 나중에는 바울을 끌어안고 함께 울며 이별을 했습니다. 이점에서 바울은 교사의 귀감이 됩니다. 바울의 3년간의 사역은 정말 충실했고 최선을 다한 것이었습니다. 사명을 다 감당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전에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불러놓고 이런 고백을 하며, 자기가 없더라도 교회를 잘 지키라고 당부하는 겁니다. 이제 예루살렘으로 가면 체포된다는 것을 바울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36절 이하입니다. “[36]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37]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38]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푸른교회 교회학교 교사들은 이런 교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생명의 피에 대해 깨끗한 교사가 되십시오. 아무리 환경이 열악하고 척박해도 하나님이 권고하신 사명, 즉 생명을 관리하고 양육하는 데 아무 흠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서 어떤 각오와 자세로 사역했습니까? 그는 초지일관한 믿음으로 사명에 임했습니다. 본문 24절입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와 비슷한 표현이 디모데후서에도 나옵니다. 4장 7절입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바울 신앙의 특색 중 하나는 초지일관입니다. 한결같은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바울은 젊은 나이에 다메섹에서 회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순교하기까지 성경 어디를 봐도 다른 소리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회심한 순간부터 순교의 순간까지 한결같은 믿음의 길을 걸었습니다. 자기가 달려갈 길을 다 마치기까지 초지일관한 믿음을 지켰습니다. 우리는 1년이 못 갑니다. 우리의 결심이 연말까지 못 갑니다. 그렇다고 바울의 생애를 보면 평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얼마나 시련, 핍박, 박해가 많았습니까. 그의 전도여행에 우여곡절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럼에도 그는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우리처럼 낙심천만해서 바닥으로 추락한 일이 없었습니다. 전도는 전도대로 하고, 장막 짓는 일로 자기 생활과 전도비까지 조달하고, 그런데도 어디를 봐도 회의에 빠진 적이 없었습니다. 정말 불가사의할 정도입니다. 자기의 달려갈 길을 마칠 때까지 한결같은 믿음으로 자기의 사명을 다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서의 3년간의 목회도 바로 이렇게 한 겁니다. 두란노 서원에서 3년간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에 한결같이 임했기에, 마지막에 에베소 교회 장로들 앞에서 내가 너희의 피에 부끄러움이 없다고 한 겁니다. 사정이 바뀌고 형편이 달라진다 해도 믿음이 변하면 안 됩니다. 뜨거운 신앙생활 안 해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게 한 때만 그래서는 안 됩니다. 항상 뜨거운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지금은 왜 뜨겁지 않습니까? 왜 열심을 내지 않습니까?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데 왜 우리는 조석으로 변합니까? 바울처럼 변함없는 믿음과 사명감으로 주님의 사역에 임합시다. 그래서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하십시다. 세상 사람이 다 변해도 믿음만큼은 한결같아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을 금으로 비유합니다. 왜냐면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정금 같은 믿음으로 사역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일편단심의 사명감으로 주님을 섬기며 교회를 섬긴 사람입니다. 24절 입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사명에 살고 사명에 죽은 사람입니다. 얼마나 오늘 본문도 비장한 고백인지 모릅니다. 22-23절입니다.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지금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릅니다. 성령은 계속해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서 결박과 환난이 그를 기다린다고 하십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가겠다고 합니다. 사실 성도들은 말렸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험한 일을 당할 터이니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알고 있었으나 자신의 길을 갑니다. 일편단심의 사명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다 사명자입니다. 다 소명자입니다. 누가 뭐래도 주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가 있습니다. 그게 5, 2, 1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다 달란트는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받은 사명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바울처럼 받은 사명에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시며 기쁨을 누리십니다. 푸른교회 교회학교 교사들이여, 부디 바울과 같은 일편단심의 사명감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어떤 여건과 환경에서건 주님이 내게 분부하시고 맡기신 사명을 기어이 관철하리라는 결단과 각오로 내게 주어진 사역에 임하십시다. 

바울은 일사각오의 순교정신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25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바울도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순교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죽기를 각오한 사람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신앙도 일사각오의 신앙이었습니다. 순교를 앞두고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최후로 한 설교제목이 ‘일사각오의 신앙’이었습니다. 이 설교 후에 잡혀가 옥사하신 겁니다. 바울도 에베소 교회 장로들 앞에서 마지막으로 행한 고백이 일사각오였습니다. 지금과는 시대가 다르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일사각오의 비상한 신앙이 필요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얼마나 하찮은 일에 신앙과 영혼을 팝니까? 얼마나 우스운 일에 우리의 사명을 팝니까? 주님 때문에 신앙 때문에 사명 때문에 작은 이익조차 용납할 수 없어야 합니다. 일사각오나 순교 같은 얘기는 가당치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 일사각오의 믿음이 있어야 주님을 부인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좇는 참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라는 사람들이 뒷짐을 지고 따라가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바울처럼 순교의 정신으로 주님 뒤를 좇아야 하지 않겠습니다. 더욱 긴장합시다. 더욱 사명감을 고취하고, 우리의 각오를 새롭게 합시다. 그래서 바울의 3년간의 에베소 교회에서의 사역이 우리 푸른교회 교회학교 선생님들에게 큰 도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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