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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4일 주일낮예배/맥추감사주일</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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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본문: 출 23:16</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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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제목: 맥추절을 지키라!</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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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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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맥추절을 지키라! 가을에 지키는 추수감사절이라면 몰라도 요즘은 보리농사도 짓지 않는데, 무슨 맥추절인가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이것은 시대가 변하고 비록 보리농사가 사라졌다 해도 우리가 여전히 계승해야할 소중한 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3500년 전통의 맥추절은 이 시대에도 유효합니다. 그러면 맥추절은 어떤 절기입니까? 우리가 계승해야 할 맥추절의 정신은 무엇입니까?</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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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추절은 한 해의 첫 열매, 토지 소산의 맏물, 짐승의 초 태생을 바치는 절기입니다. 출애굽기 34장 22절을 보면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라고 합니다. 왜 칠칠절입니까? 유월절로부터 일곱 안식일 다음날 지키기 때문에 칠칠절입니다. 왜 초실절입니까? 한 해 밭농사의 첫 열매가 보리기 때문입니다. 또 맥추절은 오순절이라고도 합니다. 왜냐면 유월절로부터 오십 일째 되는 날 지키는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강림하신 날이기도 합니다. 신명기 26장을 보면 맥추절에 여호와께서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드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초실절입니다. 맥추절은 한 해 농사의 첫 열매, 맏물, 초태생을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절기입니다. 이게 바로 맥추절의 가장 중요한 정신이자 원칙입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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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왜 맥추절에는 토지 소산의 맏물, 초실, 초태생을 드려야 합니까? 왜 이것이 중요합니까? 그게 무엇이든 맏물은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중요한 사상입니다. 첫 번째 것은 무조건 하나님 것입니다. 그래서 성별(聖別)하는 겁니다. 수입도 첫 소득, 자식도 장자, 시간도 첫 날 첫 시간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맥추절 정신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해서 그렇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 첫 번째 것은 무조건 하나님의 것입니까? 맏물이 갖는 대표성 때문입니다. 첫 열매는 그 이후에 생산되는 모든 열매를 대표합니다. 맏물은 그 이후에 발생하는 모든 수확의 대표입니다. 첫 수입은 그 이후에 발생하는 모든 수입을 대표합니다. 첫 자식도 모든 자식을 대표합니다. 한 주간의 첫 날인 주일은 한 주간의 모든 날을 대표합니다. 하루의 첫 시간인 새벽은 24시간을 대표합니다. 그래서 새벽기도가 중요한 겁니다. 이런 대표성 때문에 하나님은 그게 무엇이든 첫 번째 것은 오직 하나님의 것으로 성별해 바침으로써 이 세상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것임을 우리 모두가 실천적으로 고백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10의 10을 다 드릴 수는 없기에 모든 것의 첫 번째 것을 바침으로써 내 모든 소유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한 해 밭농사의 첫 수확을 바치는 것은 그 해 모든 밭작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장자를 드리면 내 모든 자식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유럽의 유수한 기독교 국가들의 목사나 신부나 수녀를 보면 다 장남 장녀들입니다. 바로 이런 성경의 맏물 사상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장자를 통해 그 가계에 복을 주십니다. 야곱이 장자권을 훔치는 것도 성경의 이런 맏물 사상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장자 문화 때문에 그런 사건이 발생한 겁니다. 어쨌든 맏물, 초 태생, 첫 열매는 반드시 하나님의 것이라는 인식과 실천이 맥추절의 중요한 정신입니다. 우리도 이 정신을 계승하십시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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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하나님께는 반드시 흠 없고 티 없는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레위기 2장과 23장을 보면 맥추절에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에는 절대 누룩을 쓰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가루나 떡이나 전병이 다 무교병을 바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누룩은 언제나 부패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누룩을 제하라는 것은 흠 없고 순수하며 정결한 맏물을 드리라는 겁니다. 누룩 대신에 정결을 상징하는 소금을 치라고 했습니다. 짐승도 마찬가지입니다. 레위기 22장 20절입니다. “흠 있는 것은 무엇이나 너희가 드리지 말 것은 그것이 기쁘게 받으심이 되지 못할 것임이니라.” 그래서 흠 있는 것을 바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바치는 모든 것은 흠과 티가 없는 제물이어야 합니다. 흠이 있는 것을 바치면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50편 10절 이하입니다. “[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11]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제물에 담긴 흠 없고 티 없는 우리의 중심을 받으시는 것이지, 절대 제물 그 자체에 미련이 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뭐가 아쉬워 수소의 고기를 즐기시겠습니까? 수 염소의 피, 수소의 고기로 표현된 내 중심을 받으시는 겁니다. 무조건 돈만 내면 헌금이 되는 게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흠과 티가 없어야 합니다. 누룩 대신에 소금을 친 것이어야 합니다. 옛날에는 제사장들이 사전에 엄격하게 제물을 검열했습니다. 백성들이 제물을 가지고 오면 그 제물을 검열해서 흠이 있는 짐승은 절재 못 바치게 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그 제도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외부에서 반입하는 제물에 대해서는 제사장들이 무조건 부적합 판정을 내리고, 성전 뜰의 제사장 하수인들이 파는 제물에 대해서는 무조건 합격 판정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제사장들이 파는 제물을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며 성전을 정화하신 겁니다. 주일 성수도 온전히 하셔야 합니다. 십일조도 온전히 하십시오. 자기 기준으로 하지 마십시오. 하여간 아직도 우리의 제물에는 흠과 티가 많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순도를 높여야 합니다. 온전한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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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맥추절은 희생을 드리는 절기입니다. 레위기 23장 9절 이하를 보면, 맥추절에 드리도록 되어 있는 제물의 목록이 나옵니다. 고운 가루에서부터 어린 양, 수 염소, 수소가 나오는데 그 규모가 대단합니다. 심지어 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희생 제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제물은 희생을 드리는 겁니다. 예수 믿으며 우리는 너무 얌체같이 믿습니다. 복과 수확은 바라면서도 희생은 절대 원하지 않습니다. 이런 모순이 없습니다. 한 톨의 보리가 썩기를 거부하면 어떻게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습니까? 부담을 느끼며 신앙 생활하는 게 맞습니다. 희생하며 양보하며 신앙 생활하는 게 옳습니다. 제물은 희생입니다. 교회 생활은 그 자체가 희생입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희생을 요구하시는 게 아닙니다. 당신이 이미 독생자를 우리의 구원을 위해 희생을 하신 겁니다. 우리도 그렇게 희생을 드려야 복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금도 희생 없이 예수를 믿을 수 있는 교회를 찾아다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교회는 세상에 없습니다. 희생 없는 예배는 없고, 희생 없는 감사는 없습니다.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제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제물 갖고 와서 그것을 태워 바치는 게 제사의 전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희생의 제물을 기뻐하십니다. 희생이 하나님이 흠향하시기에 합당한 맥추절의 제사고, 또 맥추절에 우리가 드려야 할 제물입니다. 맥추절에 이런 기본 정신들을 바르게 계승하십시다. 첫 열매를 드리고, 흠 없고 티 없는 제물을 드리고, 희생을 바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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