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
읽기 설정
미리보기 인용
복사되는 내용은 인용 정보와 미리보기 주소다.
현재 미리보기 주소:
공성이불거,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공을 세우되 거기 머물지 않는다>. 이 얼마나 시원하고 유쾌한 말입니까? 저는 명동 가톨릭 여성회관에서 고 함석헌 선생께 배운 이 고사성어가 하도 좋아 혹 성경에는 이런 말씀이 없을까 하고 눈여겨 봤는데 과연 없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요한복음을 읽다 4장에 나오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다르다>(36-38절)고 하신 주님 말씀이 마음에 확 와 닿으며 이것이야말로 공성이불거의 진수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무르익은 곡식에 낫을 댈 때라든가 혹은 많은 이윤을 낼 때, 혹은 권력을 잡을 때 큰 기쁨과 보람을 느낍니다. 그러나 사실 그런 기쁨 속에는 <내가 심은 것은 반드시 내가 거둬야한다>는 철저한 이기성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거기에는 홀로 즐기는 기쁨만 있을 뿐 더불어의 기쁨은 없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런 사람에게는 친구도, 진정한 사랑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자신의 수확의 대상으로만 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가 거두는 모든 것은 다 자기의 공로에 불과합니다. 오늘의 처지, 오늘의 성공이 오로지 자기의 능력이나 노력의 결과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에게는 하등 감사해야 할 이유가 없고, 은총이니 은혜니 하는 개념도 무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감사하는 심정이 없는데도 정말 기쁨이라는 게 있을 수 있을까요?
참 기쁨은 삶의 감격에서 옵니다. 또 삶의 감격은 은총이요 은혜라는 느낌이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거둬들이는 자의 기쁨에 비해 심는 자의 기쁨도 있습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자기를 내어주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 홀로의 기쁨이 아니라 더불어의 기쁨입니다. 뿌리는 이와 거두는 이가 함께 기뻐하는 기쁨입니다. 내가 심은 것을 남이 거두면서 기뻐하는 기쁨에 내가 참여한다는 것은 정말 삶의 환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심은 것을 남이 거둔다는 사실에서 보람을 느끼는 데는 단순히 심고 거두는 그 자체보다도 너를 만나는 공존의 기쁨이 있습니다. 또한 그것은 지금의 내 삶도 실은 내가 심은 것을 거둔 게 아니라는 자각이기도 합니다. 여기 내가 있음은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이가 따로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그에게는 삶이 감사한 것이며 또 받은 자로서의 그 감격과 기쁨 때문에 다시 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결코 거두는 것을 목표로 삼거나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심는 일을 자기 할 일의 전부로 알고 심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도 거저 받았기 때문이요, 심는 일 자체에서 이미 거두는 자의 기쁨을 함께 누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 앞에는 심는 때와 추수 때가 구분되어 있지 않기에 실은 언제나 추수할 것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심은 것을 거두고 당신은 내가 심은 것을 거두고>, 여기에 바로 보람과 기쁨에 찬 아름다운 삶의 원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현실은 그와 정반대입니다. 내가 심은 것이니 반드시 내가 거두겠다는 태도는 당연한 것이고, 문제는 네가 심은 것까지도 내가 거두되 수백 배, 수천 배까지도 수확하겠다는 데서 바로 우리의 삶의 장이 극도로 황폐화되고 있습니다. 잘 산다는 것은 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내가 거두지도 못하는데 심으면 무엇 하는가 하는 낡은 생각을 버리고 누군가가 값지게 거둘 기쁨을 앞당겨 보며 언제 어디서나 묵묵히 심는 자가 됩시다.
그게 바로 <공성이불거> 정신의 참된 구현일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