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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7m: 피스 메이커(마 5:9) 북한선교주일

2010년 6월 27일 주일낮예배/북한선교주일
본문: 마 5:9
제목: 피스 메이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엊그제가 6.25 발발 60주년이었습니다. 6.25는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에 촉발된 전쟁임에도 과거의 전쟁이 아니라 아직도 휴전 중인 전쟁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전시(戰時)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종전 선언한 끝난 전쟁이 아닙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6.25가 다른 민족과 싸운 게 아니라 내 형제 부모와 싸운 전쟁입니다. 그럼에도 어쩌면 그토록 지독하게 죽고 죽이는 전쟁을 벌였는지 모릅니다. 가장 야만적이고 가장 비인간적인 전쟁입니다. 누가복음 19장 41절 이하를 보면, 주님이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을 보시며 우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왜 우셨고, 우시면서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아직도 너희는 평화를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안타까워서 우신 겁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 한반도를 바라보신다면 어떻게 하실까요? 저는 당연히 주님이 옛날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면서 우셨던 것처럼 우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말로는 평화공존, 평화통일을 얘기하지만 과연 무엇이 평화인지를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무엇이 평화를 위한 것입니까? 아무도 모릅니다. 주님의 지적처럼 우리 눈에는 아직도 평화가 철저하게 가려져 있을 뿐입니다. 아무도 평화를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주님이 보실 때 얼마나 딱하고 안타까우시겠습니까?

그러면 우리 눈에 여전히 숨겨져 있다는 평화란 대체 어떤 것입니까? 우리가 몰라서 주님이 우실 수밖에 없었던 그 안타까움 가득한 평화 말입니다. 우선 주님이 평화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같은 장 16절에서는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라고 합니다. 주님이 평화이시고, 평화의 화신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역이 복음이요 평화를 위한 일입니다. 주님이 중간에 막힌 담을 허셨다는 것은 아시는대로 예루살렘 성전 뜰에 있던 담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제사장과 유대인 남성, 유대인 남성과 유대인 여성, 유대인 여성과 이방인 사이에 담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이방인의 담에는 ‘이방인이 이 담을 넘으면 죽는다’고 써있었습니다. 실제로 이방인이 그 담을 넘으면 어떤 식으로는 죽었습니다. 그래서 로마군도 그 담을 넘지 말라고 경계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담을 평화이신 주님이 허셨다는 것입니다. 주인과 상전 사이, 종과 종 사이의 담, 유대인과 이방인의 담을 다 허신 겁니다. 마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통독이 이루어진 것처럼 원수지간이었던 둘을 하나로 만드신 겁니다. 따라서 우리의 남북한도 주님만이 우리를 하나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이 통일을 이룩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평화라는 말은 대단히 비장한 선언입니다. 초대교회 때는 순교를 각오한 선언이었습니다. 초대교회 때는 그리스도의 평화(Pax Christina)가 아니라 팍스 로마나(Pax Romana) 시대였습니다. 로마의 평화는 힘의 평화입니다. 경제, 군사, 외교력의 평화 곧 힘의 평화였습니다. 주먹 센 놈이 뒷골목을 평정하는 물리력에 의한 평화였습니다. 그게 주님 시대에 세계를 석권하던 평화였습니다. 따라서 팍스 로마나는 거짓 평화입니다. 이게 팍스 로마나의 적나라한 실체입니다.

지금은 이 지구촌을 어떤 평화가 지배하고 있습니까?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입니다. 미국의 평화입니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미 국방성의 자료입니다. 지난 달 5월 3일의 자료입니다. 지금 미국의 핵탄두는 5,113기입니다. 과거 60년대 후반 7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21,225기였습니다. 84%나 감축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5,113기입니다. 러시아는 6,094기, 프랑스가 500기,  중국이 300기, 영국이 200기 그리고 이스라엘이 125기입니다. 이게 팍스 아메리카나의 실체입니다.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지배하는 평화입니다. 과거 팍스 로마나나 지금의 팍스 아메리카나는 본질이 똑같습니다. 이게 지금의 세상 평화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팍스 크리스티나는 힘의 평화가 아니라 모든 허물과 담을 십자가로 허무는 비폭력 무저항의 평화입니다. 주님은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고 하셨고, 칼을 쓰면 칼로 망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때리면 맞고, 침 뱉음을 당하고, 5리를 가자고 하면 10리를 가셨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십자가에서 무력하게 죽으셨습니다. 팍스 로마나가 제 힘으로 팍스 크리스티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겁니다. 그래서 팍스 로마나가 이겼습니까? 아닙니다. 전설 속으로 사라진 것은 로마의 평화입니다. 주후 313년 콘스탄틴 황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비폭력 무저항으로 관철하다가 비참하게 십자가에 못 박힌 팍스 크리스티나가 팍스 로마나를 통째로 접수했습니다. 대 역전과 반전이 일어난 겁니다. 우리 민족의 화해와 통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팍스 로마나, 팍스 아메리카나는 안 됩니다. 저 휴전선까지는 물리력으로 허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마음과 이념의 벽은 절대 허물지 못합니다. 폭력으로는 안 되고, 오직 용서와 사랑과 희생으로써만 막힌 담을 근본적으로 풀 수 있습니다. 이게 통일의 해법입니다.

다음은 우리가 바로 평화의 도구라는 말입니다. 이 사실도 우리는 모르고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스라엘과 우리나라는 여러 면에서 비슷합니다. 분단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도 솔로몬 이후에 남북 분단이 되었고, 우리나라는 1945년 해방과 함께 분단되었습니다. 유대 민족도 주전 935년 8월 15에 분단됩니다. 우리는 북위 38도고, 이스라엘은 북위 32도선에서 남북으로 분단되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서를 보면 이스라엘의 통일은 하나님 손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를 보면 ‘너의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된다’고 하십니다. 좀 전에는 하나님 손이라고 했다가 다시 너의 손이라고 합니다. 평화와 통일의 주체는 하나님이시지만, 그 통일을 실제로는 우리의 손에서 이루시겠다는 뜻입니다. 오늘 제가 소개한 본문 말씀도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화평케 하는 자를 peace maker라고 했고, 우리말 새번역 성경에는 ‘평화를 만드는 자’라고 번역했습니다. 우리가 평화를 만드는 자입니다. 평화의 도구들입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우리가 다 평화를 위해 부름을 받았다고 합니다. 평화를 만드는 자의 소명을 받은 자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평화의 도구가 됩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팍스 크리스티나를 우리의 삶의 현장과 역사에서 관철하며 살 수 있을까요? 평화는 절대 하늘에서 거저 주어지지 않습니다. 화해와 통일은 반드시 희생과 제물을 요구합니다. 값비싼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주님이 이룩하신 평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수지간인 하나님과 우리의 화해를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성취하셨습니다. 원수된 아버지와 아들 간의 화해를 위해 그 둘의 손을 꼭잡고 숨을 거둔 어느 어머니의 희생과도 같은 게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평화를 위해서는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자식이 부모의 뜻을 거역해서 고집을 부립니다. 대개는 부모가 집니다. 만일 끝끝내 시비를 가리면 자식과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십자가를 집니다. 부부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남과 남이 만나 평생 같이 사니 싸우는 게 운명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한쪽이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희생 없는 평화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인사말은 ‘샬롬’인데, 이 말은 평화라는 말의 히브리말입니다. 샬롬은 기원의 말이지만, 동시에 고백의 말입니다. 이웃들 앞에서는 평화를 기원하는 말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제가 평화의 도구가 되겠다는 고백이 샬롬입니다.

우리는 분단 65년을 피스 메이커가 아니라 트러블 메이커로 살았습니다. 툭하면 욕하고 저주하고 싸우면서 증오와 미움의 화신으로 분단 65년을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트러블 메이커가 아니라 진정한 피스 메이커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 프랜시스의 평화의 기도를 아시지요? 이것은 우리 교회와 우리 민족의 기도여야 합니다. 그래야 내 심령과 가정, 교회, 우리 사회, 이 땅에 진정한 평화가 이룩됩니다. 부디 우리 모두 평화의 사도들이 됩시다. 평화의 전도사들이 됩시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됩시다. 피스 메이커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트러블 메이커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평화를 구현하는 진정한 피스 메이커들로 거듭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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