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00620n: 편견(요 9:1-3)

2010년 6월 20일 주일오후예배
본문: 요 9:1-3
제목: 편견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참 놀라운 말씀입니다. 제자들과 함께 주님이 길을 가시다가, 선천성 맹인을 만납니다.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무슨 내력으로 이렇게 맹인으로 태어났습니까가 아니라, 누구의 죄 때문이라는 전제를 갖고 묻습니다. 죄 때문은 확실한데, 누구의 죄 때문이냐는 겁니다. 당시는 율법시대입니다. 모든 장애, 아픔, 상처는 모두 죄값이라는 율법적 사고가 지배했습니다. 요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인과론적 사고에 익숙합니다. 암암리에 우리는 저 사람은 무슨 죄 때문에 저런 변을 당하고, 저런 장애를 갖고 태어났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원인과 결과라는 도식이 우리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런데 율법시대를 살던 제자들이야 말할 게 없습니다. 죄값은 자명한 것일테고 누구의 죄 때문이냐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의 답은 기상천외합니다. 당시의 고정관념의 풍토에서 주님의 이런 발언은 너무도 파격적입니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대답을 주님이 하신 겁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가 아니라 그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겁니다. 제자들의 편견, 종교적 고정관념을 정면에서 박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때문이지 죄값이 아니라는 겁니다. 주님과 제자들이 보는 눈이 하늘과 땅처럼 다릅니다. 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요 은총이라는 겁니다.

소경 자신도 자신의 장애가 저주인 줄 알았을 겁니다. 자기 운명을 얼마나 저주했겠습니까? 자기야 말로 비극의 주인공이라고 자학하며 살았을 겁니다. 그러나 주님은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지고 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그 장애인을 고칩니다.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는 겁니다. 씻었더니 눈이 열렸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도전과 기쁨을 주었습니까. 우리도 장애나 어떤 아픔이나 불행을 바라보는 눈을 고쳐야 합니다. 남의 불행도 자신의 불행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고통과 시련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시고 영광을 받으시길 원하신다고 해석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정말 나의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단지 고통으로 끝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눈이 없고, 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호주 청년 닉 부이치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있을까요? 태어날 때부터 양팔 양다리가 없고, 몸통에 왼발가락 두 개만 달려있습니다. 그런데 8살 때부터 자살을 시도합니다. 그러다가 15살 때 오늘 본문을 읽은 겁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후 사람이 완전히 바뀌어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행복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에게 도전과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그게 저주와 불행인 줄 알았는데, 자기는 살아야 할 이유가 조금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받으시길 원한다는 뜻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부터 변한 겁니다. 미국에서 조사를 했는데, 닉 부이치치보다 더 감동을 주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그를 만나는 사람마다 다 운다고 합니다. 그를 통해 은혜를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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