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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3m: 제1호 순교자(행 6:8-15, 7:54-60) 순교자 기념주일

2010년 6월 13일 주일낮예배/순교자기념주일
본문: 행 6:8-15, 7:54-60
제목: 제1호 순교자

행 6:8-15 “[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9]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11]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12]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13]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14]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행 7:54-60 “[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오늘은 순교자 기념주일입니다. 요즘도 기독교 신앙 때문에 순교할 수 있을까요? 세계복음주의연맹의 자료에 의하면 2008년 중반부터 2009년 중반까지 1년간 지구촌 곳곳에서 기독교 신앙 때문에 순교한 사람이 17만 6천명입니다. 하루 평균 482명, 3분당 1명꼴로 순교했습니다. 최악의 박해국은 1위 북한, 2위 이란, 3위가 사우디아라비아, 그 다음이 예멘,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등입니다. 순교는 어느 시대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2000년 교회사에서 최초의 순교자는 누구일까요?

제1호 순교자는 흔히 알듯이 야고보가 아닙니다. 야고보는 사도 중에 제일 먼저 순교한 사람입니다. 제1호 순교자는 스데반입니다. 그의 순교는 사도행전 7장에 나오고, 야고보의 순교는 사도행전 12장에 나옵니다. 야고보는 제2호입니다. 스데반은 어떤 사람이었기에 주님이 교회사의 제1호 순교자로 택하셨을까요?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좋은 것은 다 받은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6장 3절을 보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남에게 칭찬을 받던 사람이 스데반입니다. 5절을 보면, 초대교회 7집사 중 수석집사였습니다. 8절을 보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해서 큰 기사와 표적을 행했고, 15절을 보면 얼굴이 천사처럼 빛난 사람입니다. 또한 그는 대단한 설교가였습니다. 오늘 선택한 본문 그 사이에는 스데반의 긴 설교가 나옵니다. 유대의 최고 정책기관인 산헤드린 공의회에 잡혀가서 대제사장과 의원들 앞에서 행한 설교인데, 그 내용과 기승전결이 뛰어납니다. 사도행전에는 베드로의 설교도 나오지만, 스데반의 설교가 단연 돋보입니다. 이처럼 초대교회는 집사부터 달랐습니다. 

베드로가 한창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하루에 3천명, 5천 명씩 회개시킬 때, 스데반은 공의회에 끌려가 명 설교를 하고도 돌에 맞아 죽습니다. 주님은 첫 순교자를 사도 중이 아니라 집사 중에서 뽑았습니다. 사도 중에서는 가룟 유다같은 첫 배신자요 자살자가 나왔습니다. 주님은 집사였던 스데반을 첫 순교자로 택하셨는데, 왜 그러셨을까요? 

당시로서는 스데반만큼 준비된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7장 55절 이하를 보면,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광과 주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주님이 스데반의 죽음을 차마 앉아서 볼 수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내려다 보고 계셨다는 겁니다. 마지막 59절 이하입니다.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최후로 드린 기도를 스데반은 그대로 드립니다. 

아시다시피 바울은 다메섹 도상으로 회심하고 제일 먼저 한 게 개명입니다. 이름부터 바꾸었습니다. 사울에서 바울로 바꾼 겁니다. 큰 자에서 작은 자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정말 자신의 반생(半生)을 작은 자로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만삭되어 나지 못한 자, 그러니까 덜 떨어진 자라고 했고, 죄인 중에 괴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가 끝까지 겸손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바울도 사람인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초지일관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그게 스데반을 죽인 전력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바울은 평생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인 아픔을 지고 살았습니다. 7장 58절입니다.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바울이 스데반 처형의 주범이었습니다. 바울이 기독교로 전향하기 전 유대교 전사(戰士) 시절에 바울이 사람들을 충동질해서 스데반을 살해한 겁니다. 

스데반의 이 장면을 보면서 우리의 생각은 그토록 대단하게 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사람도 돌 맞으니 죽는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스데반을 그토록 아끼신다면 돌을 맞아도 괜찮을 방탄복이라도 입혀 주셔야 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면 그게 가장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겪는 시련, 고난이 우리에게 필요하고, 약이 되며, 이득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용납하고 계신 겁니다. 우리에게 손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알의 밀알을 썩게 두시는 것은 그게 더 많은 열매를 맺는 길이고, 새롭게 태어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비명에 가시도록 하나님이 주님을 십자가에 내버려둔 것은 그게 인간을 살리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의 죽음은 바울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스데반의 순교가 사울이 바울 되게 한 겁니다. 2000년 교회사에 바울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다른 모습이었을지 모릅니다. 스데반의 순교는 교회사의 초석이 되었으며, 예수님의 죽음을 가장 잘 승계한 사람이었습니다.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사도도 목사도 아닌 스데반 집사, 그가 주님의 최후를 아름답게 승계했습니다. 

저도 전에는 그토록 허무하게 죽게 하실 바에야 그 능력을 나같은 사람에게 주시지, 금방 돌에 맞아 죽을 사람에게 주셨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그런 능력은 스데반에게 필요했습니다. 권능이나 성령충만, 믿음은 결코 자신을 과시하고, 자기 영광을 위하라고 주신 게 아닙니다. 십자가를 잘 지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을 위해 살라고 주신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고난을 당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순교자로 살라고 주신 겁니다. 그러나 요즘은 하나님이 주신 권능을 자기 이름 드러내는 데 씁니다. 그래서 순교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순교자는 인간적으로 보면 비참하지만, 신앙적으로는 특별히 선택된 사람들입니다. 바울이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고, 수많은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다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살았지만, 험하게 살다가 자기도 막판에 목베임을 당합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가장 훌륭한 설교를 마쳤을 때, 가장 얼굴이 빛날 때 하나님이 데려 가셨습니다.

여러분도 스데반처럼 사십시오. 하늘 문이 열리고 주님을 뵙는 복된 순교적 최후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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