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귀스트 로댕
읽기 설정
미리보기 인용
복사되는 내용은 인용 정보와 미리보기 주소다.
현재 미리보기 주소:
독일 유학시절 폐차 직전의 낡은 폭스바겐을 타고 난생 처음 프랑스 여행길에 나선 저는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뫼동(Mendon)에 있는 로댕의 생가부터 찾았습니다. 로댕이 1893년부터 191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았던 뫼동 언덕 위의 브리앙 빌라, 생전에 이미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던 거장의 집 치고는 몹시 소박했으나 1층 식당 식탁 위에는 로댕이 사용했던 접시와 식기가 그대로 놓여 있었고, 통유리를 통해 푸른 자연이 내려다 보이는 작업실에는 수많은 명작들의 기본 틀이 됐던 석고 조각들이 금새라도 살아 움직일 듯한 모습으로 빼곡히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작은 침대 하나만 덩그렇게 놓인 2층 침실 벽에는 그가 말년에 더욱 의지했던 주님의 십자가 상이 걸려 있었고, 뜰에 누워있는 그의 석관 위에는 인간의 깊은 고뇌를 함축한 대표작 <생각하는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한 때 로댕의 비서로 일했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1903년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뫼동 작업실의 감동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우리를 응시하는 현란한 백색의 조각들이 모여 있는 이 넓고 밝은 방에서 우리는 늘 묘한 힘을 느낀다오.>
프랑스에는 로댕 미술관이 그의 생가였던 뫼동의 브리앙 빌라와 파리의 비롱 호텔 두 곳입니다. 뫼동이 로댕의 작업장이었다면 파리의 비롱 호텔은 그가 세상과 소통하며 명성을 쌓았던 곳입니다. 1908년 릴케의 소개로 비롱 호텔을 찾았던 로댕은 이미 그곳에 투숙하고 있던 장 콕또, 앙리 마티스, 이사도라 던컨 같은 예술가들과 교제하며 파리 문화계에 더욱 깊이 뿌리를 내리는데 1911년 프랑스 정부가 그 호텔을 철거하려 하자 그는 비롱 호텔을 로댕 미술관으로 영구 보존할 것을 요구하며 자신의 모든 작품과 소장품을 국가에 기증합니다. 로댕의 대표작 300여 점이 전시된 그 파리의 로댕 미술관은 한 해 100만이 넘는 미술 애호가들이 찾는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습니다. 로댕은 지금도 그 비롱 호텔을 통해 세계인들과 소통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파리 로댕 미술관에 있던 그의 불후의 명작들이 이번에 대거 서울에 왔습니다. <신의 손>, <입맞춤>, <청동시대>, <지옥문>, <생각하는 사람>(석고), <발자크>, <빅토르 위고> 등 손바닥만한 소품에서부터 대작에 이르기까지 청동이나 대리석 작품뿐 아니라 그의 작업과정과 실험성을 느낄 수 있는 석고, 데생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알짜들은 다 모아놓은 것 같습니다. 또 연대기가 아닌 주제별 구성을 통해 로댕의 예술 세계에 좀 더 쉽게 접근하게 한 점도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열리는 이번 로댕전의 제목은 <신의 손>입니다. 진흙으로 인간을 빚으시는 하나님의 손을 형상화한 그의 작품 제목인데 로댕의 예술혼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으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밖으로 내 보낸 적이 없었으나 이번에 많은 고민 끝에 출품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을 주제로 무려 37년 동안이나 제작에 몰두했으나 결국은 끝을 보지 못하고 죽은 로댕 예술의 집대성 <지옥문>도 최종 완성물에 가장 가까운 축소물이 출품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참 놀랍고 대단한 전시회입니다.
저는 25년 전 파리 로댕 미술관에서 느꼈던 그 흥분과 전율을 얼마 전 서울시립미술관 로댕전에서 다시 한 번 생생하게 경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