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00606n: 자연과 말씀(시 19:1-14)

2010년 6월 6일 주일오후예배
본문: 시 19:1-14
제목: 자연과 말씀

[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5]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6]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 [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11]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13]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신학적으로는 자연을 일반계시라 하고, 말씀은 특별계시라고 합니다. 계시는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낸다는 의미입니다. 자연이 하나님이 당신을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이라는 겁니다. 자연은 계시입니다. 

먼저 시편 제19편의 구성을 보면, 1-6절까지는 자연입니다. 자연에 대한 예찬입니다. 일반계시 곧 보편계시입니다. 7-10절까지는 말씀입니다. 특별계시입니다. 11-14절까지는 일반계시와 특별계시에 대한 성도들의 응답입니다. 

자연을 먼저 보겠습니다. 로마서 1장 20절에서 바울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만물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자연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자연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위대한 교사요 교과서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궁창은 대기권을 말합니다. 하늘도 땅도, 날도 밤도, 해도 달도 별도 다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하나님이 하신 일을 우리에게 밝히 나타낸다고 합니다. 2절입니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날은 날대로 밤은 밤대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세상에 선포한다는 겁니다. 자연의 신비, 조화, 아름다움은 다 하나님의 오묘하신 능력을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자연의 넉넉함, 풍성함은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과 은혜를 우리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햇볕은 따뜻합니다(5-6).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킵니다. 우레나 번개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킵니다. 이렇게 들을 귀가 있고 볼 눈이 있으면 자연을 통해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얼마든지 느끼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누구도 자연이 있는 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고 합니다. 왜냐면 가장 보편적인 자연계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름 없는 풀 한 포기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고, 날아가는 새 한 마리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연계시의 한계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는 깨닫게 하지 못합니다. 자연을 통해 우리가 성육신을 배울 수는 없습니다. 자연을 통해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 은혜를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특별계시인 말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자연계시와 특별계시가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성육신의 비밀을 깨닫게 되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인간 구속의 진리를 깨닫습니다. 자연을 통해서 이러한 것들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일반계시뿐만 아니라 말씀 곧 특별계시도 주셨습니다. 7절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8-9절도 마찬가지입니다.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여호와의 도가 우리를 영원에 이르게 합니다. 그래서 10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세상에 순금보다 더 귀한 것은 없고, 송이꿀보다 달콤한 것은 없는데, 이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말씀 곧 특별계시입니다. 여호와의 은혜를 배우고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순금과 송이꿀보다 더 소중하고 귀한 게 특별계시인 말씀입니다. 

다윗은 이 자연과 말씀, 일반계시와 특별계시 앞에서 두 가지를 기도합니다. 먼저 13절입니다.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해달라는 겁니다. 개역성경에는 ‘고범죄’라고 했습니다. 민수기 15장 22절은 이 죄를 ‘그릇 범죄’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26절은 ‘짐짓 죄’라고 했습니다. 다 같은 종류의 죄인데 이런 죄가 가장 악성입니다. 왜냐면 모르고 짓는 죄가 아니라 알고도 짓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자연도 있고 말씀도 있습니다. 이제는 모를 게 없습니다. 우리는 다 압니다. 우리가 짓는 죄는 몰라서가 아니라 다 알고도 짓는 죄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짓는 죄는 그 질이 나쁩니다. 우리의 죄는 다 고범죄일 공산이 크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지금 제발 이 죄를 범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연도 말씀도 주셨기에 이제 짓는 죄는 고범죄일텐데, 제발 이런 죄를 범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다윗이 한 가지 더 기도한 것은 14절입니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 위해서는 내 말과 마음의 생각이 거룩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연과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주님의 계시에 날마다 바르게 응답하며 살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고범죄를 짓지 않는 데서 멈출 게 아니라, 더 나아가 입으로 말씀을 묵상하며 살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능동적으로 응답하며 살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다윗의 기도와 소망이 우리의 기도와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주셨고, 풍성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늘 자연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습니다. 고범죄를 지으면 벌이 더 큽니다. 또 이런 죄를 짓지 않는 데서 멈출 게 아니라 우리의 말과 생각이 늘 거룩해서 하나님께 상달되게 하십시다. 이것이 자연과 말씀 계시를 받은 우리의 마땅한 삶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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