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과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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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과 예수님
독일에서 유학하던 1984년 8월, 한국 기독교 100주년 기념행사에 초대되어 독일교회 목사님 몇 분과 일시 귀국한 적이 있습니다. 하루는 제가 가이드를 한 독일 목사님들의 성화로 경주 불국사를 찾았습니다. 그들은 잔뜩 호기심 어린 눈으로 승려들의 동작 하나하나, 삭발한 이유, 사찰 안에 있는 그림, 글씨 등 하여간 눈에 띄는 것마다 저것이 뭐냐, 무슨 뜻이냐 하고 꼬치꼬치 물어서 진땀을 뺐습니다.
한 분이 대웅전에 정좌한 불상을 두고 <저 부처님이 남자냐 여자냐?> 하고 묻길래 제가 도리어 <당신 눈에는 어떻게 보이느냐?>며 반문했더니 <남자 같기도 하고 여자 같기도 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거 잘 본 것>이라며 <원래 여자인 듯 하면서도 남자 같고 남자인 듯 하면서도 여자 같은 게 바로 부처>라고 하자 <그런 게 어디 있느냐?>며 더욱 난감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런 세계를 모르는 게 바로 서양 사람이오!> 그랬는데 이번에는 다시 부처님의 자세(수인)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왜 왼손은 펴고(여원인) 오른 손으로는 동그라미(시무외인)를 그리고 있느냐는 겁니다. 저는 잘 알지도 못하지만 더 이상 심각한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아 언젠가 들은 우스갯 소리를 들려줬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과 부처님이 도박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예수님이 졌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자기가 딴 돈을 달라며 한 손은 펴고 한 손으로는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고, 예수님은 돈이 없다는 시늉으로 양팔을 벌리고 있는 거라고...... . 다행히도 그 농담에 모두가 한 바탕 크게 웃으며 조금은 어색했던 분위기를 바꿔 놨던 기억이 납니다.
십자가상과 불상은 참 대조적입니다. 십자가는 종과 횡이 교차된 그 한 복판에 주님이 못박혀 꼼짝도 못한 채 피 흘리고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하는 최후의 탄원을 들으면 더욱 처참해집니다. 정말 인간이 당할 수 있는 최악의 고통과 처절함의 극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반해 불상은 그 어떤 모순이나 아픔도 다 초탈한 너무나도 평온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불상을 한참 쳐다 보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인생의 백팔 번뇌가 다 눈 녹듯 사라지는 듯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눈을 떼는 순간 <아하, 속았구나!> 하는 느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현실은 결코 그런 초연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상은 역사적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듯 산으로 들어갔고 기독교는 거리로 나왔는지 모릅니다. 또 그래서 불상 아래서 자란 동양은 정적이고 십자가 밑에서 자란 서양은 동적인지도 모릅니다. 모순을 모순대로 직시하며 정면으로 맞서자는 자세와 모순은 아예 없는 듯 눈 감아 버리자는 자세, 과연 어느 게 옳을까요?
저는 역시 십자가상에 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