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제 어미를 파먹는 염낭거미의 유충

  정부의 4대강 사업이 앞으로 더 시끄러워질 것 같습니다. 4대강 이슈가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와도 무관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 5월 31일에는 경북 군위의 승려 한 분이 4대강 사업을 반대한다며 분신까지 했습니다. 정부는 <강을 살리는 일>이라고 하는데 반대하는 사람들은 <강을 죽이는 일>이라며 맞서고 있어서 사실 어느 쪽이 옳은지 참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강에 대한 대규모 개발은 어떤 식으로든 생태계를 해칠 수밖에 없고 또 한 번 훼손된 자연은 복원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고 보면 정부가 아무리 <콘크리트 사용을 최소화하고 강의 본래 모습을 최대한 살리며> 추진한다 해도 국민들로서는 여전히 못 미더울 수밖에 없습니다.

  언젠가 산을 오르다 등산로에 쓰러진 고목을 보며 <자연을 마구잡이로 짓밟는 사람들의 횡포에 견디다 못해 저렇게 자기 몸을 육탄 삼아 사람 새끼들이 오르내리는 길에 드러누운 것이겠지>하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쉴러는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은 그게 무엇이든 완전무결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데가 어디 있습니까. 혹 그런 데가 있다 해도 오염된 대기와 물줄기로 이미 다 부정을 탔습니다. 지금 자연은 본의와는 상관없이 인간의 무모한 욕망에 짓눌려 신음하고 있습니다. <땅이 인간의 죄 때문에 저주 받았다>는 구약 창세기의 말씀이나 <모든 피조물들이 탄식하며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데서 해방되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신약 로마서의 말씀이야말로 얼마나 명쾌한 통찰입니까?

  염낭거미의 유충은 등에 업혀 제 어미를 모두 파먹어 거꾸러 뜨린다고 하는데 우리 인간들이 꼭 그렇습니다. 최근 발생한 멕시코만의 원유 유출사건에서 보듯 어머니 대지를 난자하며 이제는 더 이상 손을 쓰기도 어려울 만큼의 최악의 생태학적 파국을 불러왔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생존을 위한 불가피라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자연에 대한 횡포가 정말 생의 필수조건 때문만인가? 전쟁을 준비하는 나라나 도락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필수품이 있게 마련입니다. 출발을 기정사실로 불가피를 내세우는 게 바로 이 시대의 광적 논리입니다.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 생존의 요람입니다. 인간이란 뜻의 히브리말인 <아담>은 흙이라는 뜻의 <아다마>에서 왔습니다. 실제 창세기는 태초에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고 했습니다. 이는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는 뜻에 다름 아닙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본래 산에도 정기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언덕하나도 함부로 깎지 못했고, 조상의 묘도 아무 데나 쓰질 못했습니다. 천재를 당해도 언제나 인간의 사죄를 빌며 자연의 노를 달랬습니다. 그러나 서구 사람들은 <자연을 정복하라. 다스리라>라는 창세기의 말씀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여 오직 이날까지 반자연적 문명만을 추구해 왔고, 그 결과 지구는 지금 각종 기상이변과 재해로 가공할 자연의 보복 앞에 직면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집을 제 손으로 헐어버린 인간, 성경이 가르치는 궁극의 세계는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놀고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눕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뜯고 어린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치는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따라서 자연의 회복 없는 새 세계란 있을 수 없습니다. 하여 우리는 오늘도 이 황폐한 현대문명의 한복판에 서서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갈 그 새 하늘과 새 땅을 대망하며 우려스런 눈으로 4대강을 지켜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