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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30m: 엘로힘(창 1:1-2) 삼위일체주일

2010년 5월 30일 주일낮예배/삼위일체주일
본문: 창 1:1-2
제목: 엘로힘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오늘은 삼위일체 주일입니다. 교리상 삼위일체보다 더 난해한 것은 없습니다. 어떻게 유한한 인간이 초월하고 계신 하나님의 존재를 규정할 수 있을까요? 논리적으로 이미 그런 시도 자체가 무모하고 가당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의 제한된 언어나 개념, 표현 속에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완전하고 완벽하게 정의했다면 이미 그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런 하나님은 우리 언어로 표현된 유한한 존재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개념의 틀 속에 갇히면 이미 제한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때묻은 언어나 협소한 개념 속에 갇히기엔 너무도 크신 분입니다. 따라서 삼위일체라고 하는 기독교의 전통적인 용어와 교리는 잠정적인 것이지 절대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신비 중에 신비요 비밀 중에 비밀이요 수수께기 중에 수수께기인 하나님의 존재를 삼위일체라는 용어 하나로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요 오만이요 착각입니다. 단지 제한적이나마 최선을 다해 본다는 것일 뿐입니다. 예를 들면 요한계시록에 요한이 직접 목격한 천국에 대한 그림이 나옵니다. 대단합니다. 성은 정금이고, 성곽은 벽옥이고, 그것의 기초석은 각종 보석이고, 열두 대문은 다 진주로 되어 있습니다. 또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계시록에 나오는 그런 천국은 진짜 천국은 아닙니다. 천국이라고 하는 세계는 초월세계이기에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이 안 됩니다. 보기는 봤는데 옮길 수가 없습니다. 절대 천국은 계시록에 묘사된 그 이상입니다. 계시록의 천국보다 천 배 만 배 더 아름다운 곳입니다. 다만 요한이 자기가 본 것을 자기가 알고 있는 언어와 개념으로, 이 세상의 모든 보물을 다 동원해서 최상급으로 묘사해본 것일 뿐입니다. 삼위일체라는 개념도 도저히 묘사나 표현이 불가능한 하나님의 존재양식을 최대한 인간적인 방법과 개념으로 규정해 본 것입니다. 삼위일체를 얘기할 때 바로 이런 전제가 필요합니다.

본문 창세기 1장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여기 나오는 하나님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는 “엘로힘”입니다.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 이게 원어를 음역한 창세기 1장 1절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이 단수명사인 “엘”이 아니라 복수인 “엘로힘”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직역하면 하나님들이 천지를 창조하신다는 겁니다. 2절을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영”은 원어로 “루아흐”입니다. 성령입니다. 창세기 2장 7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여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생기도 루아흐입니다. 신약으로 갑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이하입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여기 나오는 “말씀”은 헬라말로 “로고스”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고, 천지만물이 그 말씀을 통해 지어졌다는 겁니다. 이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러니까 태초에 천지창조부터 성부, 성자, 성령이 함께 하신 것입니다. 창조사역을 세 분이 같이 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엘”이 아니라 “엘로힘”입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하나님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입니다. 이 세 분의 하나님을 우리가 믿는 겁니다. 

창세기 1장 26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물론 여기에 나오는 하나님도 엘로힘입니다. 이 대목은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하실 때 엿새째 인간창조를 하기 전에 고민하시는 대목입니다. 인간을 어떻게 만들까 궁리하고 계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뭐라고 하시냐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라고 합니다. 내가 아닙니다. 우리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입니다. 다른 세상 만물은 고민 없이 빨리 진행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을 창조하실 때는 고민하십니다. 세 분 하나님이 회담을 하십니다. 어떻게 만드는 게 좋을까? 어떻게 만들어야 최상의 걸작이 나올까? 그래. 우리의 모습대로,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하신 겁니다. 따라서 말씀드린 대로 기독교의 하나님,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은 한 분이 아닙니다. 소위 단일신론, 혹은 유일신론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유대교는 야웨 하나님만 믿습니다. 유대교의 신관은 단일신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슬람도 알라만 믿습니다. 거기도 단일신론입니다. 기독교는 단일신론이 아닙니다. 유대교난 모슬렘은 단일신론이지만, 기독교는 성부 성자 성령입니다. 

그러면 기독교의 하나님은 삼신론은 아닙니까? 이것도 아닙니다. 원래 우리나라의 전통 신관은 삼신론입니다. 우리의 민족과 땅을 도모했다는 환인, 환웅, 환검입니다. 삼신할매도 삼신상제라는 말인데, 세 신이라는 뜻입니다. 세 신이 우리의 자식과 자손을 점지해 준다고 믿었습니다. 기독교는 세 분 하나님을 믿지만 삼신론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부, 성자, 성령 세 분 하나님을 믿는데 왜 삼신론이 아닙니까? 세 분이면서 동시에 한 분이고, 한 분이면서 동시에 세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일신론도 삼신론도 아닙니다. 이걸 교리적으로 “트리니타스” 곧 삼위일체라고 합니다. 삼위라는 말은 세 분의 독자적인 위상이라는 말입니다. 몸은 하나고 머리가 셋은 아닙니다. 그것은 괴물입니다. 독자적으로 세 분입니다. 그런데 본체상으로는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하나라는 겁니다. 빌립보서 2장 6절이하입니다.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성부, 성자, 성령이 자리는 셋이지만,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본체로는 하나라는 겁니다. 지금까지 나온 용어로는 삼위일체가 가장 타당합니다. 어거스틴은 성경의 하나님을 삼위일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세 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안 되고, 유대교처럼 단일신론을 가르쳐도 안 됩니다. 한 분이면서 동시에 세 분, 세 분이면서 동시에 한 분인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삼위일체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짚어 보겠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양태론입니다. 하나님이 본래는 한 분이신데, 시대마다 그 모습을 바꾸어 우리에게 나타나셨다는 겁니다. 구약시대 때는 성부 하나님으로, 신약시대 때는 성자 하나님으로, 교회시대 때는 성령 하나님으로 나타나셨다는 겁니다. 설득력은 있으나 사실과는 다릅니다. 한 자식인데 부모에게는 아들이고, 직장에서는 직장인이고, 자기 자식들에게는 아버지가 된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이 이해는 쉽습니다만,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주님이 세례를 받는 대목인 누가복음 3장 21절 이하입니다. “[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성부 하나님이, 성령 하나님이, 성자 하나님이 한 장소에 그리고 동시에 나타나십니다. 따라서 양태론은 맞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나무와 강을 예로 삼위일체를 설명합니다. 나무는 뿌리, 줄기, 가지로 형성되고, 강은 하류, 중류, 상류로 나뉘는데, 삼위일체도 이와 같다는 겁니다. 이것도 틀린 겁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기껏해야 1/3의 하나님입니다. 독자적으로는 괴물입니다. 세 분이 다 모여야 비로소 한 분 하나님이 성립됩니다. 하나님은 독자적으로도 부족함이 없으나 세 분이 공동체를 형성해서 존재하시는 것이 기독교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설명도 삼위일체를 제대로 설명한 게 아닙니다. 

소위 군주신론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부, 성자, 성령의 존재는 인정하나 그 권위와 신성에는 계급이 있다는 논리입니다. 성부는 아버지로, 성자는 아들로, 성령은 보혜사로 성경이 얘기하고 있으니까 이 세 분이 똑같지는 않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성부가 제일 높고, 그 다음이 성자이고, 성령은 심부름꾼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 보면 성령을 자기 종 부리듯합니다. 이것은 신성모독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권위는 같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양식을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기에 편의상 아버지, 아들, 성령이라고 부른 겁니다. 하나님은 계급이 없습니다. 다만 고유한 역할과 사역이 있을 뿐입니다. 성부는 창조하셨고, 성자는 구원을 하셨고, 성령은 우리를 지금도 견인하고 계십니다. 역할이 다르고 사역이 다를 뿐입니다. 

어떤 분들은 그냥 믿으면 됐지 그게 뭐 중요하냐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고,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계시는지는 알고 계셔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반드시 삼위일체론적으로 이해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신앙이 반듯해집니다. 적어도 우리 기독교 신앙은 아는 만큼만 믿습니다. 모르면 모르는만큼 못 믿습니다. 기독교 신앙도 모르고 믿으면 미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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