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소서(시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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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교회 조성노 목사 말씀큐티
2010. 5. 22.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소서
시편 13:1-6
[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2]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4]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5]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6]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
신앙생활은 때로 우리로 하여금 깊은 좌절과 우울에 빠지게도 합니다. 오랜 시련과 역경 앞에서 인내의 한계와 나의 능력의 한계를 느낄 때 우리는 다윗처럼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1절)하며 절망하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탄식의 기도 드려보신 적이 없습니까?
사망의 잠
내 영혼이 번민하고 내 마음이 근심할 때, 원수가 나를 치며 이를 동네방네 자랑하고 시위할 때(2절) 우리는 오히려 더욱 근신하며 자기관리에 더 많이 힘써야 합니다. 자칫 심령이 지쳐 깊은 좌절의 늪에 빠지므로 영적인 [사망의 잠](3절)에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지금 그 점을 가장 두려워하여 [나의 눈을 밝히소서](3절)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눈을 밝혀달라는 것일까요? 영안이 열려야 지금 내가 당하는 시련과 역경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고, 또 숨어계신다고 느껴지는 하나님의 현주소도 확인하고 안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어려울 때, 힘들고 지칠 때 다윗처럼 [사망의 잠]을 각별히 경계하십시오. 살 길은 두 눈 부릅뜨고 깨어 있음과 [나의 눈을 밝히소서]하는 기도뿐임을 명심하십시오.
오직 주의 사랑
대적은 확실히 두려운 존재입니다. 언제나 나보다 강하며, 내가 흔들릴 때마다 기뻐하며 나를 이겼다고 으스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건 다 기만이고 거짓일 뿐입니다. 우리 대적 마귀는 이미 철장에 갇혔고 굶주린 사자처럼 으르렁대는 것은 효과음일뿐 실제는 이빨 빠진 사자에 불과합니다. 겁먹지 마시고 오히려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대적하십시오](벧전 5:9). 그리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하십시오. 혹 성경 66권을 다 보실 수 없다면 로마서를 읽으시고, 로마서도 다 보실 수 없다면 로마서 8장을 읽으십시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5-39). 뭘 더 바라십니까?
하나님 찬양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6절). 그렇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결국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모든 것의 결론을 맺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의 모든 것, 현실과 사건과 아픔과 눈물조차도 다 [주의 은덕]이기 때문입니다. 혹독한 시련과 대적들의 위협조차도 결국은 다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내가 깨닫지 못하고 바르게 해석하지 못한 것일 뿐입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시 1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