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00516m: 독신과 이혼(고전 7:7-17)

2010년 5월 16일 주일낮예배/청년주일
본문: 고전 7:7-17
제목: 독신과 이혼

[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8]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9]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10]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11]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12]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13]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14]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15]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16]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1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주님도 독신자였습니다. 바울도 독신자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독신자였던 바울의 권면인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바울이 독신주의자 혹은 금욕주의자였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가 선교에 바빠 혼기를 놓쳐서 독신이었다면 독신주의자는 아닙니다만, 그의 신념에 따른 것이었다면 독신주의자입니다. 예를 들면 신부님이나 수녀님, 혹은 스님들은 독신주의자들입니다. 자기들의 종교적 신념 때문에 독신으로 지내는 겁니다. 반면에 목사들은 가정이 있기에 독신주의자도 금욕주의자도 아닙니다. 바울은 어느 쪽입니까? 그는 독신주의자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린도전서 7장 1절입니다.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이것은 다분히 금욕주의적인 발언입니다. 7절입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이어지는 8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보다 더 노골적으로 독신을 주장합니다. 반면에 혼인에 대해서는 소극적이고 부정적입니다. 2절입니다.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아내와 남편을 두는 이유가 음행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9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바울의 말을 듣고 있자니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안 드십니까? 결혼한 것은 정욕을 못 참아서 그랬단 말이고, 자기는 정욕을 절제할 수 있어서 독신으로 살았다는 겁니까? 이런 말씀을 우리가 성경에서 읽노라면 참으로 당혹스럽습니다. 결혼하는 게 맞는지, 아니면 독신이 더 성서적인지 헛갈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신다면 바울의 진의를 왜곡한 것이 됩니다. 7절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이 자기와 같기를 바라지만, 독신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다 하나님의 은사라는 겁니다. 사람들은 자기 이상형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이상형을 만나 결혼하는 케이스는 드뭅니다. 자기의 이상과 하나님의 은사는 다르다는 얘깁니다. 사람은 자기 이상보다 은사대로 삽니다. 자기 이상보다 하나님의 은사가 우선입니다. 자기가 결혼하고 싶다고 결혼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결혼한 사람은 결혼의 은사를, 독신은 독신의 은사를 받은 겁니다. 17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이어지는 18절 이하도 마찬가지입니다. “[18] 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 [24]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어떤 것이든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살라는 겁니다. 따라서 할례가 옳으냐, 무할례가 맞느냐, 결혼이냐 독신이냐를 따지는 것은 다 부질없는 것입니다. 결혼한 사람은 결혼한대로 독신은 독신대로 감사하며 하나님과 더불어 살면 되는 겁니다. 바울이 독신주의자나 금욕주의자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바울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산 겁니다. 성경은 결혼도 독신도 하나님의 은사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결혼을 하든지 독신으로 살든지 순리대로 사시면 됩니다. 자녀들 가운데 결혼 안 한다는 자녀를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기십시오. 걱정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다음은 이혼입니다. 작년 우리나라 총 혼인건수는 292,000건이었습니다. 정확히 하루에 800쌍씩 결혼했습니다. 이혼은 127,850건입니다. 하루에 350쌍씩 이혼했습니다. 하루에 100쌍이 결혼했다면 45쌍이 이혼했다는 겁니다. 미국에 주재하는 우리나라 어느 영사관의 말에 의하면 작년에 교포 사회에서 100쌍이 결혼했다면 115쌍이 이혼했다고 합니다. 이혼율이 더 높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공관에 접수된 이혼 건수보다 실제 이혼 건수가 더 많다는 겁니다. 이제는 이혼이 기독교 신자들의 금기가 아니라, 기독교인들에게도 보편화된 사회현상이 된 겁니다. 우리 한국 교회의 이혼 현황에 대한 자료는 아직 없으나, 미국 자료는 있습니다. 조지 바나의 보고에 의하면 놀랍게도 기독교도의 이혼율이 30%이고, 비기독교인의 이혼 비율이 27%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목사가 결혼식 때 선언하는 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은 것을 사람이 못 나눈다는 것입니다(마 19:6). 결혼은 하나님이 정하신 창조의 질서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원칙적으로 이혼을 반대합니다. 본문 10-11절입니다. “[10]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11]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성경은 아내든 남편이든 이혼 사유를 다 거절합니다. 이게 성경의 기본적인 입장입니다. 말라기 2장 16절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하노라.”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도 이혼은 안 됩니까? 그건 아닙니다. 예외적인 경우에 허용합니다. 첫째, 배우자가 내게 신앙 양심을 배반하라고 강요할 때입니다. 배우자가 나의 양심의 자유를 해칠 때입니다. 교회 나가지 말라거나 같이 모의해서 은행을 털자거나 할 때는 이혼 사유가 되는 겁니다. 본문 15절 이하가 바로 이런 내용의 말씀입니다.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이런 말씀이 자칫 안 믿는 배우자와의 관계를 깨는 데 쉽게 이용될까봐, 이런 말씀이 덧붙습니다. “[16]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내 신앙 양심을 해친다고 해서 서둘러 이혼할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나 정 그게 안 되면 이혼한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겁니다. 성경이 허용하는 두 번째 이혼 사유는 배우자의 음행입니다. 마태복음 5장 32절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물론 성경에는 호세아 선지자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호세아처럼 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음행만큼은 성경이 인정하는 정당한 이혼 사유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관리에도 철저해야 하지만, 배우자에 대해서는 관용이 필요합니다.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를 미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안심할 수 없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주님의 각별하신 은혜와 복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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