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어느 때까지니이까?(시 6:1-10)

어느 때 까지니이까?

시 6:1-10

 

[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현악 여덟째 줄에 맞춘 노래]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2]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3]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4]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5]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6]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7]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 [8]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으셨도다 [9]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10] 내 모든 원수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갑자기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우리 민족은 기다림의 민족입니다. 숱한 야화가 다 기다림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이를 업은 엄마같이 생긴 바위를 두고 저것이 기다리다 지쳐 돌이 되어버린 어느 여인이라고한 망부석 이야기는 너무도 한국적입니다. 실은 기독교도 기다림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들을 기다리고 기도 응답을 기다리고 부활 승천하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종교입니다. 그런데 다윗도 지금 하나님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수척한 영혼으로, 뼈가 떨리는 고난 가운데서 주의 구원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와 나의 시간표는 다릅니다

시련의 바람이 불고 환난의 파도가 칠 때면 우리는 늘 발을 구르며 이 고통이 언제 끝날 것인가 하고 초조해 합니다. 다윗도 지금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6절) [어느 때까지니이까](3절) 하고 묻습니다. 그러나 나의 시간표와 하나님의 시간표는 다릅니다. 우리는 결코 경박한 나의 시간표를 고집하거나 나의 시간표를 관철하기 위해 하나님을 위협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시간표 앞에서 나의 시간표를 철회할 줄 아는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전후 문맥과 전체 그림을 보시며 나를 이끌고 계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세와 인내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하나님의 시간표를 무시하고 자신의 시간표를 고집하다 실패합니다. 기다림이야말로 기도하는 자의 최대 덕목입니다.

 

눈물의 기도는 영혼을 맑게 합니다

다윗은 눈이 쇠하기까지 눈물로 기도한 사람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리라](애 2:18)고 했습니다. 요즘은 눈물이 참 귀해졌습니다. 눈물의 기도가 희소해졌습니다. 지은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강퍅해졌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눈물의 기도는 우리의 때묻은 영혼을 정화합니다. 우리의 누추한 영혼을 맑고 투명하게 합니다. 우리의 영성을 보다 예민하게 합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내 울음소리를 들으셨다](8절)고 했습니다. 눈물의 기도는 순수하고, 그래서 그만큼 주님의 심금을 울리기 때문입니다.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시편 6편은 [한밤의 기도] 입니다. 두려움과 탄식 가득한 한밤의 기도. 눈물로, 흐느낌으로 바친 흑암 속의 기도. 그러나 때가 되면 하나님은 반드시 내 간구를 들어주시고 내 부르짖음에 응답하십니다. 그래서 나를 친 모든 원수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나의 모든 대적들을 물러가게 하십니다. 마치 다윗을 수척하게 하고, 뼈가 떨리게 하고, 영혼까지 흔들리게 했던 모반자들과 배신자들을 일거에 평정하신 것처럼 그렇게 상황을 종료하십니다. 기다리십시오. 밤마다 눈물로 기도하시며 응답을 바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