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00502m: 젊은 엄마의 사랑(딛 2:4-5) 어린이주일

2010년 5월 2일 주일낮예배/어린이주일
본문: 딛 2:4-5
제목: 젊은 엄마의 사랑

[4] 그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5] 신중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4절을 다시 봅니다.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젊은 엄마의 자녀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우선 하나님 사랑의 형상이 엄마의 자녀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만나는 하나님 사랑과 가장 유사한 사랑이 엄마의 자녀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을 교육하라는 겁니다. 세사 사람은 상대적입니다. 다 조건반사적입니다. 남이 나를 사랑해야 나도 사랑합니다. 이익이 되고 내게 덕이 되어야 사랑합니다. 명분이 있고 생색이 나야 사랑합니다. 세상의 사랑은 다 그렇습니다. 철저히 계산적이고 개인적이고 이기적입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상대적입니다. 나라 사랑도 그렇습니다. 남녀 간의 사랑도 다 그렇고, 부부간의 사랑도 그렇습니다. 심하게 얘기하면 다 장삿속입니다. 내게 손해가 되면 사랑하다가도 그 사랑을 철회합니다. 그리고서 도리어 원수가 됩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만날 수 있는 엄마의 사랑만큼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 해도 엄마의 사랑은 장삿속이 아닙니다. 엄마는 자녀에게 다 주고도 더 줄 게 없어 안타까워합니다. 나중에 자녀 덕에 부모가 호강하려고 자녀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엄마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과 닮은 겁니다. 엄마 사랑의 원형이 하나님 사랑입니다. 하나님도 우리와 이 세상을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사 당신의 독생자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기까지 맹목적이고 일방적으로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세상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하신 겁니다. 엄마의 사랑도 그렇습니다. 사실 냉정히 얘기하면 자식은 다 부모의 웬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무조건적으로 사랑합니다. 하나님 사랑이 바로 그렇다는 겁니다. 그래서 엄마의 사랑이야말로 유일한 하나님의 사랑의 모상이요 그림자입니다. 이 세상에 엄마의 사랑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벌써 생지옥이 됐을 겁니다. 그래도 엄마의 사랑 때문에 세상을 순화하고 이 정도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들은 하나님 사랑의 전도사요 중보자들입니다. 엄마는 다 그 고유한 모성을 통해 자녀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중재하고 증거하며 계시하는 하나님 사랑의 홍보대사입니다. 그래서 엄마들은 사랑을 통해 자녀들에게 하나님 사랑을 깨닫게 해야 합니다. 엄마가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면 그것은 됩니다. 아이들이 몸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체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엄마의 사랑이 가장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빠는 뭡니까? 아빠는 사랑이기보다 하나님 권위의 대행자입니다. 자녀들은 아빠를 통해 하나님의 권위를 배워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 아빠들이 자기 책임을 방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맹목적인 권위주의는 타파해야 하지만, 진정한 권위는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들이 하나님 권위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질서나 권위, 기강이 무너진 겁니다. 선생님들에 대한 권위, 사회 어른들의 권위, 나라 지도자들에 대한 권위, 나아가 하나님에 대한 권위도 무너졌습니다. 아버지에게서 그 권위를 못 배웠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하나님을 대신해서 그 권위를 제대로 가르치고 집행했어야 하는데, 아버지가 그것을 포기했기에 지금 상황이 좋지 않은 겁니다. 하나님의 권위의 대행자는 아빠입니다. 그리고 엄마는 하나님 사랑의 홍보대사가 될 때, 그 가정이 아름다워지는 겁니다. 어쨌든 오늘 주제는 엄마의 사랑이니까 엄마들이 자식들을 잘 교육시키십시오. 

다음은 본문의 젊은 엄마의 사랑 부분을 원어로 보면 혈육의 사랑이니 [스톨게]여야 맞습니다. 그런데 여기 4절은 스톨게가 아니고 [필레오]입니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세 번 물으셨을 때 베드로가 대답한 것이 바로 필레오입니다. 필레오는 우정입니다. 뜻밖에도 본문은 엄마에게 자녀들을 필레오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스톨게가 아닙니다. 의미심장하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왜 혈육지간의 사랑인 스톨게가 아니라 친구지간의 사랑인 필레오로 본문이 권면하고 있습니까? 성경이 아이들의 정서를 꿰뚫어 본 겁니다. 아빠는 항상 아이들 앞에서 고압적입니다. 친구가 되지 못합니다. 따라서 엄마가 아이들의 친구가 되라는 겁니다. 엄마가 친구가 되어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아파하고 씨름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스톨게가 아니라 필레오로 사랑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겁니다. 엄마가 자녀들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되어 주라는 겁니다. 엄마가 그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며 울라고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엄마들에게 주문하는 자녀사랑입니다. 맹목적인 스톨게 말고 필레오로 사랑하십시오. 그래야 여러분의 자녀들이 밝게 자라고, 정서에 그늘이 안 집니다. 아빠도 엄격하고, 엄마마저도 일방적으로 사랑하면 아이들이 숨 쉴 공간이 없어집니다. 

그런데 자녀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남편 사랑도 필레오입니다. 남편 사랑이라고 하면 에로스가 맞을 텐데 남편을 필레오로 사랑하라고 합니다. 남편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라고 합니다. 그게 아내의 진정한 남편 사랑이라고 합니다. 부부간의 사랑은 에로스도, 아가페도 아닙니다. 필레오입니다. 우정 같은 사랑입니다. 그러면 남편 쪽에서도 얼마나 신선하겠습니까? 남편을 애인처럼 친구처럼 생각하며 사랑하라는 겁니다. 자녀들뿐만 아니라 남편도 필레오로 사랑하는 엄마들 되십시오. 그러면 남편의 정서도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겁니다. 서로 고민을 나누고 대화하며 살 수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엄마 사랑의 최선은 기도입니다. 엄마의 자녀 사랑의 최고봉은 기도입니다. 기도 없는 자식 사랑은 없습니다. 자식을 사랑한다며 자식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면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가 없는 자녀 사랑은 확실한 거짓말입니다. 주님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는 우리의 옛 조상들도 새벽마다 목욕재계하고 정안수 떠 넣고 날마다 자녀를 위해 빌었습니다. 그래서 출세하고 그랬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자녀를 사랑한다며 자녀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동서고금, 기독교나 이교를 불문하고 부모들의 자식 사랑의 최대 표현은 언제나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죄 가운데 가장 큰 죄가 자녀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 죄입니다. 그것은 천추의 죄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자녀는 부모의 기도 없이 자란 아들 딸입니다. 한나의 기도를 떠나서 사무엘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유니게의 기도를 떠나서 디모데를, 모니카의 기도를 떠나서 어거스틴을, 수잔나의 기도를 떠나 요한 웨슬리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엄마의 기도가 위인을 만들고 성자를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위해 얼마나 기도하고 계십니까? 보통 고3이 되지 않으면 자녀를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자녀들이 잘 되기를 바라십니까? 자녀 사랑을 돈으로 떼우지 마십시오. 그게 편리할지는 몰라도 그렇게 하면 자녀가 망합니다. 기도로 자녀를 사랑하십시오. 그래야 자녀들이 성공하고 복됩니다. 기도로 키운 자식은 망하지 않는다는 말은 어거스틴의 모친 모니카의 좌우명이기 전에 성경이 알려주는 진리입니다. 기도하는 부모들의 자녀들은 망하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복 되게 삽니다. 예수 믿고 2, 3대 지나면 다 잘 삽니다. 그 부모들이 자손을 위해 그렇게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초기에는 한국 기독교도 여자들과 하층민들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지금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다 잘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기도의 결실입니다. 몇 년 전에 “여자는 남자의 미래”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잘 모르겠으나 엄마가 자녀의 미래라는 말은 맞습니다. 엄마가 한 가정의 미래요 희망입니다. 더 정확히는 엄마의 기도가 한 가정의 미래요 행복을 보장합니다. 그래도 기도하지 않으시렵니까? 기도로 자녀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의 미래가 더욱 밝고 아름답고 풍성하기를 기원합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 미디어: 원래 주소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