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411n: 이 성에 머물라(눅 24:4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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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1일 주일오후예배/성가대 헌신예배
본문: 눅 24:44-53
제목: 이 성에 머물라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50]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52]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53]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오늘 본문은 부활하신 주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적어도 누가복음 상으로는- 최후의 당부입니다. 49절 하반절입니다. “이 성에 머물라.” 여기서 말씀하는 이 성은 예루살렘 성입니다. 특히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고, 이 성전이 오늘 우리에게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성에 머물라고 하신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으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떠나지 말라는 당부입니다. 왜 주님이 이런 당부를 하셨을까요?
우선 성경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성경을 깨달으라는 겁니다. 45절입니다.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을 만나 성경을 많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44절, 46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예언된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우리 성가대원들도 사실 찬양 이전에 중요한 게 말씀입니다. 말씀에 대한 이해가 깊어야 합니다. 그것이 일차적인 성가대원들의 소양입니다. 성가는 기능으로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응답이 찬양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찬양보다 말씀이 앞서야 합니다. 이 성에 머무르며 말씀을 배우고, 이해를 깊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찬양이 풍부해집니다. 저는 사실 이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웬만한 교회의 성가대는 알바생을 쓴다고 합니다. 파트에 성악 전공자들을 몇 명씩 쓰는데, 문제는 기독교 신자가 아닌 심지어 불교 신자까지도 기능적으로 찬양대에서 찬양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서 주일날 두세 곳을 뛴다는 겁니다. 1부는 이 교회에, 2부는 저 교회에서 찬양한다는 겁니다. 찬양은 말씀 앞에서의 결단이어야 합니다. 음악적인 자질로 노래 부르는 게 찬양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가대는 음악적인 자질이 좀 부족해도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풍부하면 얼마든지 듣는 이로 하여금 은혜를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축적이 없으면 음악적인 소질이 있어도 성가대원의 자격이 없는 겁니다. 찬양은 영성으로 부르는 게 아니겠습니까. 우리 푸른교회 성가대도 말씀 공부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에서 우러나오는 영감있는 찬양으로 온 교회 성도들에게 은혜와 감동을 느끼게 하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다음으로 주님이 이 성에 머물라 하신 것은 위로부터 임하는 성령의 능력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49절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은 오순절에 임하실 성령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이 성, 교회에 머물러야 할 이유는 성령충만해서 성령의 풍성한 권능을 덧입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성가대원은 이것이 필수입니다. 우선은 말씀이 내 안에 넉넉히 축적되어야 하고, 다음은 위로부터 임하는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찬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성령의 능력을 덧입기까지 이 성에 머물라고 당부하신 겁니다. 성령충만하십시오. 절대 찬양은 인간적인 능력이나 자질로 하는 게 아닙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겁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하는 겁니다. 제가 학교에 있을 때, 주말로 저 강원도 홍천군 서면 도리소라는 곳에 갔습니다. 거기는 남궁억 선생의 고향이며 무궁화 마을입니다. 거기 교회는 10명 미만의 교회였는데, 거기에 몇 년 간 주말마다 갔습니다. 토요일날 가서 월요일날 상경했습니다. 그 교회에 당시 73세인 집사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이 가끔 낮예배 때 특송을 했습니다. 하여간 그분이 특송만 하면 우리가 다 울었습니다. 무궁화 초등학교 선생님과 그분의 아이가 나왔는데, 제일 먼저 그 아이가 울었고, 나중에는 우리 모두가 다 울었습니다. 곡도 틀리고, 박자, 가사가 다 틀렸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찬양만 하면 견딜 수 없이 다 울었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게 찬송은 성령의 감동으로 부르는구나 였습니다. 한번은 그분이 저녁예배 때 특송을 했는데, 다들 우느라고 설교도 제대로 못했고, 울고 나니 다들 얼굴이 그렇게 투명하고 천사 같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런 찬송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찬양하기 전에 몇날 몇일 기도하고 준비해서 부르는 겁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 이하입니다.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성령충만 이후 찬송하는 겁니다. 어디서 성령충만을 받습니까? 교회 아니겠습니까. 교회 아니고 어디서 성령충만을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오순절 때도 그랬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이 성에 머물러야 할 이유는 마지막 절인 53절에 있습니다.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주님이 우리를 향한 바람은 다른 게 아닙니다. 우리가 늘 교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쁜 마음으로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몸도 영혼도 건강해집니다. 이런 모범을 성가대가 보이고 선도하라는 겁니다.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을 보면, 기독교인이 천성을 향해 가는데, 가끔씩 슬럼프에 빠집니다. 그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찬송이 실종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영성의 바로미터는 찬송의 유무입니다. 신앙이 극도로 다운되면 여러분의 입에서 찬송이 사라집니다. 영성이 회복되면 제일 먼저 입에서 찬송이 살아납니다. 이런 일의 최일선에 성가대가 있습니다. 영성의 삶의 모범을 성가대가 보임으로써 우리 교회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교회가 되게 하는 사명이 성가대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성전에서 찬양하며 살기를 바라시는 것이 주님의 기대요 최후 당부라는 사실을 확인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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