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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4일 주일오후예배</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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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본문: 요 20:19-24</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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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제목: 부활절 저녁</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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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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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에 제자들은 예루살렘 어느 집 골방에 모여서 안으로 문을 잠그고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최후가 너무도 처참했고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그 두려움과 공포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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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안식 후 첫 날 저녁 때 라고 시작합니다. 안식일은 지금의 토요일이고, 안식 후 첫 날이니까 오늘날의 주일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당일입니다. 여전히 제자들은 두려워서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주일 저녁 때에 놀랍게도 숨어있는 제자들의 방에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19절을 다시 봅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문을 분명히 닫았는데, 홀연히 주님이 제자들 가운데 나타났습니다. 제자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제자들은 주님이 유령인 줄 알았습니다. 주님이 귀신이 되어 자기들 가운데 나타나신 줄 알았던 겁니다. 이게 부활하신 주님과 제자들의 첫 해후입니다. 새벽에는 주님이 막달라 마리아와 만나셨습니다. 본문은 이렇게 부활하신 주님이 숨어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주신 첫 말씀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2천 년 전 첫 부활절 때 주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이면서 동시에 2010년 부활절인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생생한 육성입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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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을 만난 주님이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평안을 빌어주시는데,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빌어주십니다(19, 21). 지금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나 지위가 아니라 평안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무엇보다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평안을 빌어주시는 겁니다. 그랬더니 과연 20절 말씀을 보니 제자들이 기뻐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제자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주님이 유령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내 손과 옆구리를 보라고 하며 유령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아직도 아물지 않은 처참한 상처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평안을 빌어주시자, 그제서야 제자들은 안도하고 주님이 빌어주신대로 평안을 느끼고 기뻐했습니다. 부활절 오후를 맞이하는 여러분도 주님이 빌어주시는 평안을 듣고 가시길 바랍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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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고 하셨습니다. 이제부터 문을 박차고 나가 부활을 증거하는 선교적 삶을 살라고 하시는 겁니다. 언제 어디서든 보냄을 받은 소명자로서 선교적 삶을 살라는 격려요 당부인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아 33년간 이 땅에서 선교를 하셨는데, 이제 주님도 우리에게 소명을 준다는 겁니다. 해외로 파송을 받는 사람들만 선교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선교사입니다. 주님이 30년 동안 사생활을 하고, 3년간 공생애를 사시면서 제자들을 키우셨습니다. 그들을 우리는 사도라고 합니다. 사도는 아포스톨로스(apostolos)라고 하는데, 그 뜻은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12제자만 사도가 아니라 우리도 사도입니다. 두려움을 떨치고 문을 박차고 저 세상 한복판으로 나가 주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증인으로 살라는 겁니다. 주님은 절대 우리를 수도사로 살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산상에 초막 셋을 짓고 그렇게 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나가 부활의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절대 은둔자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외진 곳에 가서 사색하고 명상하며 살기를 주님은 바라지 않습니다. 거친 세상 한복판에 나가 담대하게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며 선교적으로 살라고 하셨습니다. 여전히 세상은 변한 게 없습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주님의 당부를 듣고 세상에 나가 담대하게 살았습니다. 주님의 부활의 증인들로 살았습니다. 순교적으로 살았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온몸으로 우리의 삶으로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며 사도들로서 살아야 합니다. 보냄 받은 소명자로 살아야 합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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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일은 절대 만만하지 않습니다. 의욕만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결단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이 마지막으로 당부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은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는 겁니다(22). 성령을 받아야 부활의 증인으로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온전히 지배하며 강제하여야 세상이 주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내 온몸으로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려면, 사도적이고 선교적인 삶을 살려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이때는 오순절 전입니다. 만일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면, “성령충만”을 말씀하실 것입니다.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절대 부활의 증인으로 살 수 없습니다. 세상이 주는 위협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활의 증인이 되십시오. 주님 부활의 전도자요 사도로 사십시오. 이게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을 처음 만나 당부하신 소명입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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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부활절 오후에 주님이 우리에게 당부하시는 것도 동일합니다. 평안을 빌어 주시고, 부활의 사도로 살고, 성령충만을 당부하십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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