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불상과 십자가

  전에 한국 교회 100주년 기념행사에 초대된 독일인 목사님 몇 분을 모시고 경주 불국사를 간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승려들의 동작이며 복장, 사찰 안에 있는 그림, 글씨 등 눈에 띄는 것마다 저게 무엇이고 무슨 뜻이냐며 꼬치꼬치 묻는 통에 진땀을 뺐습니다. 그런데 더욱 난감했던 것은 대웅전에 정좌한 불상을 보고 <저 부처님이 여자냐 남자냐?>하고 물었을 때였습니다. 제가 어이가 없어서 <당신들 눈에는 어떻게 보이느냐?>며 반문했더니 <여자 같기도 하고 남자 같기도 해서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맞다. 원래 여자인듯하면서도 남자 같고 남자인듯하면서도 여자 같은 분이 바로 부처>라고 했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는데 그때 또 한 사람이 부처가 왜 한 손은 펴고 또 한 손으로는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내가 왜 이런 것들을 좀 미리 배워두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와 함께 또다시 엉뚱한 대답을 했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과 예수님이 도박을 했는데 그만 예수님이 지는 바람에 부처님이 돈을 달라며 손바닥을 편 채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고, 예수님은 양팔을 벌리고 돈이 없다는 시늉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제 농담에 모두가 한바탕 웃고 그럴듯한 해석이라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 번은 독일 뮌헨에서 자동차로 알프스 기슭 퓌센에 있는 백조의 성 노이슈반슈타인을 가다 어느 작은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십자가상 아래서 한 쌍의 젊은 남녀가 열정적인 키스신을 벌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만약 그때 그 십자가가 실제였다면 아마 그들 머리 위에 주님의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을 것입니다. 저는 참 충격적이었습니다. 도대체 십자가를 비웃는 것인지, <당신이 거기 그렇게 달린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즐길 수 있어 감사하다>는 뜻인지 쓴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차라리 부처님 상이었다면 어울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자대비하신 어버이 면전이라면 무슨 짓을 한들 대수겠습니까? 

  어쨌든 십자가와 불상은 참 대조적입니다. 십자가는 종과 횡이 교차된 그 한복판에 주님이 못 박혀 꼼짝도 못한 채 피 흘리고 있습니다. 정말 인간이 당할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이요 모순의 극치입니다. 주님의 마지막 절규인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를 생각하면 더욱 처절합니다.

  이에 반해 불상은 그 어떤 모순이나 아픔도 다 초월한 너무나도 평온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불상을 한참 쳐다보고 있노라면 정말 인생의 백팔번뇌가 다 눈 녹듯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나 거기서 눈을 돌리는 순간 <아차, 속았구나!>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현실은 결코 그런 초연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상은 현실을 탈출하려는 듯 산으로 들어갔고, 기독교는 거리로 나왔는지도 모릅니다. 또 불상 밑에서 자란 동양은 정적이고, 십자가 밑에서 자란 서양은 동적이며, 동양은 종합과 조화를 좋아하고, 서양은 분석과 대결을 좋아하는지도 모릅니다. 모순을 모순 그대로 직시하자는 자세와 모순을 없는 듯 눈감아 버리자는 자세.

  저는 역시 십자가 상에 더 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