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Miserere Nob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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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색채의 연금술사 루오전>이 열리고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고난기간인 이 사순절에 가장 잘 어울리는 화가인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 1871-1958)는 프랑스 파리 출신으로 마티스와 피카소를 뛰어넘는 당대 최고의 작가로 야수파, 입체주의, 표현주의 시대를 살면서도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일궈낸 20세기 현대 미술사의 거장입니다. 재작년 분당 아트센터에서 열린 <현대미술의 위대한 유산전>에서도 몇몇 그의 대표작들을 접했지만 이번에는 규모도 총 168점으로 대단했을 뿐 아니라 작품의 구성도 놀라웠습니다. 프랑스에서조차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었던 14점을 비롯 해외에서는 최초로 전시된 70점, 다수의 미완성 작품들과 58점의 판화들까지 망라되어 거장의 면모를 보다 체계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루오는 가구 세공가의 아들로 태어나 10세부터 그림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14세 때는 공예 미술학교를 다니며 스테인드글라스 제조사의 견습공으로 일하기도 했는데 그 때의 체험이 후에 그의 오묘한 색발현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확실히 루오의 원작에는 컴퓨터 영상이나 도록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신비감이 가득합니다. 그만큼 색감과 질감이 깊고 인상적입니다. 루오는 한 작품에 수십 번, 수백 번의 붓질로 덧칠을 해가며 두꺼운 입체감과 성스러운 색상을 조합해 갔는데 이번에 저는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왜 그를 <색채의 연금술사>라고 부르는지 충분히 알고도 남을 듯했습니다. 자국인 프랑스와 유럽, 미국은 물론이고 2차대전 직후에는 일본 사람들까지도 열광했던 루오, 최근에는 그에게 한국인 손녀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루오의 딸 이자벨이 한국의 전쟁고아를 입양한 사실이 재불 원로화가 방혜자(72) 씨를 통해 확인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루오는 이중섭을 비롯해 우리나라 화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이중섭의 대표작인 <싸우는 소>는 검고 굵은 선이며 거칠고 투박한 두 마리 소의 역동적인 질감 등에서 누구나 루오의 화풍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루오를 대표적인 종교화가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는 성서를 소재로 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여정을 모티브로 일상적인 풍경화를 그렸고, 예수님의 모습과 수난을 주제로 가장 인간적인 내면을 형상화했습니다.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성녀 베로니카>도 한없이 평범한 인물 같으면서도 깊은 성스러움을 함의한 그의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꼽힙니다.
그러나 이번 전시회의 백미는 역시 그의 연작 판화인 <미제레레>(Miserere Nobis)입니다. 주님의 수난사를 50여 점의 판화로 제작한 것인데 이는 1912년 아버지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그가 신앙을 통해 그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완성한 작품으로 그의 기독교 신앙에 대한 애정과 사색이 얼마나 심오하고 처절했는지를 잘 대변해 주는 걸작입니다. 이 외에도 그는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인 <기둥에 묶인 그리스도>를 비롯해 <그리스도의 수난>, <그리스도의 얼굴>, <두 도둑 사이의 그리스도>, <십자가의 그리스도> 등과 같은 작품을 통해 성서가 가르쳐 주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그리스도의 구원의 메시지를 가장 뜨겁게 전한 화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아무튼 루오전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특히 <미제레레> 전시실은 다른 방보다 더 어두운 벽지에 조도가 낮은 조명을 설치하여 실내 분위기를 최대한 작품과 어울리게 연출하는 등 최상의 관람 환경을 위해 애쓴 흔적도 엿보여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종려주일인 3월 마지막 주일(28일)까지 계속되는 <루오전>에 꼭 한 번 다녀오시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