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31m: 스트레스 관리(눅 4: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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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31일 주일낮예배
본문: 눅 4:38-44
제목: 스트레스 관리
[38]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39]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40]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41]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44]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
지난 주 화요일 아침, 삼성전자 부사장급 임원 한 사람이 자기 집 아파트에서 투신자살을 했습니다. 나이가 51세입니다. 그는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나오고 미국 스탠포드에서 전자공학으로 학위를 받은 반도체 분야의 최고 전문가였다고 합니다. 그는 왜 스스로 몸을 던졌을까요? 더구나 삼성전자는 작년 사상 최대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사상 최대의 영업수익을 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고의 기업이요 세계에서도 일류기업인데, 왜 그런 회사에 다니는 임원이 성공의 정점에서 투신자살을 했을까요? 경찰은 과도한 업무에서 온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본인이 남긴 유서와 부인의 진술이 그렇다고 합니다.
정신건강 컨설팅 업체로 마인드 프리즘이란 회사가 있습니다. 최근에 연구결과를 하나 내놨습니다. 지난 4년 동안 4백 명의 우리나라 주요 기업 임원들을 상대로 연구한 결과물인데, 80% 이상이 지금 당장 치료가 필요한 스트레스 환자들이라고 합니다. 올해 우리가 감당해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만, 특히 개인의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울증이나 암 같은 모진 병에 안 걸립니다. 덜 늙고 늙어도 곱게 늙습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우리 몸에 활성산소가 발생해 이게 DNA를 공격해 노화가 진행되고 만병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는 만병의 주범입니다. 우리나라는 자살율 세계 제1위, 특히 청소년 자살율 세계 제1위, 음주율 세계 제1위, 특히 여성의 음주율 세계 제1위, 흡연율도 세계 제1위요, 중고등학생의 흡연율도 세계 제1위입니다.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이렇게 된 겁니다. 음란물을 찾거나 더 강한 자극을 원하니까 마약에 손댑니다. 많이 벌고 출세하면 무엇 합니까?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면 한 방에 갑니다. 공부 많이 해서 교수되고 총장 되면 무엇합니까? 장관되고 국회의원 되면 무엇합니까? 스트레스 관리를 잘못하면 그게 도리어 족쇄가 되어 생을 그르치고 맙니다. 제 눈에도 건드리면 폭발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사회나 가정적인 해소 조치가 있느냐 하면 없습니다. 카타르시스할 방법이 없습니다. 참다 참다가 더 이상 감당이 안 되면 아파트에서 뛰어 내리는 겁니다. 우리는 왜 그럴까 하지만, 그분들에게는 그 길 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관리하셨을까요? 주님께 스트레스가 없었다고 보기엔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고, 로마 식민지로 받은 압박감도 있었을 것이고, 또 변두리에서 가난한 서민으로 사셨습니다. 공생애를 볼 때 주님은 너무도 바빴습니다. 고되게 사셨습니다. 그래서 우물가에 걸터앉으셨고, 때론 울기도 했습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슬퍼하다가 고민스러워 죽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주님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관리하셨을까요? 어떻게 자기 길을 끝까지 가실 수 있었을까요? 이것이 알고 싶습니다.
본문을 보면 주님 공생애의 한 단면인데, 얼마나 타이트한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아침 일찍부터 회당에서 무리를 가르치시고, 거기서 베드로 집으로 가서 그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 주시고, 오후에는 온갖 병자를 고치시고, 일일이 손을 얹어 귀신을 쫓아내십니다. 그리고 밤에는 주무시고, 42절은 그 이튿날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려고 하는데, 거기에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새벽부터 사람들에게 시달린 겁니다. 44절 이하를 보면 다른 마을로 이동하셔서 사역을 하십니다. 하여간 쉬실 틈이 없었습니다. 이런 격무에 시달리셨음에도 주님이 짜증을 부리셨다거나 사람을 귀찮아하셨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자기 일에 회의를 느낀 적이 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주님은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극복하신 것 같습니다.
우선 주님은 자신에 대해 솔직하셨습니다. 이게 스트레스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습니다. 41절 하반절을 보면 ‘자기가 그리스도인 줄 아셨다’고 합니다. 주님이 자신의 존재감이나 정체성을 정확히 알고 계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진솔하게 자신을 오픈하고 살아야 스트레스가 덜 합니다. 자신에 대해 거짓말하면 굉장한 스트레스에 시달립니다. 항상 마스크를 끼고 살아야 하고, 자기와는 다른 모습을 연기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자신에 대해 솔직하며 오픈하고 사셨습니다. 주님은 감추려는 게 없었습니다. 언제나 자기 신분과 존재를 아셨고 그 신분에 걸맞게 사셨고, 자기 감정과 정서에 진솔하셨습니다. 본문을 보면 주님이 꾸짖었다는 표현이 39, 41절에 두 번 나옵니다. 마가복음 3장 5절을 보면 탄식하며 노기 띤 얼굴로 보셨다고 합니다. 또 무리를 바라보며 목자 없는 양 같게 여기며 측은히 여겼다고 했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면서는 마음이 괴로워 죽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쓴 잔을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도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인간적인 정서를 드러낸 것들입니다. 어떤 때는 하기 싫어하시고, 피곤하다고 하시고, 진노하기도 하셨습니다. 주님처럼 자기 존재에 맞게 진실 되게 살아야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늘 위선이나 거짓, 과장, 허풍으로 사는 사람들의 표정은 겉으로는 밝으나 그의 안에는 스트레스로 차있습니다. 우리는 싫어도 흥, 좋아도 흥을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틀림없이 일이 잘 안 풀리며 사는 것 같아 어떻게 지내냐 물으면 잘 지낸다고 합니다. 자기 존재가 다 드러나면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거짓, 허풍은 자존심이 아닙니다. 자기를 개방해야 합니다. 마음 문을 닫고 사는 사람들의 스트레스는 우리 생각 이상입니다. 자기 고민을 다 드러내면 해결도 되고 스트레스도 해소되지만 혼자 품고 살면 병이 되고 암이 됩니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니 도시 노인들의 장수비결이 나왔습니다. 서울에 사는 94세 이상 노인 87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더니 80% 이상이 사교적 성격을 가지고 자기의 생각을 솔직히 표현하는 사람들이었고, 두 번째가 규칙적인 식생활이었습니다. 자기를 오픈하고 사는 사람이 다 장수하고 사는 겁니다. 우리나라 성인치고 화병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성들은 특히 다 화병을 갖고 있습니다. 속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오픈하십시오. 솔직하게 고백하십시오. 그게 보약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사셨습니다.
다음은 자기 자신의 과제에 충실하셨습니다. 43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다른 동네로 가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자신의 할 일, 사명이 무엇인지 알고 계셨고, 언제 어디서나 그 일에 최선을 다하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스트레스를 이긴 비결 중 하나입니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과 안 하는 학생 중 누가 더 스트레스를 받을까요? 당연히 공부 안 하는 학생입니다. 공부 타령은 안 하는 학생이 더 합니다. 말로만 해야 되는데 하지 정작 공부를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이게 항상 짐이 되고 마음에 중압감을 느끼는 겁니다. 친구하고 놀면서도 마음에 자유함이 없습니다. 놀면서도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겁니다.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은 놀 때는 잘 놉니다. 주님을 보면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다’고 하시며 사람들이 만류했음에도 이웃 마을로 가셔서 당신의 사역을 하셨습니다. 남편들도 직장에서 자기 직업에 최선을 다해야겠으나, 주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렇게 살려고 결혼했나 생각하면 스트레스가 몰려옵니다. 올해는 내가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다고 하시면서 소명감을 느끼며 일하십시오. 그래야 내가 하는 일이 노동이 아니라 운동이 되는 겁니다. 일 하면서 스트레스 받으면 늙고 암에 걸립니다. 주님처럼 ‘내가 이 일을 위해 보냄을 받았다’고 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이 일을 위해 내가 보냄을 받았다 생각해야 합니다.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소명감을 느껴야 합니다. 하나님께 충성하고 헌신한다고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육체도 마음에도 양약이 됩니다. 주님은 그 격무를 그렇게 이기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자신도 해치고 남도 해치게 됩니다. 누구나 자기 직무를 유기하고 소홀히 할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어떤 일이든 소명감으로 하면 보람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은 자주 한적한 곳에 나가셔서 쉬고 기도하셨습니다. 본문 42절 상반절입니다.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주님은 자주 이렇게 하셨습니다. 왜냐면 한적한 장소와 시간에서 쉬고 기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은 바삐 사셨고, 열심히 일한 만큼 하여간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습니다. 얼마나 모든 일들이 바삐 돌아갔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주님은 주로 새벽시간을 택해서 광야나 산으로 가셨습니다. 그 시간을 즐기고 쉬며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은 꼭 필요합니다. 주님의 스트레스 관리에서 절대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쉬고 기도하는 것 말입니다. 요즘 세계적으로도 명상이 유행입니다. 미국은 지금 거대한 산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새롭게 부상하는 시장이 되었습니다. 불교에서도 백팔 번뇌를 극복하는 수양으로 참선을 꼽습니다. 우리에게는 기도가 있습니다. 기도가 가장 능동적이고 공격적인 스트레스 해소법입니다. 왜냐면 기도는 주님과 일대일로 내 마음의 무거운 짐을 위탁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내 무거운 짐을 주님 앞에 내려놓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명상이나 참선과는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안 받고 곱게 늙기를 바란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런 능력이나 대책도 없으면서 무엇이든 자기가 끌어안고 살면서도 기도할 줄 모릅니다. 기도해서 그 짐을 주님께 위탁해야 합니다. 그래서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리의 표정은 항상 피곤에 절어 있고, 살기 싫다는 표정입니다. 이것은 주님 앞에 송구스러운 일입니다.
여러분, 기도 많이 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맑습니다. 피부 관리를 잘 해서 그런 줄 아시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고뇌를 주님께 위탁해서 그렇습니다. 마음이 평안하니까 얼굴이 투명합니다. 주님 같은 분도 기도하심으로써 스트레스를 이기셨는데, 하물며 우리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주님처럼 조용한 시간에 기도를 많이 하십시오. 주님은 낮에는 시간을 낼 수 없어 새벽시간을 이용하셨습니다. 조용한 기도 시간을 만드십시오. 안 믿는 사람도 참선하고 명상하는데, 왜 우리가 기도 안 합니까. 기도하셔서 가장 바람직하게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성도 되십시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일러주신 최상의 스트레스 관리와 해소법을 명심하십시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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