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역사, 노예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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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는 이 지구 상에서 가장 순수한(?) 흑인 노예국입니다. 1492년 12월 5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산타 마리아호를 타고 첫발을 내디딘 아메리카 신대륙이란 실은 카리브해 연안의 키스케야 섬이었습니다. 당시 그 섬에는 타이노 족이라는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그 섬의 서쪽을 아이티(Haiti)라고 불렀습니다. 콜럼버스와 함께 상륙한 스페인 정복자들은 원주민인 타이노 족을 무자비하게 학대하고 살육했으며 노예화하여 금 채굴 노역에 내몰았습니다. 결국 섬의 주인이었던 인디언들은 학살과 질병과 혹사에 견디지 못하고 다 멸종되고 말았으며 그 후 17세기에는 제국주의 프랑스가 그곳을 차지하여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잡아다 노예로 부리며 커피와 면화, 사탕수수 등을 재배했는데 그 흑인 노예들이 바로 오늘날의 아이티인들의 선조가 된 것입니다.
프랑스 식민지로 그들의 노예가 되어 가장 잔혹한 수탈을 당해오던 아이티 주민들은 오랜 세월 독립을 위한 투쟁을 벌였고 마침내는 1804년 세계 최초의 흑인 공화국, 미주 대륙에서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 공화국을 이룩했습니다. 그러나 흑인 노예국이라는 이유로 독립국가 승인을 거부하던 미국이 내분과 쿠데타와 반란이 끊이지 않는 혼란을 틈타 1915년 전격 아이티에 군대를 진주시키고 주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1934년까지 사실상의 식민통치를 감행합니다. 미국이 지배하는 20년 동안 아이티는 모든 농장과 자원들이 다 미국 자본가들의 손에 넘어가 버리고 말았고, 미국을 등에 업은 독재정권들은 더욱 가혹하게 자국민들을 억압했습니다. 그러나 아이티 국민들의 끈질긴 민주화 투쟁은 1990년 결국 최초의 자유선거를 통해 아리스티드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는데 그는 가톨릭 사제 출신으로 좌파성향의 해방 신학자였습니다. 그는 2000년에도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로 대통령에 재선되었는데 현재는 정권을 이양해 국무총리였던 프레발이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아이티가 독립 이후 무려 34번의 쿠데타를 겪으며 진흙을 소금과 마가린으로 반죽하여 구운 과자로 허기를 달래야 하는 최빈국으로 전락한 데는 이런 서구 열강들의 탐욕스런 수탈과 군사개입과 점령의 역사가 있었음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또 라틴 아메리카 공화국 가운데 유일하게 불어를 공용어로 쓰고 영어에도 능한 이유나 전체 국민의 70%가 가톨릭이고 30%가 개신교인 이유도 다 과거 프랑스와 미국의 식민지 역사 때문이었음을 상기할 때 씁쓸한 느낌을 떨칠 수 없습니다. 이번에도 미국은 구조대와 복구비를 지원한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치안을 이유로 대규모 군대를 파견했습니다. 더구나 전투부대인 해병대 병력 1만 2500명을 투입해 대통령궁을 위시하여 수도 포르토프랭스를 통제하고 있는데 심지어는 항공모함까지 보냈습니다. 국제사회는 미국의 이런 발 빠른 군사적 조치에 대해 마치 <점령군처럼 행동한다>며 우려하고 있고, 미국이 가장 미워하는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도 <미국이 이번 참사를 이용해 다시 아이티를 군사적으로 지배할 것이라>며 <군인 대신 의약품과 구조대, 물을 보내라>고 독설을 날렸습니다. 또 유럽에서는 프랑스가 연일 미군의 아이티 주둔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당신네들인들 뭐가 다르겠습니까? 과거 그들을 지배한 탓에 공용어가 불어인 나라에서 하나라도 더 자국의 이익과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속셈 외에 뭐가 또 있을까요?
주님은 지금 저 처참한 아픔의 현장에 함께 계실 줄 믿지만 저는 오늘 이 따뜻한 자리에 있음이 몹시 부끄럽습니다. 저 시신 썪는 냄새 진동하는 고통의 현장으로 달려가지 못함이 안타깝고 여기 배부른 자리에 있음이 너무도 죄스럽습니다. 주여, 아이티를 구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