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24m: 재난과 해석(눅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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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24일 주일낮예배
본문: 눅 13:1-5
제목: 재난과 해석
[1]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카리브해 아이티가 하루아침에 죽음의 땅으로 변했습니다. 강도 7의 강진이 발생해서 순식간에 초토화되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죽었고, 아직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매몰되어 있는지 조차 파악이 안 되었습니다. 지금도 여진이 계속되어 구호와 복구 작업에 애로가 있습니다. 어제는 한 달 이내에 또 한 번의 강진이 있을 거라 예고되었습니다. 아이티는 프랑스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후 오랜 독재로 정치와 경제, 행정이 완전히 붕괴된 채 지구상에서 가장 후퇴한 나라 중 하나가 되었는데, 이번에 자연재해까지 덮쳐 더욱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겠습니다. 그들의 아픔과 슬픔에 동참해야겠습니다.
이번 아이티와 같은 비극적인 재난을 보면서 우리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왜 아무 죄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 신앙도 좋아보이던 사람들에게 왜 모진 재난이 닥칠까 라는 것입니다. 아이티는 전체 국민이 900만인데, 70%가 가톨릭에 30%가 개신교로서 완벽한 기독교 국가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저토록 처참한 지경으로 내모셨을까요? 그런데 아이티는 100% 기독교 국가인 동시에 100% 부두교입니다. 부두교는 그들의 원시종교와 기독교가 혼합된 주술교입니다. 놀랍게도 아이티는 성당과 교회의 성직자가 다 주술사들입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 이렇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형식상 기독교인이지 죄를 많이 지어서 하나님이 심판하셨다고 말입니다. 재난을 바라보는 이런 시각과 판단이 옳은가, 정당합니까?
요한복음 9장을 보면 태어나면서 소경된 자를 주님이 만납니다. 제자들도 우리와 같은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여쭙니다. 왜 이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났습니까? 조상 죄 때문입니까? 자신의 죄 때문입니까? 이미 제자들에게는 종교적인 편견이 전제되어 있었습니다. 불행은 죄값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기정사실화하여 누구 죄 때문인지를 묻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의 대답은 그런 전제 자체를 부정하십니다.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겁니다. 제자들이 가졌던 헛된 종교적 관념을 근본에서부터 부정하신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소경을 고쳐주십니다.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해서 씻었더니 눈이 열린 겁니다. 그래서 거기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남의 슬픔과 재난을 바라보는 눈이 주님은 우리와 180도 달랐습니다.
오늘 본문도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이르기를 로마 총독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을 살해해서 그들의 피를 제물과 섞었다는 겁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유명한 반골들입니다. 로마 점령 세력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저항하고, 무력으로 봉기하고, 게릴라전을 벌이는 민족 해방 전사 가운데 갈릴리 출신이 많았습니다. 갈릴리 지방의 험한 계곡에 거점을 두고 활동했기에 로마 총독에게는 갈릴리 사람이 가장 거슬렸습니다. 그래서 어느 유월절에 갈릴리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예배하는데 그들을 덮쳐 살해하고 그들의 피를 제단에 뿌린 겁니다. 당시 총독부의 공식해명은 로마에 대한 불순세력을 일망타진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예루살렘은 다윗이 수도로 삼았습니다. 시온산 꼭대기에 건설된 수도입니다. 그래서 식수가 가장 문제였습니다. 예루살렘 성 밖 기드론 샘물이 유일했습니다. 그 물을 끌어와서 만든 연못이 실로암입니다. 거기다 높은 망대를 세우고 늘 실로암 연못을 지키게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망대가 무너져 무려 18명이나 압사했습니다. 빌라도의 만행을 전한 사람들이나 실로암 망대의 압사를 보는 사람들의 전제는 그들의 죽음이 죄 때문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그러나 주님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합니다.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은 죽은 그들과 달리 죄가 적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주님은 결코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은 두 번이나 반복하시며 ‘회개’를 말씀하십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다 죽는다는 겁니다. 갈릴리 사람이나 망대가 무너져 죽은 사람이나 지진으로 죽은 아이티 사람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렇게 죽은 겁니까? 우리는 그들에 비해 회개했기에 아직 살아있는 겁니까? 아닙니다. 아이티가 100% 기독교 신자인데도 100% 부두교 신자여서 하나님이 심판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재난을 보며 오늘 우리들의 자세가 어떠해야 할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경거망동하지 말고 오히려 숙연한 마음으로 자신을 성찰하며 회개하라는 겁니다.
그들의 재난이 죄 때문이 아니라면 왜 그들은 재난을 당했습니까?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역사의 그 어떤 사건도 우연처럼 보이지만 우연을 가장한 필연입니다. 다 하나님의 섭리요 뜻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모르기에 우연으로 치부할 뿐입니다. 창세기 45장 3절이하를 보겠습니다. “[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세상에서 요셉이 당한 배신과 아픔보다 더 큰 비애나 불행이 또 있을까요? 어떻게 형들이 공모해서 어린 동생을 죽이려고 구덩이에 밀어 넣고, 거기서 끄집어 내 돈을 받고 노예로 팝니까? 애굽에 팔려간 요셉이 얼마나 모진 고생에 억울한 옥살이를 했습니까? 시편 105편에서 그 때 당한 요셉의 고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18). 그런데 요셉은 형들을 원망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고 애굽에서 형들과 마주칩니다. 형들은 양식을 얻으려고 온 약자요, 요셉은 국무총리로 형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요셉은 형들에게 창세기 45장 3절 이하의 대목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당신들 앞서 나를 애굽에 보내셨다고 합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비극마저도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로 해석했습니다. 이게 맞는 겁니다. 그 어떤 아픔도 상처도 배신도 고통도 무고한 옥살이도 끔찍한 자연재해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 아닌 게 없습니다. 너무 잔인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죄 값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이런 자세가 우리는 필요합니다. 날아가는 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하물며 우리의 운명은 어떠할 것이며, 한 민족의 운명은 어떠하겠습니까? 현재는 수수께끼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다 납득이 될 것입니다. 아이티를 위해 기도하십시다. 힘껏 그들을 도웁시다. 동시에 자신을 살피며 회개하며 자중하십시다. 2010년 1월 24일 주일낮예배
본문: 눅 13:1-5
제목: 재난과 해석
[1]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카리브해 아이티가 하루아침에 죽음의 땅으로 변했습니다. 강도 7의 강진이 발생해서 순식간에 초토화되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죽었고, 아직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매몰되어 있는지 조차 파악이 안 되었습니다. 지금도 여진이 계속되어 구호와 복구 작업에 애로가 있습니다. 어제는 한 달 이내에 또 한 번의 강진이 있을 거라 예고되었습니다. 아이티는 프랑스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후 오랜 독재로 정치와 경제, 행정이 완전히 붕괴된 채 지구상에서 가장 후퇴한 나라 중 하나가 되었는데, 이번에 자연재해까지 덮쳐 더욱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겠습니다. 그들의 아픔과 슬픔에 동참해야겠습니다.
이번 아이티와 같은 비극적인 재난을 보면서 우리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왜 아무 죄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 신앙도 좋아보이던 사람들에게 왜 모진 재난이 닥칠까 라는 것입니다. 아이티는 전체 국민이 900만인데, 70%가 가톨릭에 30%가 개신교로서 완벽한 기독교 국가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저토록 처참한 지경으로 내모셨을까요? 그런데 아이티는 100% 기독교 국가인 동시에 100% 부두교입니다. 부두교는 그들의 원시종교와 기독교가 혼합된 주술교입니다. 놀랍게도 아이티는 성당과 교회의 성직자가 다 주술사들입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 이렇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형식상 기독교인이지 죄를 많이 지어서 하나님이 심판하셨다고 말입니다. 재난을 바라보는 이런 시각과 판단이 옳은가, 정당합니까?
요한복음 9장을 보면 태어나면서 소경된 자를 주님이 만납니다. 제자들도 우리와 같은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여쭙니다. 왜 이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났습니까? 조상 죄 때문입니까? 자신의 죄 때문입니까? 이미 제자들에게는 종교적인 편견이 전제되어 있었습니다. 불행은 죄값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기정사실화하여 누구 죄 때문인지를 묻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의 대답은 그런 전제 자체를 부정하십니다.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겁니다. 제자들이 가졌던 헛된 종교적 관념을 근본에서부터 부정하신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소경을 고쳐주십니다.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해서 씻었더니 눈이 열린 겁니다. 그래서 거기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남의 슬픔과 재난을 바라보는 눈이 주님은 우리와 180도 달랐습니다.
오늘 본문도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이르기를 로마 총독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을 살해해서 그들의 피를 제물과 섞었다는 겁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유명한 반골들입니다. 로마 점령 세력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저항하고, 무력으로 봉기하고, 게릴라전을 벌이는 민족 해방 전사 가운데 갈릴리 출신이 많았습니다. 갈릴리 지방의 험한 계곡에 거점을 두고 활동했기에 로마 총독에게는 갈릴리 사람이 가장 거슬렸습니다. 그래서 어느 유월절에 갈릴리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예배하는데 그들을 덮쳐 살해하고 그들의 피를 제단에 뿌린 겁니다. 당시 총독부의 공식해명은 로마에 대한 불순세력을 일망타진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예루살렘은 다윗이 수도로 삼았습니다. 시온산 꼭대기에 건설된 수도입니다. 그래서 식수가 가장 문제였습니다. 예루살렘 성 밖 기드론 샘물이 유일했습니다. 그 물을 끌어와서 만든 연못이 실로암입니다. 거기다 높은 망대를 세우고 늘 실로암 연못을 지키게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망대가 무너져 무려 18명이나 압사했습니다. 빌라도의 만행을 전한 사람들이나 실로암 망대의 압사를 보는 사람들의 전제는 그들의 죽음이 죄 때문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그러나 주님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합니다.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은 죽은 그들과 달리 죄가 적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주님은 결코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은 두 번이나 반복하시며 ‘회개’를 말씀하십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다 죽는다는 겁니다. 갈릴리 사람이나 망대가 무너져 죽은 사람이나 지진으로 죽은 아이티 사람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렇게 죽은 겁니까? 우리는 그들에 비해 회개했기에 아직 살아있는 겁니까? 아닙니다. 아이티가 100% 기독교 신자인데도 100% 부두교 신자여서 하나님이 심판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재난을 보며 오늘 우리들의 자세가 어떠해야 할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경거망동하지 말고 오히려 숙연한 마음으로 자신을 성찰하며 회개하라는 겁니다.
그들의 재난이 죄 때문이 아니라면 왜 그들은 재난을 당했습니까?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역사의 그 어떤 사건도 우연처럼 보이지만 우연을 가장한 필연입니다. 다 하나님의 섭리요 뜻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모르기에 우연으로 치부할 뿐입니다. 창세기 45장 3절이하를 보겠습니다. “[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세상에서 요셉이 당한 배신과 아픔보다 더 큰 비애나 불행이 또 있을까요? 어떻게 형들이 공모해서 어린 동생을 죽이려고 구덩이에 밀어 넣고, 거기서 끄집어 내 돈을 받고 노예로 팝니까? 애굽에 팔려간 요셉이 얼마나 모진 고생에 억울한 옥살이를 했습니까? 시편 105편에서 그 때 당한 요셉의 고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18). 그런데 요셉은 형들을 원망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고 애굽에서 형들과 마주칩니다. 형들은 양식을 얻으려고 온 약자요, 요셉은 국무총리로 형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요셉은 형들에게 창세기 45장 3절 이하의 대목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당신들 앞서 나를 애굽에 보내셨다고 합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비극마저도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로 해석했습니다. 이게 맞는 겁니다. 그 어떤 아픔도 상처도 배신도 고통도 무고한 옥살이도 끔찍한 자연재해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 아닌 게 없습니다. 너무 잔인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죄 값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이런 자세가 우리는 필요합니다. 날아가는 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하물며 우리의 운명은 어떠할 것이며, 한 민족의 운명은 어떠하겠습니까? 현재는 수수께끼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다 납득이 될 것입니다. 아이티를 위해 기도하십시다. 힘껏 그들을 도웁시다. 동시에 자신을 살피며 회개하며 자중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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