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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7n: 브리스길라와 루디아(롬 16:3-5) 여전도회 헌신예배

2010년 1월 17일 주일오후예배/여전도회 헌신예배
본문: 롬 16:3-5
제목: 브리스길라와 루디아

[3]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5]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


우리교회는 여전도회 헌신예배를 1년 2번 드립니다. 오늘은 브리스길라에 대해, 후반기 헌신예배 때는 루디아에 대해 상고하고자 합니다. 왜 우리교회가 여전도회 이름을 브리스길라와 루디아로 택했을까요? 브리스길라는 브리스길라를 모델로, 루디아는 루디아를 모델로 삼겠다는 의지가 전제된 듯합니다. 브리스길라는 ‘브리스가’라고도 합니다. 같은 이름입니다. 3절을 보면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라고 합니다. 어떤 동역자였을까요?

우선 브리스길라는 자기 남편과 함께 동역했습니다. 남편은 아굴라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아굴라가 나옵니다. 이 부부를 두고 바울은 나의 동역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항상 브리스길라가 먼저 거명됩니다. 두서너 번은 아굴라가 먼저 나오기도 합니다. 이것은 무엇 뜻할까요? 아굴라보다 브리스길라가 좀 더 열심을 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항상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함께 거명합니다. 부인이 좀 더 열심을 냈어도 남편과 함께 동역했다는 뜻입니다. 이 얼마나 복되고 아름답습니까? 만일 브리스길라가 혼자서 바울과 동역하고 교회에 헌신했다면 지금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브리스길라가 될 수 있었을까요? 우리 여전도회가 브리스길라를 모범으로 삼을 수 있었을까요? 마찬가지로 아굴라가 혼자 헌신했다면 지금 우리가 그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었을까요? 부부가 나란히 헌신하고 동역했기에 이토록 아름다운 부부로 소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부지간이어도 신앙만큼은 어쩌지 못합니다. 아내가 신앙 좋다고 남편까지 신앙 좋으란 법 없습니다. 남편은 교회 일도 열심히 하고 싶은데 아내가 협조하지 않아 못 하는 사람 있습니다. 아내는 교회에 열심을 내고 싶은데 남편이 협조 안 해서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얼마나 아름답고 귀감이 될 만합니까? 우리 여전도회가 원조 여전도회의 이름으로 삼을 만합니다. 여러분의 가정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처럼 부부가 함께 이름이 거명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브리스길라 여전도회 회원 자격이 있습니다.

브리스길라 부부는 복음에 헌신했습니다. 이들의 헌신이 여러 가지로 돋보입니다만, 복음에 대한 헌신이 특히 아름다웠습니다. 이들 부부 얘기는 사도행전 18장에 많이 나옵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어느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아볼로의 설교를 에베소에서 듣게 됩니다. 역시 그의 설교는 성경적이고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볼로의 설교를 듣고 중요한 것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복음적인 요소가 결여되었다는 것입니다. 율법적으로는 훌륭한데 복음적 요소의 결핍을 딱 발견한 겁니다. 이것은 이들 부부의 성경지식과 복음에 대한 수준을 말합니다. 이 부부는 어떤 설교를 듣든 아멘 할렐루야 하는 맹목적인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성경에 정통했으나 그들은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온유하고도 은밀하게 이 부부는 아굴라를 만납니다.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26). 대단한 설교가인 아볼로를 불러 복음을 정확하게 풀어주었다는 겁니다. 그랬더니 아볼로가 더욱 온전한 설교가로 활동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 부부는 목회자도 설교자도 아니었지만 복음에 능했습니다.

그러면 이들 부부는 언제 이런 말씀 훈련을 받고 복음으로 무장할 수 있었을까요? 사도행전 18장 11절입니다.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1년 6개월을 머물며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칠 때 이 부부가 거기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그들 부부의 말씀 기반이 되었습니다. 여전도회의 정체성이 무엇입니까? 결국 말씀에 봉사하고 복음에 헌신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여전도회 아닙니까? 여전도회는 복음 전파에 희생해야 합니다. 만일 여전도회가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제쳐두고 다른 일에 열심히면 본말이 전도된 겁니다. 기본적으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처럼 말씀에 헌신하고 복음에 봉사해야 합니다. 올해는 좀 더 양 여전도회가 이름 그대로 복음에 봉사하는 아름답고 멋진 여전도회 되시길 바랍니다.

브리스길라 부부는 교회와 목회자를 위한 동역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8장 18절이하입니다. 고린도에 머물던 바울이 떠나는 장면입니다.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고린도를 떠날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한 겁니다.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에 가서 전도를 하겠다고 하니까 이들 부부도 바울과 함께 가겠다며 나선 것입니다. 사실 대단한 결단이 아닐 수 없으며 헌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헌신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다시 에베소를 떠나 로마로 갑니다. 고린도전서 16장 19절을 보면 바울이 로마에서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쓰며 이렇게 인사합니다.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그들 부부의 로마 집이 교회가 된 겁니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정도지만 내 집을 공개하기를 힘들어 합니다. 그러나 그들 부부는 그들의 집을 내 놓았습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히니까 에베소에 있다가 로마까지 따라가 자기 집을 아예 교회로 삼고 바울의 옥바라지를 합니다. 브리스길라의 이름을 우리는 절대 욕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로마서 16장 4절입니다.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그들은 이런 헌신자들이었습니다. 이 부부인들 왜 오순도순 살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자기 집, 자기 목숨까지 다 내놓고 희생했습니다. 모범을 삼을 만합니다. 이들의 목숨을 건 헌신이 헛되지 않아 그토록 잔혹하던 로마의 기독교 박해가 313년에 끝이 납니다(밀라노 칙령). 그리고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됩니다. 바울은 여러 가지로 사역이 힘들고 고독했습니다. 그러나 바울 주위에 이런 부부가 있었기에 끝까지 복음 사역에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만의 희생과 순교로 복음이 세계화된 게 아닙니다. 이런 희생자들, 헌신자들, 동역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우리 여전도회 회원들도 브리스길라처럼 희생하고 헌신하며 동역하고 사역하셔서 주님의 큰 뜻을 이루는 복된 새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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