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25: 아기와 구유(눅 2:8-14) 성탄축하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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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25일 성탄축하예배
본문: 눅 2:8-14
제목: 아기와 구유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메리 크리스마스! 주님의 무한하신 성탄의 영광이 여러분에게 충만하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오늘 제가 소개한 본문은 들에서 양떼를 돌보던 목자들에게 홀연히 천사가 나타나 전한 성탄 소식입니다. 11절 이하입니다.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가 우리에게 표적이라고 합니다. 그 아기가 구주요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뜻하는 증거라는 겁니다. 그 아기가 메시아라는 사실의 물증이라는 겁니다. 그게 바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인 아기라는 겁니다. 하필이면 말구유로 뉘인 분이 바로 메시아라는 것의 증거라는 겁니다. 그러니 빨리 가서 확인하고 경배하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강보에 싸인 아기로 오셨다는 것, 구유에 누이셨다는 것이 어떻게 메시아라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강보에 싸인 아기입니다. 주님이 왜 아기로 오셨을까요? 아기로 오셨다고 해도 비밀리에 계시다가 공생애 들어가기 직전에 30세 되던 해에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유대인 사회에서는 여자나 어린아이는 사람 수에 들지 못했습니다. 성인 남자만 사람 수에 들었습니다. 아담 같은 경우도 성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를테면 하나님이 예수를 아담처럼 보낼 수도 있습니다. 왜 어린 아기로 오신 아기를 천사를 통해 공표하셨을까요? 제대로 메시아 대접 받지 못할 게 뻔한데 말입니다. 실제로 아기 예수께 경배한 사람은 지도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카리스마를 풍기며 성인으로 나타났다면 좀 달랐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왜 굳이 사람 취급 받지 못하는 아기로 오셨을까요?
겸손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시지만, 그 자리를 비우고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겁니다. 주님의 인격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게 겸손입니다. 하나님이신데 가장 비천한 인간의 모습, 어린 아기로 오신 겁니다. 그래서 겸손하지 않으면 결코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경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아기 예수께 경배했습니다. 동방박사도, 안나와 시므온도 다 겸손했기에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메시아께 경배할 수 있었습니다. 교만하면 절대 주님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 헤롯 대왕 보십시오. 교만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대제사장, 서기관들 보십시오. 다 권위주의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들은 다 교만했기에 아기 예수로 오신 메시아를 배척하고 적대했습니다.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겸손한 자만이 주님을 경배할 수 있습니다. 그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어린 아기로 오신 것입니다.
주님이 어린 아기로 오신 것은 우리의 진정한 선구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 인생의 모든 애환을 다 아십니다. 우리와 똑같은 어린 아이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아기 시절도, 청소년 시절도 다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한평생 살아가며 겪는 아픔과 고통, 눈물을 다 아시는 분입니다. 주님이 친히 다 겪으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은 우리의 진정한 선구자이십니다. 하늘에만 계시면서 우리의 사정과 형편을 헤아리시지 않고, 이 땅에 친히 오셔서 우리가 겪는 모든 것을 다 겪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형편과 아픔, 사정을 주님이 가장 잘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면 우리 기도를 주님이 다 접수하십니다. 이해하십니다. 주님은 우리 인생의 희로애락을 친히 몸소 경험하려고 어린 아기로 오셨습니다.
구유에 뉘이셨다는 사실이 주님이 메시아인 물증이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구유는 말죽통입니다. 보통 아기가 태어나면 포근하고 따뜻한 요람에 태어납니다. 주님은 요람 대신에 말죽통에 누이셨습니다. 가장 비참하고 낮은 곳에 누이신 겁니다. 만일 주님이 궁궐이나 대저택에서 탄생했다면 이 세상 절대 다수가 가난하고 비천한 자들인데, 그들이 감히 주님께 범접할 수 있었을까요? 외양간에는 문턱이 없습니다. 누구든 원하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요즘 보면 교회도 돈이 있어야 나갈 수 있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에도 돈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제도화된 교회에서는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헌금 강요를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잘못된 사례이고, 원래는 돈 없어도 믿을 수 있는 게 예수입니다. 돈 없는 사람도 믿을 수 있음을 알리기 위해 궁궐이 아니라 구유로 오신 것입니다. 겸손하기만 하면 가난하다는 이유 때문에 주님을 못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이 마굿간, 가장 낮고 비천한 자리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문턱없는 마굿간에 와서 구유에 누이신 예수께 경배할 수 있습니다. 교만해서 주님을 못 뵈는 분은 있습니다만 가난해서, 신분이 천해서, 못 배워서 성탄하신 주님께 경배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말죽통을 요람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 원하면 주님을 뵙고 영접할 수 있습니다. 올해도 성탄하신 주님을 품에 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만한 자들은 너무 마굿간이 천해서 주님을 뵙지 못합니다.
주님이 구유로 오신 또 하나의 이유는 이런 겁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우연은 없습니다. 모든 게 필연입니다. 그렇다면 구유로 오신 필연은 어떤 것일까요? 세례 요한이 주님을 처음 뵙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주님은 처음부터 세상 죄를 지고 가시기 위해 희생양으로 성탄하셨습니다. 대속의 제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린 양이 태어나는 곳은 어디입니까? 외양간입니다. 어린양이 궁궐이나 대저택에서 태어나겠습니까? 외양간이 맞습니다. 대속의 양, 희생의 양으로 오신 주님이 태어나실 곳은 외양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성탄에서 주님의 최후를 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성탄은 주님의 십자가 죽음을 이미 계시하고 있습니다. 결국 십자가를 지고 너희를 위해 대신 죽을 대속의 양으로 왔노라는 것을 계시하려고 외양간으로 오신 겁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말구유에 누이신 것은 주님 존재의 비밀을 계시한 사건입니다.
오늘 주님의 거룩하신 성탄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대속의 은혜와 사랑을 함께 느끼고 감사하는 복된 성도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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