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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091220m: 시므온과 안나(눅 2:25-38) 대강절 넷째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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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2009년 12월 20일 주일낮예배/대강절 넷째 주일<br>
본문: 눅 2:25-38<br>
제목: 시므온과 안나</p>
<!-- paragraph:p0002 -->
<p>[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33]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34]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p>
<!-- paragraph:p0003 -->
<p><br>
금주 금요일이 성탄절입니다. 성탄을 맞을 채비가 되셨습니까? 성탄절은 어떤 절기입니까?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이 땅에 성탄하신 주님을 회고하며 기념하는 날입니까? 아닙니다. 올해도 새롭게 성탄하실 주님을 새로운 감격으로 만나는 절기입니다. 올해도 다시 한 번 나를 찾아오실 주님을 실존적으로 체험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면 성탄을 어떻게 회고적인 사건이 아니라 현재적이고 실존적인 사건으로 경험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오늘의 주제입니다. </p>
<!-- paragraph:p0004 -->
<p>제가 소개한 본문을 보면 2000년 전 첫 성탄 때 가장 감격적으로 주님을 뵌 두 사람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시므온과 안나입니다. 사실 이들은 하나님이 연출하신 성탄이라는 드라마의 큰 배역을 맡은 이들은 아니었습니다. 이를테면 마리아와 요셉은 주연급이고, 목자들이나 동방박사들은 조연급이라면, 시므온과 안나는 단역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의 주님을 만난 기쁨과 행복은 그 누구보다 크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복되게 성탄을 맞을 수 있었을까요? </p>
<!-- paragraph:p0005 -->
<p>우선 이 두 사람은 무서운 집념으로 주님의 성탄을 기다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정말 주님의 성탄을 대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시므온을 보겠습니다. 25절입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다는 얘기는 메시아를 기다렸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성탄을 기다린 겁니다. 이어지는 26절 상반절입니다.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그는 죽음 마저도 보류한채 주님의 성탄을 기다렸습니다. 이산가족 가운데는 고향가기 전에 못 죽는다고 하시는 분들 많이 있습니다. 또 가출한 자식을 둔 부모는 내 아들 돌아오기 전에는 못 죽는다던 분들도 계셨습니다. 이처럼 시므온도 내 눈으로 주님을 뵙고 죽겠다고 버틴 겁니다. 그가 드디어 주님을 품에 안았습니다. 29절을 보니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이제 죽어도 좋다는 말입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입니까? 주님을 뵙기 전에는 죽을 수 없다며 주의 성탄을 대망하다가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서야 비로소 여한이 없으니 평안히 데려가 달라고 합니다. </p>
<!-- paragraph:p0006 -->
<p>안나라는 여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이 안나보다 불쌍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결혼한 지 7년 만에 남편과 사별하고, 84세가 되도록 홀로 외로이 살면서 오직 성탄을 고대했습니다. 안나도 시므온처럼 집념의 여인이었습니다. 얼마나 모질고 무서운 기다림입니까. 죽음마저도 참고 기다리는 성탄입니다. </p>
<!-- paragraph:p0007 -->
<p>여러분, 주님은 절대 이런 기대와 바람을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첫 성탄 때 시므온과 안나가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기뻐했던 것처럼 올해도 기대하는 자에게 반드시 그 기대에 부응하십니다. 주님은 안 기다리는 자에게는 절대 안 오십니다. 그래서 우연히 주님을 뵈는 사람, 실수로 주님과 만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반드시 기다리는 자, 채비된 자에게 주님은 오십니다. 주님은 올해도 반드시 새롭게 오시지만 기다리는 자만 주님의 성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굳게 닫은 사람은 주님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 요행으로 주님을 뵐 생각마시고 준비하며 기다리십시오. 반드시 새로운 감격으로 뵐 수 있을 것입니다. 2000년 전에도 그랬습니다. 많은 사람이 있었으나 시므온과 안나가 성탄하신 주님을 품에 안았습니다.</p>
<!-- paragraph:p0008 -->
<p>이 두 사람은 늘 성전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27절 이하입니다.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시므온과 안나는 첫 성탄 때 성전에서 성탄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자기 집 안방이 아니었습니다. 캐롤이 울려퍼지는 길거리가 아닙니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온갖 것으로 장식된 백화점이 아닙니다. 성전입니다. 37절입니다.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안나도 성전에서 주님을 만난 겁니다. 우리도 이들처럼 성전을 내 삶의 구심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야 올해도 주님을 뵙습니다.</p>
<!-- paragraph:p0009 -->
<p>이스라엘 사람들의 성전에 대한 집착, 회교도들의 메카에 대한 열정을 절대 맹목적이라고 치부하지 마십시오.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성전과 경건, 성전과 신앙과의 깊은 함수관계 때문에 그렇습니다. 요즘은 어떻게든 교회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안전거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의적으로 성전을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해도 깔끔하게 하려고 합니다. 지금 나와 성전의 거리는 지금 주님과 나와의 거리입니다. 더도 덜도 아닙니다. 나와 교회와의 관계는 나와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어떻습니까? 아닙니까?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내 믿음만큼만 교회생활하고, 내 경건만큼만 교회와 관계를 맺습니다. 그래서 교회생활의 지수와 신앙의 지수는 정비례합니다. 교회에 대한 관심, 애정, 참여 이 모든 게 내 신앙의 정도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뭐래도 교회에는 기도와 예배와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중심으로 살면 내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할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상처도 받지만 믿음도 자랍니다. 이게 싫어서 교회와 거리를 두면 10년 20년을 믿어도 딱 그 수준에서 성장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을 중심으로 삽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교회가 내 삶의 구심이어야 합니다. 여러분, 첫 성탄 때 늘 성전에서 살며 기도하고 금식하던 시므온과 안나가 그 성전에서 성탄하신 주님을 큰 감격으로 뵙고 품에 안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올해도 교회에서 성탄하신 주님을 뵙기를 바랍니다.</p>
<!-- paragraph:p0010 -->
<p>시므온과 안나는 성령의 감동 속에서 살았습니다. 사실 이 때는 오순절 성령강림 이전입니다. 성령의 본격적인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대도 25절 하반절, 26절 하반절, 27절 상반절을 보니 매 절마다 성령입니다. 일거수일투족이 성령의 계시와 감동과 인도로 이루어집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성령의 계절인 지금 우리도 이렇게 하지 못합니다. 시므온과 안나는 날마다 매 순간 성령의 감동과 계시 속에 살았습니다. </p>
<!-- paragraph:p0011 -->
<p>이 두 사람이 성탄하신 주님을 큰 기쁨으로 만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보십시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 아기 예수를 뵙고 품에 안았습니다. 시력이 좋다고 다 보는 게 아닙니다. 빛이 없으면 눈이 아무리 좋아도 우리는 눈 뜬 장님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조명, 인도하심이 있어야 깨닫습니다.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이 없었던들, 이 두 사람이 갖 태어난 아기가 메시아인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여러 사람이 있었으나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고, 시므온과 안나만 이스라엘이 기다린 메시아가 아기 예수인 줄을 안 겁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떠들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조명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올해도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새로운 감격으로 이 땅에 오신 주님을 품에 안을 수 있습니다. </p>
<!-- paragraph:p0012 -->
<p>이제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은 시므온의 입에서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 32절입니다.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간명한 찬양입니다. 더 이상의 수사가 필요 없습니다. 세상 사람에게는 구원의 빛이고, 구원 얻은 우리에게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주님은 예외 없이 올해도 이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십니다. 우리 믿는 자에게는 한없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오십니다. 꼭 주님을 만나십시오. 빛으로 영광으로 오신 주님을 뵙기를 바랍니다. 시므온과 안나에게서 도전과 영감을 얻으십시오. 시므온과 안나처럼 찬양하게 되십시오.<br>
<br><!-- paragraph:p0013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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