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06n: 메시아가 오시면(사 61:1-3)
읽기 설정
미리보기 인용
복사되는 내용은 인용 정보와 미리보기 주소다.
현재 미리보기 주소:
2009년 12월 6일 주일오후예배
본문: 사 61:1-3
제목: 메시아가 오시면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성탄절을 우리는 매년 맞습니다. 올해도 우리가 꼭 성탄하실 주님을 새로운 감격으로 맞이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메시아가 오시면 마음이 상한 자를 고쳐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어쩔 수 없는가 봅니다. 지금으로부터 이사야의 말씀까지는 2700년 전인데, 그때에도 세상에는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안고 사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메시아가 오시면 제일 먼저 마음 상한 자를 고쳐주십니다. 이사야 1장 5절 이하를 보면 그 시대를 이렇게 말합니다.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온몸과 맘이 만신창이인데도 싸매거나 고침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2000년 전인 주님 시대나 2700년 전인 이사야 시대나 오늘 우리의 모습이나 다 같습니다. 오늘 우리의 실상입니다. 도대체 우리 가운데 마음의 상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겉만 멀쩡하지 속은 다 시커멓게 탔습니다. 화장만 지우면 우리의 아픔이 다 폭로됩니다. 남편, 아내, 목사, 장로, 집사, 교인 때문에 우리는 하루도 상처 없이 사는 날이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시면 그런 자부터 찾아가서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신다고 하니, 이것이야말로 복음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사야 42장 3절입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갈대는 농부가 가장 귀찮아하는 잡풀입니다. 그런데 이게 또 상했습니다. 안 그래도 잡초인데 상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것마저도 싸매며 꺾지 아니하십니다. 하찮은 갈대가 상했으면 그냥 버려도 되는데 그것도 싸매고 고치신다는 겁니다. 아무리 오래된 마음의 지병도 주님이 오시면 깨끗이 낫습니다. 금년 성탄절에는 모든 마음의 상처가 다 고침을 받아 밝게 사시길 기원합니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올해도 우리는 성탄하실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실제 이사야가 이 말씀을 선포할 때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 가서 노예살이 하던 때이고, 그로부터 700년 뒤에 예수님이 오셨을 때는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그러니 이 말씀이 얼마나 희망이 되었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자유인 맞습니다. 과거에는 일본 제국주의에 36년이나 식민생활을 했지만, 지금 우리는 해방된 민족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유인으로 살고 있습니까? 우리 중 과연 몇이나 탐욕으로부터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 중 몇이나 두려움으로부터, 악습으로부터, 옛 삶으로부터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신분은 자유인인데 현실은 아닙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순입니다. 내 의지, 내 노력, 내 힘으로 우리는 자유인으로 살 수 없습니다. 올해도 우리가 새로이 성탄하실 주님을 꼭 만나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만이 자유케 하시고, 주님만이 모든 것으로 해방시키십니다. 요한복음 8장 36절입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주님이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어떤 굴레든 악습이든 내 육신을 결박하는 그 어떤 병마든 주님이 나를 자유하게 하시면 일거에 해방됩니다. 부디 주님 만나십시오. 그래서 꼭 갇힌 자에게 놓여남을 주시는 참 자유를 경험하십시오. 그래서 진정한 해방인으로 살아가십시오.
슬픈 자를 위로하시기 때문입니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인생은 참으로 슬픈 존재입니다. 슬픔이 아니라 기쁨 속에 살고 싶어하나 안 됩니다. 늘 눈물과 한숨입니다. 단 하루도 단 한 순간도 근심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불행은 그렇게 슬픈 존재인데도 인생은 어디에서도 위로받을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로하는 분은 누구입니까? 누가 우리 눈에서 우리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습니까? 남편입니까? 아내입니까? 목사입니까? 동료입니까? 그들이 나를 슬프게 하는 장본인들 아닙니까. 오죽하면 자식이 원수라고 하지 않습니까. 아무도 나의 진정한 위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주님이 오시면 내 모든 슬픔을 위로해 주신다고 합니다. 주님을 만나면 기뻐서 울 수 있습니다. 근심 대신에 찬송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매년 반복되는 성탄절이지만 반드시 만나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기쁨과 행복을 새롭게 체험하시길 기원합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 미디어: 원래 주소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