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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8w: 예레미야 강해 17(렘 6:15-21)

2009년 11월 18일 예레미야 강해 17
본문: 렘 6:15-21

[15]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 하였으며 [17] 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수꾼을 세웠으니 나팔 소리를 들으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도다 [18] 그러므로 너희 나라들아 들으라 무리들아 그들이 당할 일을 알라 [19]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율법을 거절하였음이니라 [20] 시바에서 유향과 먼 곳에서 향품을 내게로 가져옴은 어찌함이냐 나는 그들의 번제를 받지 아니하며 그들의 희생제물을 달게 여기지 않노라 [21]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이 백성 앞에 장애물을 두리니 아버지와 아들들이 함께 거기에 걸려 넘어지며 이웃과 그의 친구가 함께 멸망하리라


왜 하나님은 하필이면 예루살렘 성전을 정조준하여 심판을 말씀하고 계십니까? 예루살렘과 그 성전이 죄의 원천이었기 때문입니다. 7절을 보면 샘이 물을 뿜어내듯 모든 죄가 거기로부터 나온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예루살렘의 성직자들이 예레미야를 대적했습니다. 세 번째는 그들이 끝까지 탐욕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상황이 위급한데 날마다 평안 타령만 했다는 겁니다. 14절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다를 치시되 예루살렘을 치시고, 예루살렘을 치시되 특히 예루살렘 성전을 치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그들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음에도 당시 예루살렘의 베냐민 족속과 제사장들은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15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들의 얼굴은 쇠가죽보다 더 두꺼웠습니다. 본래 부끄러운 일을 하다가 들키면 부끄러워해야 하는데, 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온갖 탈취와 폭력과 살상이 예루살렘 성전에서부터 나왔는데 그들은 일명 배째라고 한 겁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은 희망이 없었습니다. 완전히 화인 맞은 양심이 된 것입니다.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그야말로 구제불능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5절 하반절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은 또한 하나님만 의지하던 선한 길을 더는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1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그러자 그들은 이렇게 답합니다.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 하였으며”(16b).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 옛적 길, 선한 길은 어떤 길입니까? 예레미야 2장 2절입니다.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 옛적 길, 선한 길이란 신혼 때, 청년의 때에 걸었던 길 곧 광야시절을 가리킵니다. 사실 광야생활도 많이 비틀비틀했습니다. 뒤도 돌아보고 주저앉기도 했습니다만,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 기간을 밀월의 시기로 기억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이 초심을 갖고 오로지 하나님만을 위해 걸었던 길이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기둥, 불기둥만 따라 걸었습니다. 이것이 광야 길이고 선한 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유다 백성을 향해 다시 이 길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들은 안 가겠다고 합니다. 이런 반항도 없습니다. 옛날에는 순진해서 하나님만 따랐는데 이제 더는 그렇게 안 살고, 우상도 좀 섬기겠다는 겁니다.

그들은 또한 파수꾼의 나팔소리를 안 듣겠다고 했습니다. 17절입니다. “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수꾼을 세웠으니 나팔 소리를 들으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도다.” 파수꾼은 높은 망대에서 적이 나타나면 나팔을 불어 성 안의 사람들이 그에 대처하게 하는 사명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파수꾼을 망루 높이 세웠는데 그들은 그 나팔소리를 안 듣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유다 백성을 위해 세운 파수꾼은 예레미야입니다. 예레미야가 지금 전방에 나타난 바벨론 군대를 보고 나팔을 불어대는데도 그들은 그 소리를 안 듣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파수꾼의 나팔, 보초병의 경고를 안 들으면 그 성 안의 사람들은 다 죽습니다. 바벨론 군대가 코앞에까지 닥쳐서 죽도록 비상 나팔을 부는데도 안 듣겠다고 하니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습니까.

그런데 그들이 제사에는 열심이었습니다. 그 제사의식을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하였습니다. 20절입니다. “시바에서 유향과 먼 곳에서 향품을 내게로 가져옴은 어찌함이냐 나는 그들의 번제를 받지 아니하며 그들의 희생제물을 달게 여기지 않노라.” “어찌함이냐?” 하나님도 이해 못하겠다는 겁니다. 그렇게 반항하는 너희가 어떻게 예배는 이렇게 고급스럽게 드리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도 이해 못 하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유다 백성이 수입산 명품 유향으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못 받겠다고 하십니다. 사무엘이 사울 왕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번제 이전에 복종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19절 하반절을 보면,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율법을 거절하였음이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안 듣고 제사만 수입 명품으로 차리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할 때 번제도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저버리고 의식에만 집착합니다. 이 대목은 우리 한국교회도 꼭 귀담아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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