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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2008년 2월 24일 사순절 셋째주일 낮예배<br>본문: 갈 6:14<br>제목: 십자가의 비밀</p>
<!-- paragraph:p0002 -->
<p>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p>
<!-- paragraph:p0003 -->
<p>주님은 유대인이십니다. 유대인으로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유대인들은 주님을 안 믿습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99% 이상이 다 이방인입니다. 2006년말 현재 세계 인구가 약 59억입니다. 그 중에 기독교인 숫자가 신구교 합쳐서 21억입니다. 21억 기독교인의 99% 이상이 이방인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주님 말고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올 리가 없습니다. 주님이 메시아이기 때문입니다. </p>
<!-- paragraph:p0004 -->
<p>성경을 보면 살인 강도였던 바라바를 원할지언정 주님을 원치 않았습니다. 빌라도가 법정에서 손을 씻으며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해 무죄하니 너희가 다 당하라’고 하자, 유대인들이 ‘그 핏값을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 요구대로 십자가에 달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이 초토화됩니다. 그로부터 2000년 동안 전 세계를 떠돌며 천덕꾸러기 노릇을 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400만이 좀 넘습니다. 십자군 전쟁 때도 많이 죽었지만, 히틀러에게 600만이 죽었습니다. 저의 큰 아이가 태어난 뮌헨 근교 다카우 라는 곳에 가스실이 있습니다. 거기서도 많이 죽었습니다. 폴란드에 있는 아우슈비츠에서도 많이 죽었습니다. 가장 처참하게 비참하게 600만이나 죽었습니다. 유럽사람들은 지금도 유대인들을 싫어합니다. 예수님을 죽였기 때문이라는데 이것은 말이 안 됩니다. 하여간 유럽인들의 반 유대정서는 알아줘야 합니다. 뱀하고는 같이 잘 수 있어도 유대인하고는 같이 못 잔다는 것입니다. 유럽인들의 이런 반 유대인정서를 이용해 히틀러가 유대인 대학살을 한 것입니다. 절대로 홀로코스트는 히틀러만의 책임이 아니라 유럽인 전체의 문제입니다. 유대인이 이렇게 많이 학살당한 이유는 이것도 하나의 신비인데 주님의 핏값을 철저하게 지불한 것입니다. </p>
<!-- paragraph:p0005 -->
<p>그렇다면 왜 유대인들은 마치 유럽인들이 유대인을 싫어하듯이 주님을 그토록 미워했을까요? 메시아관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구원관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메시아를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그들이 기다린 메시아는 죄인은 벌하고 의인은 구원하는 메시아입니다. 이것이 전통적인 유대인들의 메시아관이요 구원관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말씀하신 구원은 의인이 아니라 다 죄인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구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이 말에 유대인들이 다 기절한 것입니다. 죄인은 벌하고 의인은 상을 줘야 하는데 어떻게 죄인은 용서하고 의인을 고발할 수 있습니까? 주님은 이렇게 하셨습니다. 끝까지 죄인만 상대하셨습니다. 창녀, 세리, 불치병자들, 가난한 자들과 함께 지내셨습니다. 반면에 공식적인 의인이었던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 레위인들을 언제나 비판하시고 ‘회칠한 무덤’,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필사적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한 것입니다.</p>
<!-- paragraph:p0006 -->
<p>그러면 주님의 십자가 사건에서 주범은 누구일까요? 유대인들입니까? 빌라도입니까? 십자가형을 집행한 로마 군인들입니까? 이들은 다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계획대로 주님을 처참하게 십자가에 다셨습니다. 로마서 5장 6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여기에 나오는 ‘기약대로’는 계획대로, 예정대로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예정대로 주님을 십자가에 달아 죽이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하며 소리치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이 자신을 십자가에 달았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을 원망치 않고 하나님께 원망하는 것입니다. </p>
<!-- paragraph:p0007 -->
<p>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33년간 온갖 고난을 당하다가 마지막에 십자가를 진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셨습니다. 얼마나 철저한 계획이었던지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요한복음 19장 28절입니다: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목이 마르다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각본에 따라 목마르다고 하셨다는 겁니다. 19장 30절입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보통은 죽으면 머리가 떨어지는데, 지금 이 장면에서는 주님이 먼저 고개를 숙이시고 그 다음에 죽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죽임을 당하셨다기 보다는 각본대로 죽었다는 겁니다. 주님은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하나님의 계획대로 사셨고 최후에는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나님의 각본대로 살다가 하나님의 각본대로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연출에 그만큼 주님이 최후의 순간까지도 충실하셨다는 겁니다. 죽을 때가 된 것을 아시고 고개를 숙이시고 그 다음에 영혼이 떠난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 53-54절입니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 얼마든지 천군천사를 불러 로마군대를 물리치고 십자가를 안 지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그렇게 하시겠다는 겁니다. </p>
<!-- paragraph:p0008 -->
<p>그러면 왜 하나님은 예수님을 철저하게 버리셨습니까? 이사야 53장 5절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 때문입니다. 6절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우리가 한 게 있다면 미련한 양같이 각기 제 길로 간 것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죄악을 주님께 홀로 지게 하심으로 우리를 살려주신 것입니다. 레위기 1장 1절이하를 보면 희생을 드리는 절차가 나오는데, 그 중에 중요한 것이 나옵니다. 제물 위에 안수를 하는 절차입니다. 이것은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죄를 제물에게 양도한다는 뜻입니다. 나의 모든 허물을 이 양에게 전가한다는 뜻의 안수입니다. 그래서 내 대신 그 양을 잡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 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물인 양이 죽는다는 것은 내가 죽는 것입니다. 정말 애꿎은 양이 내 대신 죽어주는 겁니다. 내가 받을 심판을 양이 대신 받는 겁니다. 내 죄를 지고 갈 양이기에 흠 없고 티 없는 양으로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주님을 처음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처음부터 우리의 모든 죄를 지시고 대신 희생당할 어린양으로 오셨습니다. 대속의 제물로 오셨습니다. 우리를 구하려다가 실패해서 십자가를 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십자가에서 죽으러 오셨습니다. 문선명은 주님이 구원에 실패해서 자기가 대신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 피가름을 받아야 깨끗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처음부터 십자가를 지기 위해,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실 희생양으로 오신 겁니다. </p>
<!-- paragraph:p0009 -->
<p>하나님이 일방적으로 그 일을 계획하시고 연출하신 겁니다. 그래서 구원이란 나의 선택이나 나의 깨우침이나 나의 믿음의 산물이 아니라 100%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중 누구도 40일 금식기도하고, 철야하고, 내 몸을 남을 위해 내어 준 댓가로 구원받을 사람은 없습니다. 믿고 회개하기 보다는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간 것 뿐인데 주님이 예수님께 우리 죄를 다 담당시키시고, 주님이 하나님의 참혹한 저주를 받게 하심으로 우리를 살려주신 겁니다.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구원의 필요를 느낄 가능성은 지렁이가 매니큐어를 생각할만큼 희박합니다. 지렁이는 각질이 없습니다. 지렁이가 매니큐어를 생각할 일이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구원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이 주님을 통해 일방적으로 구원을 당하게 하신 겁니다. </p>
<!-- paragraph:p0010 -->
<p>그렇다면 왜 하필 십자가입니까? 유사이래 사탄이 우리를 위협해온 최대의 무기가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늘 죽음으로 우리를 협박합니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도 꼼짝 못합니다. 따라서 죽음은 반드시 죽음으로 이겨야 합니다. 예를 들면 총을 든 강도가 우리를 위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꼼짝없이 강도가 하라는대로 다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님이 우리 앞에 나타나서 나를 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강도가 총을 쐈는데, 주님이 총을 맞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사흘 만에 다시 산 것입니다. 지금까지 총을 믿고 남의 생명을 약탈하며 살아온 강도인데, 주님이 그 총을 맞고 다시 살아나셨다면 총이 통하지 않는 사탄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달아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부활을 통해 사탄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죽음을 통해 우리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근본적으로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5절에서 바울이 기가막히게 고백했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이제 사망은 더 이상 우리를 위협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신비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필연적으로 십자가를 지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화려한 이력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십자가만을 전하고 알겠다며 다짐하며 맹세하는 것입니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은 과장이 아니라 정직한 자기고백입니다. 십자가 보다 더 소중한 것도 위대한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이런 고백이 우리들의 결단과 서원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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