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11w: 예레미야 강해 16(렘 6: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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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11일 예레미야 강해 16
본문: 렘 6:1-15
[1] 베냐민 자손들아 예루살렘 가운데로부터 피난하라 드고아에서 나팔을 불고 벧학게렘에서 깃발을 들라 재앙과 큰 파멸이 북방에서 엿보아 옴이니라 [2] 아름답고 우아한 시온의 딸을 내가 멸절하리니 [3] 목자들이 그 양 떼를 몰고 와서 주위에 자기 장막을 치고 각기 그 처소에서 먹이리로다 [4] 너희는 그를 칠 준비를 하라 일어나라 우리가 정오에 올라가자 아하 아깝다 날이 기울어 저녁 그늘이 길었구나 [5] 일어나라 우리가 밤에 올라가서 그 요새들을 헐자 하도다 [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나무를 베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목책을 만들라 이는 벌 받을 성이라 그 중에는 오직 포학한 것뿐이니라 [7] 샘이 그 물을 솟구쳐냄 같이 그가 그 악을 드러내니 폭력과 탈취가 거기에서 들리며 질병과 살상이 내 앞에 계속하느니라 [8] 예루살렘아 너는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마음이 너를 싫어하고 너를 황폐하게 하여 주민이 없는 땅으로 만들리라 [9]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포도를 따듯이 그들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말갛게 주우리라 너는 포도 따는 자처럼 네 손을 광주리에 자주자주 놀리라 하시나니 [10]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하지 아니하니 [11]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 그것을 거리에 있는 아이들과 모인 청년들에게 부으리니 남편과 아내와 나이 든 사람과 늙은이가 다 잡히리로다 [12] 내가 그 땅 주민에게 내 손을 펼 것인즉 그들의 집과 밭과 아내가 타인의 소유로 이전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14]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15]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지난주까지 5장을 보았습니다. 남 왕국 유다에 대한 고발과 저주가 이어졌습니다. 6장은 베냐민 자손들과 예루살렘 거민들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물론 예루살렘도 유다 땅입니다. 북 이스라엘의 수도는 사마리아였고, 유다의 수도가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 땅은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베냐민 지파에 속합니다. 6장에는 베냐민 지파 곧 예루살렘을 정조준 하여 하나님이 경고하고 계십니다. 1절을 보면, “예루살렘 가운데로부터 피난하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의 한복판은 성전입니다. 예루살렘은 시온 산에 지어진 성입니다. 그 성 가운데는 성전이 서 있었습니다. 여기서 예루살렘 가운데로부터 피난하라는 말은 달아나라는 말입니다. 보통 큰 재앙이 닥치면 성전으로 피난하라고 했습니다. 시온성이 도피처입니다. 그런데 6장에서는 하나님이 성전에서 드고아로, 벧학게렘으로 도망가라고 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전을 정조준 하여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군대가 유다를 초토화하겠지만 특히 예루살렘 성 거기에서도 성전을 초토화시킬 것이니 지방으로 도망가라는 것입니다. 성전에 숨을 생각하지 말고 드고아로 벧학게렘으로 가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분노가 예루살렘 성전에 집중되어 있는 겁니다. 2절을 보면 “아름답고 우아한 시온의 딸을 내가 멸절하리니”라고 하는데, 시온은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하나님이 유다를 심판하시되 예루살렘 거민인 베냐민 지파와 그 성전에 분노를 쏟으실까요? 그들이 그만큼 하나님 앞에서 멀어지고 타락했다는 뜻입니다. 원래 거룩한 게 썩으면 더 고약합니다. 그 피해도 더 심각해집니다. 예루살렘 성은 거룩한 성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성은 곧 예루살렘 성을 가리킵니다. 그러니 그 중에서도 예루살렘 성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지성소가 있으니 세상에서 제일 성스러운 곳입니다. 그런데 그 성전이 썩으니까 하나님이 견딜 수 없는 겁니다. 주님이 공생애를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이 대목을 보면 예수님의 평소 정서와 맞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온화하고 용서하시는 분인데, 그런 모습과는 정말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채찍을 휘두르고 환전하는 탁자를 다 엎으시고 폭력을 행사하셨습니다. 평소 주님의 정서와는 맞지 않습니다. 얼마나 분노하셨으면 그런 폭력을 행사하셨겠습니까? 왜냐면 거룩한 곳이 썩으면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정화하면서 ‘너희가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전을 향한 경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썩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치명적으로 욕되게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 베냐민 지파를 초토화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번 전쟁에서 예루살렘 성으로 피하면 다 죽는다고 경고하십니다. 결코 도피성이 될 수 없다고 하십니다. 4-5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적국의 바벨론 군대를 진두지휘하셔서 당신의 백성 유다를 패망시킵니다. “[4] 너희는 그를 칠 준비를 하라 일어나라 우리가 정오에 올라가자 아하 아깝다 날이 기울어 저녁 그늘이 길었구나 [5] 일어나라 우리가 밤에 올라가서 그 요새들을 헐자 하도다.” 원래 정오에는 싸우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한시가 급하니 정오에 올라가서라도 다 쓸어버리자고 합니다. 밤에도 올라가자고 합니다. 정오와 밤에 올라와 다 부숴버리자는 것은 하나님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는 뜻입니다. 예루살렘 공격 시점을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어떻게 공격할 것인지에 대한 전술까지도 말씀하십니다. 6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나무를 베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목책을 만들라 이는 벌 받을 성이라 그 중에는 오직 포학한 것뿐이니라.” 목책이라는 말은 개역 판에서는 흉벽이라고 했습니다. 원어의 의미에는 흉벽이 더 맞습니다. 목책은 나무 울타리라는 뜻인데, 본래는 예루살렘 성벽을 대항해서 나무로 벽을 만들어서 싸우라는 것입니다. 나무로 높은 벽을 만들어서 예루살렘 성을 공격하라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하나님은 예루살렘은 이런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지적하신 예루살렘 성과 그 한 가운데에 있는 성전의 죄가 무엇인지 보겠습니다. 첫째, 예루살렘과 성전은 죄의 근원이었다고 합니다. 7절입니다. “샘이 그 물을 솟구쳐냄 같이 그가 그 악을 드러내니 폭력과 탈취가 거기에서 들리며 질병과 살상이 내 앞에 계속하느니라.” 예루살렘과 그 성전이 죄의 원천이라는 것입니다. 폭력, 탈취, 질병 그리고 살상이 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예루살렘을 정조준 하지 않게 생겼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을 소탕하시면서 강도의 소굴이라고 한 것과 똑같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8절입니다. “예루살렘아 너는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마음이 너를 싫어하고 너를 황폐하게 하여 주민이 없는 땅으로 만들리라.” 죄를 지으면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훈계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눈이 멀어지는 겁니다. 말씀을 봐도 말씀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면 괜찮습니다. 그나마 희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죄를 지으면 눈과 귀가 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접수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가 피를 토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도 그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10-11절입니다. “[10]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하지 아니하니 [11]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 그것을 거리에 있는 아이들과 모인 청년들에게 부으리니 남편과 아내와 나이 든 사람과 늙은이가 다 잡히리로다.” 귀가 할례를 받지 못했다고 하십니다. 선지자를 통해 아무리 외쳐도 듣지 못한다는 겁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은 자신들에게 하는 욕으로 들었습니다. 욕이라 생각하는데 그 말씀을 제대로 들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그토록 모질게 박해했던 겁니다. 예레미야 시절에 예루살렘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분노가 머리끝까지 가득했습니다. 셋째, 그들은 끝까지 탐욕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13절입니다.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말단에서 고위직까지, 제사장에서 선지자까지 다 탐욕에 사로잡혔다는 겁니다. 돈만 밝혔다는 겁니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인데 누구도 종말 의식은 없었습니다. 14절입니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대수술이 필요한 환자인데 고약을 발라주며, 파스 발라주며 괜찮다고 하는 꼴입니다. 그러면서 오로지 돈에만 눈이 멀었습니다. 정치가든, 성직자든 다 돈에 눈이 멀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심판의 칼이 예루살렘과 그 성전을 정조준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게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당시 예루살렘과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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