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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www.youtube.com/embed/MSGqrfemTQ8" title="미디어 원본"></a></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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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30505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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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눅 23:27-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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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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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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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라틴말로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는 슬픔의 길, 탄식의 길, 주님의 골고다의 길을 가리킵니다. 주님이 탄식의 길을 오르고 계신데, 거기에는 수많은 구경꾼들이 따랐고 평소에 주님 가까이에서 섬기던 여인들이 슬피 울며 주님 뒤를 따랐습니다. 그런데 28절을 보면, 힘들게 골고다의 길을 오르던 주님이 여인들에게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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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이것은 너희 자녀를 위해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부모의 자식 사랑 가운데 최고봉은 당연히 기도입니다. 기도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주님도 모르고 기독교도 몰랐던 우리 선조들도 새벽마다 기도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언제나 기도로 표현되었습니다.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자식은 부모의 기도 없이 자란 아이들입니다. 자녀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신다면,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주님을 위해 울지 마시고, 주님을 위해 가슴 치지 마시고, 여러분의 자녀들을 위해 우십시오. 더는 사랑을 돈으로 떼우지 마십시오. 기도로 실천하십시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라는 말씀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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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어거스틴은 주후 354년 11월 13일 생입니다. 북아프리카 타가스테, 요즘은 알제리 땅인데 거기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친은 이교도였습니다. 모친 모니카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모니카는 23세에 어거스틴을 낳아 기도로 키웠습니다. 어거스틴은 이미 소년시절부터 어머니의 그 간절한 기도를 무색하게 했습니다. 12살 때 고향을 떠나 아프리카 최대 항고도시였던 카르타고에서 유학을 했는데, 이때부터 방탕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여자와 동거를 했고, 18세 때는 아들까지 낳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종교인 기독교가 아니라 이교인 마니교에 빠졌습니다. 그러니 어머니의 상심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고향 타가스테 교회에 모니카는 날마다 울며 기도했습니다. 그 교회 목회자가 모니카가 안쓰럽게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녀를 불러 ‘눈물로 키운 자식은 절대 망하는 법이 없으니 실망치 말고 기도하라’고 격려했는데, 이 말이 모니카에게 무한한 격려가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이 말은 모니카의 평생 좌우명이 됩니다. 한편 어거스틴은 공부를 마치고 로마로 건너갑니다. 거기에서 그는 수사학 교수가 되고, 밀라노 시 대변인이 되고, 마니교도로서 점성술과 신플라톤주의 철학의 대가로 이름을 날리며 출세가도를 달립니다. 그러나 결국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의 기도가 이깁니다. 386년 당시 나이 32세 때 어느날 어거스틴이 집 정원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주님의 생생한 음성을 듣습니다. 톨레 레게 톨레 레게(tolle lege tolle lege), 즉 집어서 읽으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급히 들고 펴 읽었는데, 로마서 13장 13-14절 말씀이었습니다.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어거스틴은 사흘간이나 식음을 전폐하고 회개하여 새롭게 태어납니다. 어거스틴은 2000년 교회사에서 바울 이후 최고의 사상가입니다. 현재 기독교 교리는 바울과 어거스틴으로 이어집니다. 기본적인 틀은 거의 어거스틴이 만들었습니다. 어거스틴은 모니카의 눈물 기도의 작품입니다. 희대의 탕자를 희대의 성자로 만들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여러 책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어린이 주일에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는 주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깁시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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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그러면 구체적으로 자녀들의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우선 자녀들의 믿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들을 위해 가장 많이 기도해야 할 것은 공부, 진학, 취업, 결혼, 출세가 아닙니다. 믿음입니다. 왜냐면 믿음이 그들의 행복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영원한 운명을 믿음이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의 신앙은 그 책임이 교회에 있지 않습니다. 부모에게 있습니다. 부모가 자기 자녀의 믿음을 책임져야 합니다. 더욱 자녀들의 신앙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욥은 큰 잔치를 치르고 나면 언제나 자녀를 위해 별도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혹 그 축제 때 자녀들이 범죄하지 않았을까 하여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반면에 엘리 제사장은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를 어떻게 길렀습니까? 두 아들이 성전 헌물을 가로채고, 여인들과 부정한 일을 저질렀는데 가만히 놔두니까, 두 아들도 전장에서 죽고, 자신은 그 두 아들의 비보를 듣고 놀라 뒤로 넘어졌는데 죽습니다. 유명한 목사, 명망 있는 장로들의 자녀일수록 잘못될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가 교회와 집에서의 모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신앙생활이 이중적이면 자녀들은 신앙을 비웃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에게 신앙을 몸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도 공경하지 않는 자녀가 어떻게 부모를 공경하겠으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녀가 어떻게 부모의 말을 거역하지 않겠습니까? 교회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평생 뿌리내리지 못하고 객으로 사는 모습만 보여주었기에 자녀들도 믿음의 정함이 없는 겁니다. 수잔나는 자식이 19남매였습니다. 그녀는 철저히 자녀를 믿음으로 키웠습니다. 가난한 살림에 집은 좁고 기도할 곳도 없어, 식탁에 앉아 앞치마만 뒤집어쓰고 기도했습니다. 집안을 난장판으로 놀다가도 엄마가 치마만 뒤집어쓰면 자녀들은 엄마가 기도하는 줄 알았습니다. 찬송 작사가 챨스 웨슬레, 감리교를 창시한 요한 웨슬레 등이 모두 수잔나의 자녀들입니다. 자녀 모두가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주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의 자녀를 위해 우십시오. 자녀들의 믿음에 더 많은 책임과 관심을 두십시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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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다음은 자녀들의 장래를 위해 울라는 것이 주님의 당부입니다. 자녀들이 잘 되기를 바라시면 기도하십시오. 그래야 자녀들의 미래가 아름다워집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49세를 일기로 평양감옥에서 순교하셨습니다. 주 목사님의 옥바라지를 맡은 분이 있습니다. 주 목사님의 사후 일본 순사들의 온갖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장례식도 치르고, 주 목사님의 유가족을 끝까지 돌본 분이 유계준 장로님입니다. 그분은 자녀들을 위한 기도에 헌신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8남매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했습니다. 자녀들의 출세가 아니라 당시 우리나라에 가장 절실했던 교육자, 민족을 위해 봉사하는 의사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별나다는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그 유 장로님의 별난 기도가 어떻게 응답되었습니까? 장남 유기천 전 서울대 총장, 둘째 유기원 서울복음병원장, 셋째는 유기형 부산대 의대 학장, 유기선 부산소아과병원장, 유기진 재미 외과의사, 유기옥 소아과 의사, 유기숙 재미 약사, 막내 유기묵 재미 내과의사입니다. 모두 아버지의 기도대로 되었습니다. 이것은 인력이 아닙니다. 유계준 장로님의 교육열이 아닙니다. 이것은 기도응답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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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지금은 우리 부모가 자녀의 장래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기도하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맹목적 애정이나 돈으로 떼우려하지 마시고, 자녀를 위해 기도하십시다. 기도로 자녀를 키웁시다. 주님이 자녀들의 장래를 책임지셔야 그들의 생애가 복 됩니다.</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