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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8m: 이제, 안심하고 죄짓자!?(롬 6:15-23)

2009년 11월 8일 주일낮예배
본문: 롬 6:15-23
제목: 이제, 안심하고 죄짓자!?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바울은 주후 34년에 회심했다고 합니다. 주님이 세상을 떠나시고 1-2년 후쯤에 회심했습니다.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커스로 가다가 길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환상으로 뵙고 극적으로 회심합니다. 그리고 나서 로마서를 쓴 게 57년입니다. 3차 전도여행 때 고린도에서 3년 내지 3년 반을 머물렀는데, 그때 썼습니다. 그런데 로마서에서 바울은 죄 때문에 고통을 받습니다. 예수 믿은 지 20년이 더 되고 사도로 복음을 전하면서 다닌 지 오래되었는데도 바울은 죄 때문에 분열과 갈등을 겪습니다. 어떻게 천하의 바울도 그럴 수 있을까요?

우리는 로마서 6장을 읽었습니다만, 7장 21-25절입니다.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이 얼마나 처절합니까? 우리와 바울이 똑 같습니다. 내 속에 두 마음이 있다는 겁니다. 하나는 어떻게든 하나님의 법을 좇아서 착하게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또 한편으로는 자꾸만 죄를 짓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늘 두 의지가 싸우니까 얼마나 곤고하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며 신음합니다. 결국 바울은 이런 분열에서 해방됩니다. 어떻게요? 8장 1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정죄함이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2절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예수 믿고 사도된 지 20년이 넘도록 깨닫지 못했던 진리를 로마서 8장에서 깨닫습니다. 예수 믿어도 여전히 악을 좇아가려고 합니다. 예수 믿는다고 다 성자되고 천사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괴로워했는데 놀라운 사실을 깨달은 겁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성경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만, 가장 중요한 게 로마서 8장입니다. 성경을 읽어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면 로마서를 읽어야 하고, 그 시간도 없으면 8장을 읽으십시오. 이 로마서 8장을 깨달으면 성경을 보는 눈이 열립니다. 우리가 여전히 죄를 지음에도 죄인으로 단죄 받지 않습니다. 왜냐면 우리를 죄인으로 규정할 법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법이 죄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켰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바울이 로마서 8장에서 깨달아 자유함을 얻습니다. 이것을 교리적으로 칭의(稱義, Rechtfertigung, Justification)라고 합니다. 이 말은 의롭지 않은데도 의롭다고 칭해준다는 뜻입니다. 여전히 우리 속에는 두 마음이 분열을 일으킵니다만, 그럼에도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하시는 겁니다. 여러분, 벼락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칩니다. 그러나 전에는 벼락을 맞았으나 요즘은 피뢰침 아래 있어서 벼락을 안 맞습니다. 내가 여전히 죄를 짓지만 주님의 십자가 밑에 있기 때문에 죄를 받지 않습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피뢰침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위한 저주와 대속의 표입니다.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물으셨기에 두 번 다시 우리의 죄를 묻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내가 죄를 짓지만 십자가 아래에만 있으면 죄를 받지 않습니다. 이것이 칭의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장자의 재앙이 있었습니다. 죽음의 사자가 다닐 때 그 집에 어린양의 피가 있으면 지나갔습니다. 그 집안에 있던 사람이 착하냐 아니냐가 아닙니다. 그 집 문설주에 칠해져있던 피가 있느냐 없느냐가 기준이었습니다. 우리 이마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발려져 있으면 죽음의 사자가 우리를 뛰어 넘습니다. 이것을 바울이 깨달은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죄를 지어도 좋습니까? 정죄함이 없으니 마음 놓고 죄를 지어도 좋으냐는 겁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 우리가 함께 본 로마서 6장은 이게 전체 주제입니다. 예수 믿는 자는 안심하고 타락해도 좋은가? 본문은 그럴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도 심판을 받지는 않습니다. 극단적으로 살인강도짓을 해도 헌법의 단죄를 받긴 해도 하나님의 법에는 정죄 받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그럴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죄에 대해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6장 2절입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죄에 대해 죽었다는 말은 죄와 인연이 끊겼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전에는 죄와 동거했는데 이제는 죄와 이혼해서 법적인 관계가 없다는 겁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재혼해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는데 여전히 죄의 신부 노릇하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우리는 죄와는 완전히 이혼했습니다. 죄의 종이 더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더는 죄의 종의 모습으로 살 수 없습니다. 우리 신분에 걸맞는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비록 정죄를 당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신분이 달라졌기에 우리 신분에 맞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사는 게 옳다는 겁니다.

그리고 성화(聖化)를 위해서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19절 하반절입니다.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거룩함에 이르라고 합니다. 22절입니다.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거룩함에 이르라는 것은 성화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데에 죄는 치명적인 장애가 됩니다. 성화는 주님의 거룩한 모습을 닮아가는 것인데, 이 성화는 우리가 천국에 가서 누릴 영광을 결정하는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절대적 목표는 성화입니다. 구원 받기 위해 성화 되어야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천국 가서 누릴 영광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거룩한 하나님이 계시고, 천군천사가 있고, 성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화 되어야 합니다. 물론 성화 되지 못해도 천국에는 갑니다. 다만 민망하고 부끄러운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가 성화 되어야 하는데 예수를 믿으면서도 자꾸만 죄를 짓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성화를 훼방합니다. 그래서 비록 죄를 지어도 정죄를 받지는 않지만, 성화에 피해가 오기 때문에 죄를 지으면 안 됩니다.

오늘은 성례주일입니다. 성례주일은 예수님의 피와 살을 기리는 주일입니다. 주님의 피와 살은 우리의 죄값으로 치루어진 주님의 희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는 정죄를 당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아야 할 이유는 성화를 위해서 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하는 우리의 신분을 위해서입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깁시다. 예수님의 아름다운 신부답게 사십시다. 천국에 가서 누릴 영화를 위해 거룩하게 사십시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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