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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8n: 할례시냐 무할례시냐?(롬 4:1-12)

2009년 11월 8일 주일오후예배
본문: 롬 4:1-12
제목: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9]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10]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11]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2]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로마서 4장에는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과 구원의 모델입니다. 그가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라는 말은 우리의 영원한 사표가 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우리의 구원의 정체와 내력이 다 밝혀집니다. 오늘 설교제목이 할례시냐 무할례시냐?입니다. 아브라함과 관련해서 구원을 얘기할 때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도 할례시냐 무할례시냐가 나오는데, 결국 무할례시다 라고 나옵니다. 일한 것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김을 받은 복을 가리킵니다. 또한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움을 받는 복도 아브라함이 받은 복입니다(7). 이 복도 무할례시에 받았습니다. 8절에 나오는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않는 복도 무할례시에 받았습니다. 할례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을 때이고, 무할례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모를 때입니다. 그런데 일한 것이 없는데도 아브라함은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가 무할례자로 있을 때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관심사입니다.

아브라함이 처음 부름을 받는 대목은 창세기 11-12장에 나옵니다. 12장 1-2절입니다.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이 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잘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택하고 복을 약속하신 게 아닙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 24장 2절 이하입니다.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3]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창세기에 나오는 소명이 있기 전,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이방신을 섬겼습니다. 당시는 종족 단위였고, 그 단위로 종교가 결정되었습니다. 족장이 섬기는 신이 곧 그 종족의 종교입니다. 그런 시대에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아버지가 섬기던 신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느날 갑자기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강 저편에서 이끌어 내십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구원입니다. 잘 믿고 순종하여 누구보다 모범적이어서 아브라함을 우리 믿음의 사표로 삼은 게 아닙니다. 아버지와 함께 열심히 우상을 섬기던 아브라함을 갑자기 택하고 불러낸 겁니다. 이것이 소명이자 구원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일방적이고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입니다. 내가 율법을 준수해서, 할례를 받아서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아브라함도 우상을 섬기고 있을 때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무할례시를 가리킵니다. 율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지킨 적도 없고, 다만 한 게 있다면 이방신을 섬겼을 뿐인데 느닷없이 하나님이 그를 택하신 겁니다. 우리도 다 이렇게 해서 구원받았습니다. 할례시에 구원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그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자녀로 택함을 받고 구원을 받은 게 아닙니다. 우리가 엉뚱한 신을 섬기고 있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겁니다. 아브라함이 일방적으로 구원을 당한 것처럼 우리도 구원을 당한 겁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 관한 말씀은 15장에 나옵니다. 11-12장과 15장의 시간적 간격은 10년이 넘습니다. 구원받고 소명 받은 후 10년이 지나서야 겨우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신앙고백을 한 것입니다. 창세기 15장 5절 이하입니다.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구원받은 후 한참이 지나서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이 먼저입니다. 믿고 안 믿고의 차이는 고백의 차이도 결단의 차이도, 잘 나고 못 나고의 차이가 아닙니다. 소명을 받고 못 받고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먼저 선택했기에 10년 뒤에 신앙고백이 나온 겁니다. 믿음과 구원의 관계는 다 이렇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10년이나 지난 뒤에 겨우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창세기 17장에 가서 비로소 할례를 받습니다. 22장에 가서는 하나님으로부터 그 믿음의 시험을 받습니다. 15장에 믿음을 고백한 뒤 즉각 시험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시험을 통고하자 하나님은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알겠다고 합니다. 믿음은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75세에 부름을 받아 85세에 신앙고백을 하고, 115세 때에 가서야 하나님의 인정을 받습니다. 제자들이 믿음이 있어서 부름을 받지 않았습니다. 예수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주님이 3년 동안 제자들과 다니시며 안타까워했던 것은 ‘믿음이 적은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예수를 잘 믿어 택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구언이 먼저입니다. 믿음은 한참 뒤입니다. 일단 구원을 받고 나서 갈팡질팡하면서 수년이 지나야 일정 수준에 오릅니다. 마귀는 그렇게 믿어서는 절대 천국에 못 간다고 합니다만 좌절하지 마십시오.

성경은 믿음도 은혜로 봅니다. 은사입니다. 믿음은 말씀을 통해 옵니다. 로마서 10장 17절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들음에서 믿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10장 14절 말씀을 보면,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라고 합니다. 말씀을 많이 듣는 만큼 믿음은 성장합니다. 말씀을 안 들으면 믿음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래서 큰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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