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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1n: 최후의 당부(딤후 2:14-26) 성가대헌신예배

2009년 11월 1일 주일오후예배/성가대헌신예배
본문: 딤후 2:14-26
제목: 최후의 당부

[14] 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 [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16]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17]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18]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19]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23]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24]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26]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


제가 드리는 최후의 당부가 아니고 바울 사도가 최후로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디모데후서는 주후 66년에 쓰인 바울의 최후 서신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죽음이 임박함을 알던 바울로서는 지난 30년간의 선교사역을 마감하고 정리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후계자인 디모데와 그가 목회하던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여러 목회적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참으로 비장하기까지 합니다. 순교를 앞둔 노사도의 간곡한 당부여서 그렇습니다.

우선 바울은 부끄럼이 없는 일꾼이 되라고 합니다. 15절 하반절입니다.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이런 일꾼은 헌신하는 일꾼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를 드리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일꾼이 되겠습니까? 예나 지금이나 일 안 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입으로 떼웁니다. 16-17절입니다. “[16]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17]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헌신하는 자가 교회의 참된 일꾼입니다. 에베소 교회에서 두 사람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명합니다. 이 두 사람은 일은 안 하고 말만 하는 부끄러운 일꾼이었습니다. 바울도 이렇게 에베소 교회 성도들 가운데 누가 제대로 일하는 일꾼이고 또 아닌지를 알고 있는데, 주님도 다 파악하고 계십니다. 주님이 모르실리 없습니다. 여러분, 부끄러움 없는 성실한 일꾼이 되십시오. 오늘 성가대 헌신예배인데 성가대원들에게 주님이 관심이 많습니다. 왜냐면 성가대 찬양이 전체 교회에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 성도가 감동을 받습니다. 그래서 성가대원이 헌신하는 만큼 교인들에게 은혜를 끼칩니다. 그래서 어느 부서보다 성가대원들에게 보다 성실한 헌신이 요구됩니다. 올해도 두 달 남았습니다.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래서 정말 부끄럼 없는 일꾼이 되십시오. 부끄러운 일꾼으로 그 이름이 주님께 기억되는 비극이 없기를 바랍니다.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는데 이들은 입으로 떼운다는 말을 듣지 마십시오. 노사도 바울의 최후의 당부입니다.

귀히 쓰는 그릇이 되라고 합니다. 21절 하반절입니다.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흔히 사람을 그릇으로 비유합니다. 큰 인물은 큰 그릇, 작은 인물은 작은 그릇, 어떤 이는 금 그릇, 은 그릇, 질그릇, 나무그릇에 비유합니다. 내가 어느 그릇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주인에게 요긴하게 쓰임 받는 그릇인가가 중요합니다. 주인이 그릇을 결정합니다. 문제는 어떤 소재의 그릇이든 주인에게 얼마나 필요한 그릇이냐가 중요합니다. 목사냐 장로냐 집사냐 성가대원이냐 교사냐를 따지지 말라는 겁니다. 어떤 그릇으로 쓰임을 받든 주인이 즐겨 쓰실만한 그릇이 되는 게 중요합니다. 훗날 주님이 우리를 심판하실 때도 이것을 심판하십니다. 목사였느냐 장로였느냐 교사였느냐 성가대원이었느냐를 보시지 않습니다. 어떤 직임으로 부르심을 받았든 얼마나 주인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이었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면 주인은 어떤 그릇을 사용하겠습니까? 21절을 보니 누구든지 깨끗하면 된다고 합니다. 주인은 깨끗한 그릇을 씁니다. 아무리 소재가 좋아도 그 그릇에 무엇이 담기어 있거나 더러우면 주인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런 그릇을 22절에서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합니다. 항상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사람들, 신앙생활 한다면서 집중력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폭적으로 주님께 몰입하고 주님을 불러야 합니다. 주님의 심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을 주님이 쓰십니다. 주님 앞에 나오실 때 자기가 어떤 자리에서 어떤 보직으로 부름을 받았든 전폭적으로 하셔야 합니다. 정말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산만한 마음으로 성가대를 할 수는 없습니다. 깨끗이 비우고 가난한 심정으로 교회에 나오셔야 합니다. 비록 금 그릇, 은 그릇이라 해도 무엇이 담기어 있거나 더럽다면 하나님이 쓰시지 않습니다. 깨끗이 비우고 나와서 성가대에 헌신하십시오. 자신을 다 내려놓고 찬양할 때 그 찬양을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바울은 온유한 주의 종이 되라고 합니다. 24절입니다.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앞에서는 일꾼이요 그릇이라 했는데, 여기서는 종이라고 했습니다. 종이란 말은 훨씬 강한 편입니다. 헬라어로 종은 둘로스입니다. 직역하면 노예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주의 종들이며 노예들입니다. 목사 장로만 주의 종 아닙니다. 성가대원도 여러 집사님들 권사님들도 다 주의 종이며 노예들입니다. 노예는 자기 주권이 없습니다. 오직 주인의 의지대로 살아야 합니다. 종은 자기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주인에게 달려있습니다. 신실한 주의 노예로 삽시다. 온유한 주의 노예로 삽시다. 노예가 자기 잘 났다고 떠들 수 없습니다. 주인 앞에서는 쥐 죽은 듯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관대하며 다투지 말라고 합니다. 주인이 모든 사람에게 관대하고 온유하라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게 노예입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징계가 따릅니다. 그래도 안 되면 팔아 치웁니다. 노예는 주인의 재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주님을 주인이라 부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적으로 주님의 종이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인의 명령에 복종해서 온유하게, 관대하게 다투지 말고 삽시다. 이것이 노예의 분수에 맞습니다. 이것이 종의 신분에 어울립니다. 내 존재는 없고 오직 주인만 있는 것입니다.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뜻대로 신실하게 사는 복된 성도 되시고, 성가대원 되시길 기원합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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