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너무 많다!
읽기 설정
미리보기 인용
복사되는 내용은 인용 정보와 미리보기 주소다.
현재 미리보기 주소:
최근 교회를 비판하는 세상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그런 지탄의 일차적인 책임은 분명 교회에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염려해야 하는데 이제는 세상이 교회를 염려하고 탄식하는 지경에까지 왔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환부는 덮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드러내 놓고 함께 고민하며 아픔을 무릅쓰고라도 절개하는 모험을 감행해야 새 살이 돋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한국 교회는 너나할 것 없이 모두 깨어져야 합니다. 대안 없는 비난은 날카로운 도끼와 같아서 자칫 사태를 더 악화시키고 파괴적인 쪽으로 몰아 갈 수 있지만 애정 어린 비판은 망치와도 같아서 일그러진 현실을 바르게 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492년 전 독일 비텐베르크에서 개혁의 봉화를 높이 들었던 마르틴 루터와 같은 인물이 이 땅에도 하루 속히 나타나 한국 교회 정문에 95개조 항의 반박문을 내걸고 개혁을 외칠 그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고대하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전도하기가 어려운 때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몇몇 교회들은 여전히 놀라운 수적 성장을 이룩하여 교계의 찬사를 한 몸에 받으며 많은 목회자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전체 한국 교회의 지표는 매년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 몇몇 교회의 성장이라는 것이 실은 수많은 작은 교회, 열악한 개척 교회 교인들의 수평이동에 불과한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아니, 심하게 얘기하면 다른 경쟁력 약한 교회 교인들을 어떤 식으로든 빼앗아 간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한국 교회가 운운하는 <성장>이란 다 허수요, 허위요, 허세라는 말은 옳습니다. 불신자들을 전도한 것이 아니라 남의 교회 교인들을 빼앗아다 놓고 <성장>으로 포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요상한 것은 교인은 줄고 있는데 교회는 오히려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때 <자고 일어나면 느는 것은 교회와 모텔 뿐이다>는 말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렇습니다. 왜 그럴까요? 목사의 수가 계속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학교의 난립과 함량 미달의 목회자 양산이 빚어낸 필연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수요공급의 원칙을 무시한 목사 과잉생산이 결국은 우후죽순과도 같은 교회 과밀현상을 초래한 것인데, 그렇다면 이게 곧 한국 교회의 발전과 성장을 뜻하는 것일까요?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성장이나 발전은커녕 오히려 분열과 퇴행을 뜻할 뿐입니다. 현재 한국 교회가 260여 개 교단으로 발기발기 찢겨져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또 이런 교회의 분열이 우리 사회의 갈등구조에 적잖은 기여를 해 온 사실도 그저 아는 사람만 알 뿐입니다. 선거철만 되면 으례히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며 지역간, 계층간, 세대간, 노사간 갈등을 조장해 온 단골 주범이 바로 교회였습니다. 교회가 많아지면 당연히 사회도 그만큼 밝아져야 하는데도 교회 많기로 세계에서 첫째가는 이 한국에서 갈수록 교회의 신뢰도가 무너지고 호전적인 안티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우리만의 고유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조지 웨버는 <미국 교회의 진단>이란 책에서 미국 교회의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첫째, 신앙 공동체가 아니라 자선단체로 변질됐고 둘째, 조직이 비대화 되어 생명력을 잃었고 셋째, 기업 경영방식의 도입으로 세속화 되었고 넷째, 목회자들이 다 연예계의 스타나 코미디언으로 전락했다.>
우리 한국 교회도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마땅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