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21w: 예레미야 강해 13(렘 4: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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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21일 예레미야 강해 13
본문: 렘 4:19-31
[19]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이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 [20] 패망에 패망이 연속하여 온 땅이 탈취를 당하니 나의 장막과 휘장은 갑자기 파멸되도다 [21] 내가 저 깃발을 보며 나팔 소리 듣기를 어느 때까지 할꼬 [22]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23] 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 [24] 내가 산들을 본즉 다 진동하며 작은 산들도 요동하며 [25] 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26] 보라 내가 본즉 좋은 땅이 황무지가 되었으며 그 모든 성읍이 여호와의 앞 그의 맹렬한 진노 앞에 무너졌으니 [2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길 이 온 땅이 황폐할 것이나 내가 진멸하지는 아니할 것이며 [28] 이로 말미암아 땅이 슬퍼할 것이며 위의 하늘이 어두울 것이라 내가 이미 말하였으며 작정하였고 후회하지 아니하였은즉 또한 거기서 돌이키지 아니하리라 하셨음이로다 [29] 기병과 활 쏘는 자의 함성으로 말미암아 모든 성읍 사람들이 도망하여 수풀에 들어가고 바위에 기어오르며 각 성읍이 버림을 당하여 거기 사는 사람이 없나니 [30] 멸망을 당한 자여 네가 어떻게 하려느냐 네가 붉은 옷을 입고 금장식으로 단장하고 눈을 그려 꾸밀지라도 네가 화장한 것이 헛된 일이라 연인들이 너를 멸시하여 네 생명을 찾느니라 [31] 내가 소리를 들은즉 여인의 해산하는 소리 같고 초산하는 자의 고통하는 소리 같으니 이는 시온의 딸의 소리라 그가 헐떡이며 그의 손을 펴고 이르기를 내게 화가 있도다 죽이는 자로 말미암아 나의 심령이 피곤하도다 하는도다
지난주에는 곧 닥칠 유다의 멸망을 세 가지로 하신 말씀을 보았습니다. 첫째는 북방에서 큰 재난이 임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소명 받을 때 본 환상과 같습니다. 큰 재난이 북으로부터 남쪽으로 온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수풀에서 굶주린 사자가 나타나 마을을 초토화시키는 것입니다. 마지막은 뜨겁고 강한 회리바람이 와서 땅위의 모든 생물을 멸절시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재난은 유다에 치명적인데 곧 닥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의 긴 탄식입니다. 당시 예레미야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하나님은 심판하겠다며 진노의 수위를 높여가십니다. 아무리 백성 앞에 선포해 봐도 그들은 점점 강퍅해져 갑니다. 그러니 예레미야는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서 죽을 맛입니다. 19절에 나오는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라는 것이 바로 예레미야의 마음입니다. “슬프고 아프다”는 말은 원어로 보면 “내 창자여 내 창자여”라는 뜻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귀에 긴박한 재앙의 신호가 다시 들립니다. 바벨론 군대의 나팔소리가 들리고, 망대 위에서 길게 부는 전쟁 경고음이 들립니다. “나의 심령이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19). 전쟁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는데 예레미야는 온몸으로 이런 소리를 듣고 체험하고 있는 겁니다. 나팔소리는 바벨론 군대의 진격 나팔이고, 전쟁의 경보는 파수대가 적의 침공을 알리는 나팔소리입니다. 20절입니다. “패망에 패망이 연속하여 온 땅이 탈취를 당하니 나의 장막과 휘장은 갑자기 파멸되도다.” 여기서 나의 장막, 나의 휘장은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뜻합니다. 예레미야의 귀에는 전쟁 경고음이 들리고, 눈앞에서는 패망과 패망이 거듭되며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초토화되는 것이 보입니다. 23절에 “보라”라고 하는 것은 지금 예레미야 앞에 환상이 펼쳐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레미야의 눈과 귀에 계속 전쟁의 상황이 들리고 보이는 겁니다. 그러니 예레미야가 어찌 탄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멸망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백성들은 아무 변화도 없습니다. 그러자 예레미야가 정곡을 찌릅니다. 22절입니다.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이것은 당시 유다 백성들의 신앙상태, 정신적인 형국이었습니다. 악을 행하는 데는 지각이 뛰어나고 선을 행하는 데는 무지하기 짝이 없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전형적인 상태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이런 상태를 어리석고 미련한 자식이라고 합니다. 세상적으로는 악에 밝고 선에 무지해야 잘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 세계에서는 이렇게 살면 안 됩니다. 선을 행하는 데 지혜로워야 하고, 악에는 무지해야 합니다. 당시 유다 백성은 반대로 살았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너무도 안타까운 나머지 이렇게 유다 백성을 진단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선, 믿음과 담 쌓고 살 수 있단 말인가 하는 겁니다. 이런 모습이야 말로 어리석은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23절부터 마지막 절까지 예레미야는 다시 환상을 봅니다. 유다의 종말을 보는 겁니다. 23절입니다. “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 이 구절을 읽으며 우리는 창세기 1장 2절이 생각납니다. 빛이 창조 되기(창 1:3) 전처럼 그렇게 폭삭 망하는 겁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창 1:2). 얼마나 망했으면 하나님이 천지 창조를 하시기 전의 세상과 같게 됩니까? 유다는 이렇게 처참하게 파멸할 것입니다. 또한 “[24] 내가 산들을 본즉 다 진동하며 작은 산들도 요동하며 [25] 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26] 보라 내가 본즉 좋은 땅이 황무지가 되었으며 그 모든 성읍이 여호와의 앞 그의 맹렬한 진노 앞에 무너졌으니 [2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길 이 온 땅이 황폐할 것이나 내가 진멸하지는 아니할 것이며 [28] 이로 말미암아 땅이 슬퍼할 것이며 위의 하늘이 어두울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심판을 멈추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로 말미암아 땅이 슬퍼할 것이며 위의 하늘이 어두울 것이라 내가 이미 말하였으며 작정하였고 후회하지 아니하였은즉 또한 거기서 돌이키지 아니하리라 하셨음이로다”(28). 작정하다, 후회하지 않는다, 돌이키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뜻합니다. 예레미야는 눈앞에 펼쳐지는 대재앙을 보고 어쩔 줄 모르며, 인간적인 연민도 발동되고 있는데, 하나님은 사사로운 감정에 좌우됨 없이 끝까지 심판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예레미야의 환상 속에 비친 예루살렘 사람들의 최후는 어떻게 됩니까? 29절 이하입니다. “기병과 활 쏘는 자의 함성으로 말미암아 모든 성읍 사람들이 도망하여 수풀에 들어가고 바위에 기어오르며 각 성읍이 버림을 당하여 거기 사는 사람이 없나니 [30] 멸망을 당한 자여 네가 어떻게 하려느냐 네가 붉은 옷을 입고 금장식으로 단장하고 눈을 그려 꾸밀지라도 네가 화장한 것이 헛된 일이라 연인들이 너를 멸시하여 네 생명을 찾느니라.” 수풀이나 바위 동굴에 숨어도 헛된 일이고, 화장하고 장식해서 적을 유혹해서 어떻게든 살아보려 해도 오히려 경멸해서 죽인다는 겁니다. 심지어 초산하며 소리를 지르는 여인도 죽임을 당한다고 합니다. 31절입니다. “내가 소리를 들은즉 여인의 해산하는 소리 같고 초산하는 자의 고통하는 소리 같으니 이는 시온의 딸의 소리라 그가 헐떡이며 그의 손을 펴고 이르기를 내게 화가 있도다 죽이는 자로 말미암아 나의 심령이 피곤하도다 하는도다.” 결국 누구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처참하고 처절한 종말입니다. 이것을 예레미야가 그림으로 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는 겁니다. 창자가 터지도록 아프다는 겁니다. 앞으로 유다의 형편이 어떠했는지가 계속해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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