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091018m: 홀로 산에 가시다(마 14:22-33)

2009년 10월 18일 주일낮예배
본문: 마 14:22-33
제목: 홀로 산에 가시다

[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주님은 제자들마저도 배를 태워 호수 건너편으로 먼저 보내시고 홀로 산에 가셨다고 하는데, 저는 성서 개론반원들과 화요일 날 산에 갑니다. 우리는 야외수업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단풍놀이 가는 것이지만, 주님은 고독을 씹으러 가신 게 아니고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기도하려고 제자들마저도 떼놓고 가셨습니다. 마가복음 다른 곳에 보면,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에 가셨다고 하고, 요한복음을 보면 홀로 감람산에 가십니다. 또 공생애 직전에도 40일간이나 홀로 광야에 계셨습니다. 왜 이렇게 하셨습니까? 누구의 방해도 없는 곳에서 기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의 경우도 주님은 하루 종일 참으로 분주하셨습니다. 이때가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신 직후입니다. 그러니까 수천 명에게 하루 종일 시달리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주님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홀로 산으로 가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주님을 뵙습니다. 세상 한복판에서 사람을 만날 때는 주님을 뵙기 힘듭니다. 세상살이할 때는 주님을 잊고 살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기도할 때 우리는 주님을 만납니다. 주님의 숨결을 느낍니다. 주님의 따뜻한 손길을 체험합니다. 장사할 때가 아니라 기도할 때 만납니다. 주님도 하루 종일 사람을 만나시다가 하나님을 만나려고 홀로 산으로, 광야로, 새벽에 나가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게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일 뿐만 아니라 자신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이것도 하나님 만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정직하게 자기를 만납니다. 우리가 세상살이할 때는 다른 모습으로 삽니다. 적나라한 자기 모습을 드러내기에는 부끄럽습니다. 우리는 거짓투성이로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치장을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꿰뚫어 보시는데 그분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감출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기도는 벌거벗고 홀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하나님도 뵙지만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나 자신을 만나는 겁니다. 기도 안 하면, 참된 자기가 누구인줄도 모르고 죽습니다. 여러분, 주님 앞에 홀로 서지 않는 사람은 백날을 살아도 자기 자신을 모릅니다. 세상사람들이 왜 저토록 오만방자하고 교만합니까? 자기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실제 자기들의 모습이 얼마나 거짓되고 위선된 존재인지 모르고 살기에 기고만장하게 삽니다. 자기를 아는 사람이 어떻게 교만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를 모르니까 오만방자한 겁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주님을 뵙는 사건인 동시에 자기의 참 모습을 발견하는 사건임을 기억하십시다. 기도 많이 하십시다. 그래서 주님도 깊이 만나시고 자신의 가장 정직한 모습도 자주 만나십시다.

기도가 일방적인 독백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아실 겁니다. 기도는 일방적인 염불이 아닙니다. 주님과의 대화입니다. 나도 내 속마음을 다 털어놓고 그러니까 최후의 진실까지 다 드러내고, 주님도 내 기도에 메아리를 보내시는 쌍방대화입니다. 마치 채팅과 같은 대화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할 때 내 할 말은 다 하지만, 주님의 메아리를 못 듣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답답합니다. 기도한다고 하는데 후련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이 안 되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내 영성이 투명하지 못해서, 내 영혼이 맑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는데 내가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성이 둔감하면 이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성을 잘 관리해야 하는 겁니다. 우리의 영적 감각은 항상 예민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기도할 때 대화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내 소리만 하고 끝냅니다. 내 말을 다한 뒤에 인내심을 갖고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더욱 영혼을 투명하게 해서 내게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메아리를 접수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진정한 기도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주님의 음성도 듣지만 이웃들의 비명을 듣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저 어둡고 캄캄한 바다 한가운데서 내지르는 이웃들의 비명을 듣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시간입니다. 내가 세상살이에 분주할 때는 이웃의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도할 때는 들립니다. 부모 형제의 신음소리가 들립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먼저 보내고 산에 가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제자들의 비명이 들립니다. 저 바다 한가운데서 풍랑만나 괴로이 노 젓는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에 보면 주님이 산에서 보고 계셨다고 합니다. 제자들의 아우성을 들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서둘러 제자들에게 오신 겁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으로 기도가 끝난 게 아닙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결코 이웃에게 비정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이웃에 대한 절절한 연민을 갖습니다. 왜냐면 기도할 때마다 절절한 이웃의 신음소리가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선하는 겁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 후에 바자회를 합니다. 다들 준비하느라 애를 많이 쓰셨는데, 이것도 우리가 기도할 때 이웃들의 신음소리를 들었기에 아낌없이 팔을 걷어 부친 겁니다. 우리가 기도를 안 해서 그렇지 우리 주위에는 신음소리가 너무 많습니다. 그런 이웃이 너무 많습니다. 어려운 이웃이 없습니까? 우리가 미친척하고 외면해서 그렇지 아우성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부디 기도하면서 주님의 음성도 들으시고 구조를 요청하는 이웃들의 비명과 신음소리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래야 합니다. 귀를 닫지 마십시오. 이웃의 비명이 들리거든 결단하십시오. 이웃을 위한 중보기도는 이웃의 비명을 들을 때만 가능합니다. 주님도 바다 한가운데서 풍랑과 싸우는 제자들의 비명을 들으셨기에 기도하셨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의 작은 한숨도 놓치지 않고 듣고 계시며, 그렇기에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십니다. 이웃에게 구체적인 사랑을 실천하십시다.

기도할 때 우리는 주님처럼 풍랑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밤 4경에 주님이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유령이라며 무서워했습니다. 예수님은 ‘안심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풍랑 때문에 사경을 헤매는데, 주님은 그 풍랑을 딛고 오셨습니다. 얼마나 극명한 대비입니까? 똑같은 풍랑이고 파도입니다. 제자들은 죽을 고생을 다하고 있는데, 주님은 의연히 그 파도를 딛고 오신 겁니다. 주님이 요술을 부린 게 아닙니다. 어떻게 주님이 바다 위를 걸어오실 수 있을까요?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권능으로 바다 위를 걸어온 겁니다. 베드로가 나도 바다 위를 걷게 해 달라고 하자, 주님은 오라고 합니다. 비록 베드로가 몇 발짝 걷지 못했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주님께 기도하면, 우리도 바다 위를 걸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파를 딛고 주님을 향해 우리도 어엿하게 나갈 수 있습니다. 바다 위를 걷는 것은 요령으로 되는 게 아니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기도응답의 결과입니다. 기도하십시다. 우리도 풍랑 위를 걷는 놀라운 체험을 하십시다. 혹 어두운 밤바다에서 외로이 풍랑과 싸우고 계십니까? 베드로처럼 기도하십시오. ‘주여 풍랑 위를 걷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주님은 반드시 오라고 하십니다. 풍랑을 딛고 서라고 하십니다. 내일부터 4주간 특별 새벽기도회를 합니다. 말이 4주간이지 이것저것 빼고 나면 20일입니다. 기도 많이 하십시다. 그래서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저 위협적인 풍랑을 반드시 딛고 서는 놀라운 주님의 놀라운 은혜와 기적을 체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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