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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2009년 10월 11일 주일오후예배/여전도회헌신예배<br>
본문: 눅 12: 35-44<br>
제목: 복이 있으리라!</p>
<!-- paragraph:p0002 -->
<p>[35]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36]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37]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 [38]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이 그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39]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둑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라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0]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41] 베드로가 여짜오되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 [42]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43]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p>
<!-- paragraph:p0003 -->
<p><br>
오늘 본문에는 ‘복이 있으리로다’는 말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37, 38, 43절). 어떤 종이 이렇게 복이 있다고 합니까? 우선 허리에 띠를 띠고 있는 종입니다(35). 에베소서 6장 14절을 보면,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복된 종은 무엇보다 허리띠를 띠고 있는 종입니다. 허리는 우리 몸의 중심인데, 그 중심을 말씀으로 매라는 겁니다. 우리 삶을 말씀으로 묶으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생활을 말씀의 지배하에 두라는 말입니다. 유대인의 복장은 통옷입니다. 띠를 띠지 않으면 제대로 일할 수 없습니다. 한복 입고 일할 때 허리를 묶듯이 바로 그렇게 말씀의 띠로 허리를 동이라는 겁니다. 언제든 동원될 태세를 갖추라는 말입니다. 말씀으로 자기의 삶을 통제하면서 자기의 생활 중심을 말씀으로 지배하면서 주님이 부르시면 언제든 출동할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라는 말입니다. 군에 가면 5분 대기조가 있습니다. 이들은 항상 대기해야 합니다. 그들은 탄띠를 항상 차고 있습니다. 옷을 벗지 않습니다. 특별히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여전도회 회원 여러분, 긴장을 풀지 마십시오. 말씀의 띠로 허리를 동이십시오. 비상! 하면 언제든 동원될 태세를 갖추시고 늘 5분 대기조로 사십시오. 말씀의 띠를 풀면 우리는 느슨해지고 긴장이 풀립니다. 그때는 아무리 비상해봤자 쉽게 동원이 안 됩니다. 몸이 말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이란 허리띠로 여러분의 삶의 중심을 단단히 묶으십시오. 그래서 언제나 긴장하며 사시고, 비상! 하면 순발력있게 동원될 태세를 갖추십시오. 36절은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고 합니다. 말씀으로 허리띠를 띠지 않으면 이게 불가능합니다. 여전도회 회원들은 우리 교회의 5분 대기조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십시오. 허리띠를 풀지 마십시오. 늘 비상 상태에서 대기하고 계십시오. 그래서 주님이 어떤 명령을 내리시든 순발력 있게 접수해서 보란 듯이 잘 처리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복되다는 겁니다.</p>
<!-- paragraph:p0004 -->
<p>다음으로는 등불을 켜고 서있으라고 합니다.(35b).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둔다고 했습니다. 그래야 집안 구석구석이 환해집니다. 등불은 신앙의 불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는데, 그 빛도 신앙의 빛입니다. 교회를 드나들면서도 불 꺼진 등만 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등불을 켜서 들고 다녀야 세상을 비출 수 있는데 말입니다. 형식만 붙잡고 있는 사람들, 무늬만 신자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등은 들었으되 꺼진 등만 들고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등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등에 불을 붙이려면 등에 기름을 채워야 합니다. 기름을 가득 채워야 오래 갑니다. 기름은 성령입니다. 기름을 가득 채운다는 것은 성령충만입니다. 등이 아무리 수입품이면 뭣합니까? 그 안에 기름이 차 있어야 불을 붙일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등에 불이 붙습니다. 그리고 그 불이 구석구석을 밝힙니다. 본문은 바로 그 말씀입니다. 등을 불에 들고 서 있어야 어둔 구석을 밝힐 수 있는데, 그러자면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자기의 등을 한 번 점검해 보십시오. 무늬만, 형식만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하십시오. 주님이 원하는 종은 등에 기름을 가득 채워 서 있는 종입니다. 그런 종이 복됩니다. 여전도회 회원들은 다 성령충만하셔서 어떤 경우에도 불이 꺼지거나 기름이 마르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멀리 비추고, 구석구석 어둔 곳을 비추는 명실상부한 빛이 되십시오.</p>
<!-- paragraph:p0005 -->
<p>다음으로 양식을 나누어 주는 종입니다(42). 우리는 다 종 중에서도 청지기들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소유를 맡아 관리하면서 주인의 뜻에 따라 집행하는 사람입니다. 청지기 의식으로 충일해야 합니다. 청지기 의식에 철저해야 합니다. 그래야 복 받습니다. 그런 종이 복된 종입니다. 주인이 청지기에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청지기는 소유권이 없고 관리권만 있습니다. 주인이 청지기에게 소유를 맡긴 것은 나눔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지시에 따라 집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라”고 합니다. 지혜가 있어야 주인의 뜻을 분별합니다. 자기의 뜻을 주인의 뜻으로 합리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정직해야 합니다. 자기 것도 아닌데 자기 것인 체 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꼴입니다. 그러면 주인에게 기쁨이 아니라 배신감을 들게 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 시간, 건강, 재능, 물질은 다 주인 것입니다. 우리의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지혜롭게 정직하게 나누어야 합니다. 이런 종이 복된 종입니다. 우리는 말로는 청지기라고 하지만, 제대로 청지기의 삶을 못 삽니다. 왜냐면 소유권을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색합니다. 그래서 나눌 줄 모릅니다. 아무 것도 우리의 생명, 심장조차도 내 것이 아니라 주인의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이 청지기의 지혜와 정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디 자선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자선가들이 아닙니다. 내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주인의 것을 이웃과 더불어 나누라고 맡긴 것일 뿐입니다. 그저 주인의 뜻에 충실하십시오. 내 생명도 주인의 것입니다. 그래서 생색낼 게 없습니다. 주님이 보시기에 신실한 복된 종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br>
<!-- paragraph:p0006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span><br>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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