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11m: 신자도 심판대에 선다(고후 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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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1일 주일낮예배
본문: 고후 5:8-10
제목: 신자도 심판대에 선다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어떻게 믿든지 예수를 믿으면 다 구원을 얻는다는 데서 끝나면 좋은데, 거기서 다시 어떻게 믿었는지를 따져서 거기에 상당한 상을 준다고 하면, 아무래도 마음에 부담을 느끼실 분이 적지 않습니다. 제대로 한 게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우리를 어떻게 보고 그런 협박을 하느냐며, 우리가 세 살 먹은 어린애인 줄 아느냐며 불쾌해 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개신교는 원래 공덕과 공로를 강조하는 가톨릭에 반발해서 세워졌습니다. 그러다보니 행위의 댓가로 주어지는 상급 사상에 약합니다. 거부감을 가지기도 합니다. 이것은 아주 잘못된 이해이며, 위험하고 무책임한 오해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은혜이나 상급은 그렇지 않습니다. 상급은 분명 내가 행한 대로 받는 응분의 보상입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얻는 구원도 대단히 소중하지만 내가 주님을 위해 수고하고 희생한 만큼 누리게 된다는 보상 곧 상급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았다는 사실 하나로 만족하거나 안도할 수 없습니다. 천국행은 보장받았으니 다른 것은 상관없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천국에 가서 어떤 영광을 누리며 살 것인지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그 상급을 이 땅에서 잘 관리해야 합니다. 천국의 영광은 이 땅에서의 내 삶의 내용이 결정합니다.
우리도 죽으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섭니다. 어떤 이는 믿는 자는 심판대 앞에 서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 10절은 우리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선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과 고린도 교회 성도들 곧 오늘 우리들입니다. 다만 우리가 받는 심판은 더는 천국이냐 지옥이냐의 심판은 아닙니다. 우리는 행한 대로 그 응분의 보상을 받는 상급 심판입니다. 바울은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라고 하는데, 이것은 살든지 죽든지라는 뜻입니다. 어떤 상태로 있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라는 겁니다.
천국이라도 같은 천국은 아닙니다. 천국에도 급수가 있습니다. 천국에까지 무슨 차등이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 땅은 계급과 차별이 있고, 불공평하며 불의가 만연합니다. 그래서 천국에는 그런 차별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상급은 인정하면서도 상급의 차등은 부정하는 이가 많습니다. 천국가면 다 똑같을 거라는 겁니다. 구원은 그렇습니다. 구원은 수고한 대로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베푸시는 선물이요 은혜입니다. 마치 마태복음 20장에 나오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와 같습니다. 새벽에 나와 일했건, 해지기 한 시간 전에 나와 일했건 다 한 데나리온입니다. 다 천국에 갑니다. 구원은 이런 겁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믿은 모태신앙이나 숨 떨어지기 30초 전에 믿었던 예수님 옆에 달린 강도나 다 천국 갑니다. 구원은 내 행위에 대한 보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요 값없이 베푸시는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 천국에 가서 누릴 영광 곧 상급은 다 다릅니다. 상급은 보상이요 댓가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땅에 살며 내가 얼마나 공덕을 축적했느냐, 얼마나 주님의 기쁨이 되었느냐, 어렵고 힘든 이웃을 돌봤느냐에 따른 보상이 있습니다. 그래서 상급에는 필연적으로 차등이 있습니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사람이 다 다릅니다. 이게 진정한 평등이요 공의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30대에 회심하여 평생을 주님을 위해 헌신하며 순교한 사람이나, 사형 당하기 직전에 회개하고 죽은 살인강도가 천국 가서 똑같이 산다면 이것은 불공평합니다. 이런 모순은 이 세상에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통치하는 하나님의 나라에는 그런 불공평이 없습니다. 행한 대로 우리에게 보상하십니다. 상급은 절대 차등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억울하거나 손해 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만일 상급이 다 같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불평등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불의입니다. 삶의 내용이 다 다른데,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고 했는데 어떻게 상급이 같을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에서는 해, 달, 별의 영광이 다 다르고, 별 중에서도 샛별과 은하수의 영광이 다 다르다고 했습니다. 상급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빛은 빛이되 태양빛이 다르고, 달빛이 다릅니다. 별빛도 다 다릅니다. 우리는 구원만 강조하는데 상급도 강조해야 합니다. 천국의 영광을 우습게 보지 마십시오. 천국은 영원한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9장을 보면 유명한 므나 비유가 나옵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각각 한 므나씩 주었습니다. 어떤 종은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기고, 어떤 종은 다섯 므나를 남겼습니다. 주인이 돌아와서 열 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열 고을을 다스릴 권세를, 다섯 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다섯 고을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주었습니다. 남긴 대로 정확하게 보상했다는 뜻입니다. 수고한대로 공의롭게 정확하게 보상했다는 뜻입니다. 비유 자체가 그렇습니다. 열 므나를 남긴 자에게 열한 고을을 다스릴 권세를 주지 않았습니다. 훗날 하나님이 정확하게 정산한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10장 40절 이하입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면 선지자의 상을,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면 의인의 상을,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주어도 결코 상을 잃지 않습니다. 그 행위에 정확하게 보상하겠다는 약속입니다. 결코 공짜는 없습니다. 마일리지 쌓이듯 차곡차곡 포인트가 쌓입니다. 우리는 이 보상으로 영원히 사는 겁니다. 우리는 냉수 한 그릇 자선을 잊습니다만, 주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마태복음 19장 27절을 보면 베드로가 주님께 질문합니다. 주님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좇았는데, 어떤 보상을 얻겠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주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 인자가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너희도 열두 고을을 다스린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29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그리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거나 희생한 적이 없는 사람은 이미 희생하지 않은 만큼 이익을 보았다고 합니다(마태 6장). 우리가 왜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살아야 하는지의 이유는 분명해졌습니다. 이것은 냉정하고 공평무사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9장 30절에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아무리 이 땅에서 늦게 믿었어도 헌신하고 희생하며 산 사람은 천국에서 먼저 된 사람이 됩니다. 간혹 젊어서 예수 믿게 된 것을 억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죽기 전에 병상에서 세례 받고 죽는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경제적으로 예수를 믿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막차 타고 천국 가는 것은 행운이 아닙니다. 물론 지옥보다 천국이 낫습니다. 주님을 위해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천국 가면 참으로 딱한 처지가 됩니다. 남루한 모습으로 영원히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런 구원을 ‘부끄러운 구원’이라고 했습니다. 턱걸이 구원입니다. 모태 신앙이나 젊었을 때 믿은 사람은 정말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얼마든지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구원 받은 우리를 빨리 데려가시지 않고 여전히 이 땅에 두시는 이유는 훗날 천국 가서 누리는 영광을 예비하라고 말미를 주신 겁니다. 좀 더 주님을 위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헌신하라는 배려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고린도전서 3장 11절 이하입니다. “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집을 세우는 사람입니다. 어떤 이는 보석으로, 짚으로, 나무로, 풀로 집을 짓습니다. 거기서 끝나면 좋은데, 마지막 날에 하나님이 불로 그 집 지은 사람의 공력을 시험하신다고 합니다. 어떤 공력으로 자기가 집을 지어왔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나무나 짚이나 풀로 지은 집은 다 타 버릴 겁니다. 그러나 보석으로 지은 집은 불타지 않습니다. 이런 집을 지은 사람은 상을 받습니다. 그러나 불탄 집을 지은 사람은 화를 당합니다. 마지막 말씀을 다시 봅니다.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 얻은 것 같으리라.” 집이 다 불타도 구원은 얻습니다. 그런데 불 가운데서 구원을 얻는 것 같다는 겁니다. 불난 호텔이나 사우나에서 벌거벗고 나와 겨우 목숨만 건진 꼴로 구원을 받는다는 겁니다. 벌거벗은 구원입니다. 천국에서 영원히 이런 모습으로 사는 게 바로 부끄러운 구원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하나님의 심판은 엄정합니다. 살아서 내가 무엇을 뿌리고 심든 반드시 천국에서 보상 받습니다. 자신의 영원한 운명과 천국에 가서 누릴 해 같은 영광을 위해 살아 생전 좀 더 주님과 이웃을 위해 희생하며 사는 성도 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