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091004m: 구나이!(요 2:1-11)

2009년 10월 4일 주일낮예배
본문: 요 2:1-11
제목: 구나이!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추석 잘 보내셨습니까?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사실과 다른 편견, 선입견 내지는 피해의식을 가진 부분이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우리의 삶의 흥을 깬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이런 생각을 하신 적 없습니까? 그래서 기독교 신앙에 입문하기를 꺼리는 분이 분명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즐거워하고 행복하게 사는 꼴을 못 본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에게 고행과 금욕을 바라시고, 때로는 시련을 겪게 하심으로 우리가 고뇌에 찬 표정으로 살기를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 11절 마지막 절을 보면,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기적은 주님의 첫 기적입니다. 술 만든 기적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우리가 행복해 하고 즐거워하며 사는 것을 주님이 바라신다는 겁니다. 기독교 신앙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우리에게 행복과 기쁨을 주는 종교라는 겁니다. 주님은 공생애를 시작하며 술을 만드셨고, 공생애를 마무리하면서도 제자들에게 포도주를 나눠주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해 흘리는 내 피라고 하시며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우울한 종교가 아닙니다.

어떤 과정을 통해 주님이 공생애 첫 기적을 행하셨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먼저 주방 쪽에서 일하던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그 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사실을 압니다. 큰일입니다. 가나의 혼인집은 가난해서 포도주를 적게 준비해서 포도주가 떨어졌다기보다는 생각 밖에 하객이 많았던 듯합니다. 어쨌든 이 얼마나 난감한 일입니까? 다른 방식으로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판단한 마리아는 아들 예수에게 와서 그 사실을 알려줍니다. 왜 그랬을까요? 적어도 마리아에게는 예수라면 틀림없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과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반응이 뜻밖입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여자여 라는 말이 바로 구나이입니다. 물론 구나이라는 말은 여자를 비하하는 표현이 아니고, 부인, 여사, 마담이라는 존칭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어머니에게 쓸 수 있는 말은 아닙니다. 남에게 쓰면 존칭이 되나, 어머니에게 쓰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 문제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는 예수의 말이 얼마나 매정합니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말에서 ‘때’는 일반적인 시간(크로노스)이 아니라 심각한 시간(카이로스) 입니다. 기적을 행할 때가 아니라는 겁니다. 마리아는 예수에 대한 확신이 있었는데, 예수님이 보인 반응은 구나이 즉 모욕적이고, 나와 무슨 상관이 있냐며 냉담하고,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며 거절합니다.

그러나 이런 예수에 대한 마리아의 태도는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본래 예수님에 대한 기대를 그대로 관철합니다.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든지 그대로 하라고 당부합니다. 예수가 냉담하게 거절해도 마리아는 기대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주님이 하인들에게 어머니 마리아의 기대 그대로 항아리 여섯에 물을 채우라고 하고, 채웠더니, 떠다 주라고 해서 갖다 줬더니 하객들이 그 맛을 보고 깜짝 놀란 겁니다. 보통은 처음에 좋은 포도주를 내고, 사람들이 술에 취해 감각이 무뎌진 다음에 나쁜 포도주를 내는데, 주님이 만든 포도주가 더 맛이 좋았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전혀 그 기적을 행하실 뜻이 없었는데, 마리아가 물러서지 않자 예수님이 마리아의 믿음 앞에서 백기를 든 겁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기적을 행한 것처럼 나와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님에 대한 태산 같은 믿음만 있으면 기어이 우리의 뜻을 관철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 앞에서 주님이 백기를 드십니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주님은 기적을 행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에 대한 마리아의 기대가 철회되지 않자 주님이 항복한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주님 공생애의 첫 기적입니다. 믿음이 기적을 부릅니다. 우리가 왜 기적을 못 만나느냐면, 우리는 주님의 냉담한 반응에 다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이렇게 하십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의 믿음을 확인해 보십니다. 기적을 감당할만한 채비가 되어 있는지를 점검해 보십니다. 그래서 그 시험을 통과해야 비로소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주십니다. 함부로 기적을 남발하면 그 기적이 하나님께 욕이 됩니다.

하인들의 순종입니다. 돌 항아리 여섯에 가득 물을 채우라는 말이 얼마나 황당했겠으며, 또 그걸 떠다 갖다 주라는 말은 어땠겠습니까? 그러나 하인들은 순종했습니다. 마리아의 믿음과 하인들의 순종의 합작품이 기적을 이루어 냈습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봤습니다. 오병이어 없이도 주님은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이번도 마찬가지입니다. 돌 항아리 여섯에 물을 채우지 않아도 얼마든지 포도주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항아리에 물을 채우게 합니다. 포도주는 물이 대부분입니다. 미에로화이바 음료수 아시지요? 그게 식이섬유라고 합니다. 섬유질을 가공해서 액체로 만든 겁니다. 물 같으나 그 성분을 보면 섬유질입니다. 주님도 물을 포도주로 그렇게 가공한 겁니다. 사람이 물로 포도주를 만들려면, 물이 포도 줄기를 타고 포도 알이 맺히고, 그걸 수확해서 포도주를 담가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무화과로 포도주를 만드실 수 있으나 물로 포도주를 만드십니다. 자연의 순리를 존중하신 겁니다.

주님이 공생애에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베푸신 기적을 통한 계시를 오늘 깊이 생각하시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십니다.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주님께 마리아와 같은 믿음으로 그 사실을 아뢰고 주님의 놀라운 기적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마리아와 같은 믿음이 있으면 얼마든지 물이 포도주가 됩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그런 믿음이 없다는 겁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 앞에서 백기를 드실 태세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이 없는 게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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